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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역사

[책리뷰] 로완 윌리엄스 - 과거의 의미(역사적 교회에 관한 신학적 탐구)

by 카리안zz 202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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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저번엔 로완 윌리엄스의 설교집을 읽었고 이번에는 그의 교회에 대한 개괄(?)을 읽었다. 비아 출판사의 팟캐스트에서 들어보니(로완 윌리엄스 "바울을 읽다" 편) 이 책은 중간 레벨의 책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맥을 잘 잡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상에 남는 점을 몇 개 언급해 보겠다. 

 

연속성과 불연속성, 동일성과 차이[에우세비우스,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베다(비드), 종교개혁가 존 폭스, 종교개혁 그 이후]

 로완 윌리엄스 연속성과 불연속성(p. 25), 동일성과 차이(p. 29)에 대해서 주목하며 그리스도교 역사를 서술하려고 한다. 이 부분은 집중해서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에우세비우스(유세비우스)

 에우세비우스는 "교회가 탄생한 이후의 일어난 격변들을 성서에 바탕을 둔 역사의 흐름에 비추어 '정상화'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르면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을 거부하면 벌을 받는다는 점과 하느님께서는 언제든 새롭게 시작하실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34-35)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지위가 유대인에게서 그리스도인으로 옮겨졌다는 것, 그리스도인 또한 첫 계약의 백성과 마찬가지로 위험과 도전을 마주하게 되었음을 뜻"(35)한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당시의 맥락을 잘 살펴봐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에우세비우스는 교회가 어느 정도 제국에 정착했을 때,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에 매력을 느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을 보내기 시작했을 때 역사서를 서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디오클레티아누스 Diocletian 황제가 교회를 전례 없이 강력하고도 조직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우세비우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레미야애가와 시편 89편을 인용하여 유대교 역사에서 읽어낸 신학의 흐름과 동일한 신학의 흐름을 적용했습니다. 그는 새롭게 하느님께서 선택받은 백성도 옛 백성처럼 범죄를 저질렀으며 하느님께서는 이교도들이 그들을 징벌하도록 허락하셨다고, 그렇게 역사는 반복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그러나 에우세비우스는 압제에 굴하지 않는 신실함은 보상을 받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순교자와 고백자는 영웅처럼 자신의 신앙을 증언함으로써 교회의 실패를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라는 전례 없는 공포가 사그라들고 콘스탄티누스 Constantine의 관대함과 호의가 교회의 문을 두드리자 에우세비우스는 환호했습니다. ...
 ... 그에게 교회사를 쓴다는 것은 교회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밝히고, 성서가 제시하는 하느님의 활동이 교회의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재현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최후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결말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신실한 선생들을 계승함으로써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지만) 직무를 수행하는 주교들을 계승하는 것과 겹칩니다. (35-37)

 

 에우세비우스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었고 결국 선한 왕인 콘스틴티누스가 와서 그들의 충성이 보상받게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개념을 활용하여 로마 제국의 역사를 이해했"(39)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세계가 황폐해지는 가운데에도 교회는 여정을 이어 나가며, 때로는 환경이 제공하는 선한 것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눈은 언제나 굳건히 인간이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하느님께 두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39)

 

 에우세비우스는 성경에서도 그랬듯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 이땅의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함으로 복음의 증언이 되었다고 보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의 진보가 복음을 증언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40)다.

설사 역사가 그리스도교의 미덕과 선함을 입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할지라도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그는 경고했습니다. 억사를 살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에서 보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가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지 보았습니다. ... 진정한 종말은 이미 이곳에 도래했다고, 곧 하느님께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시는 성도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 그는 세상이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두 종류의 사랑, 동기를 가지고 두 사회(하느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의 도성에서는 모든 일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일어납니다. 그러나 세상의 도성에서는 아무리 좋더라도 인위적이고 외적인 수단을 통해 경쟁과 물욕으로 일어나는 과도한 폭력을 제한하는 수준에 그칠 뿐입니다. (40-41)

[잠깐의 논외지만 위의 이야기를 "종교의 사회적 가치가 다시금 인정받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임을, 예수를 살리신 하느님, 성 바울로가 되풀이해 말했듯 그분과 함께 우리도 일으키실 하느님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모든 비평가가 교회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할지라도(그렇게 되면 숨죽인 채 있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이지요)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변치 않습니다." (로완 윌리엄스, 삶을 선택하라253)에서 한 말들이 오버랩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참된 교회는 역사가 없다"(41)고 "참된 교회는 하느님 나라가 자신의 삶에 임한 인격체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 참된 교회는 눈에 보이는 조직, 혹은 집단으로서의 교회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후자의 경우 교회에 하느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이들만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41)으로 보았다. 

 

베다(비드)

 초기 잉글랜드 교회사가 베다는 "어떻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전망을 유지하면서도 본질적으로 교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행동으로서 역사를 쓸 수 있는지,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42)다고 했다. 그는 역사를 쓸 때 두 가지 주제를 다루려 했다.

 

첫 번째는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주제인데 바로 브리튼 교회들에 대한 로마 그리스도교의 승리입니다. 베다가 보기에 브리튼 교회들은 참된 교회의 부패한 형태, 지역적 변종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언밀히 말해 그들은 이단이 아니었고 분파를 지향하지도 않았지만 게르만 정착민들에 대한 선교를 거부하고 로마의 전례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반 교회를 수입하고 있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상대적으로 암묵적인데, 게르만 정착민들이 로마 교회에 충성함으로써 하나의 백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베다가 이해한 잉글랜드는 본질적으로 로마 교회의 선교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게르만 왕국들의 연합이었습니다. 
 ... 베다는 잉글랜드인들은 오직 가톨릭 공동체의 일원이 될 때만 구별된 민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베다는 생각했습니다. 일치에 냉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브리튼인들의 모습은 곧 그들의 죄악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베다의 눈에 '그들의' 역사는 일찍이 에우세비우스가 보여준 구약성서의 흐름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지었기에 자신들의 왕국을 빼앗겼다고 그는 기술했습니다. ... 브리튼 그리스도인들의 죄는 침략자를 불러들인 것, 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지 않은 것, 이를 만회하려는 로마 교회에 협조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역사 쓰기를 필요로 하는 개별 교회의 대립을 봅니다. 이 대립을 다룬 기록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한 민족이 태어나고 나아가 구별된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가 태어나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다에 따르면 이 공동체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연합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선물을 받아 '잉글랜드인'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일관된 역사적 전통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사, 즉 참된 교회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이야기는 민족사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5) 

 

 그러니깐 내가 정리해보면 베다는 참된 교회는 역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브리튼 교회들은 참된 교회가 아니기에 참된 교회로 향해 나아가는 기록을 쓸 수 있다. 가톨릭 연합의 구성원이 되는 이 나아가는 기록을 통해 "한 민족" 나아가 "구별된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가 탄생되며 결국 참된 교회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고 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승리하는 이야기가 브리튼 민족사의 바탕이 된다. 

 

중세

 중세때는 이러한 고민이 없었다. 에우세비우스와 베다의 시대는 첨예한 대립과 혼란이 있었기에 어떻게 역사를 써야하는지 고민을 했는데 내 생각에는 중세에는 이러한 고민을 할만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윌리엄스는 이때는 교회사가 아니라 전기물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전기물(대표적으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에 주류 교회의 근원적인 도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종교개혁때 폭팔성이 일어났다. 

 

종교개혁기간(존 폭스)

 종교개혁기간이야 말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대립이 첨예하게 나타난 때이다. 베다는 자신의 지역교회인 브리튼 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종교개혁자들은 "한소명을 저버리고 진정성을 상실한 것은 어느 한 지역 교회가 아니었"고, "그들은 그리스도교 세계의 모든 공적 기관이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판단했"(46)다. 교황이 적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야 말로 에우세비우스와 베다가 다룬 주제가 다시 살아났다. 

 

 에우세비우스가 그랬듯 폭스 역시 의미 있는 역사는 죽음을 감내하는 신실한 증인들이 나옴으로써 이어진다고, 그들이 흔린 피는 최후에 도래할 하느님의 통치로 보상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베다와 마찬가지로 그는 역사 이야기가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대립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폭스는 참된 교회가 승리를 거둘 것이며 하느님의 섭리 아래 사명을 부여받은 민족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여기서 참된 교회는교회를 가장한 집단 안에서 박해받는 소수를 통해 이어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선택받은 민족이 로마 교황좌와의 제휴를 거부함으로써, 혹은 교황좌와 야합한 국가, 민족들의 연합체에 가담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해습니다. 
 폭스는 무의식적으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 베다의 견해를 뒤집었습니다. 베다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조건이 로마 교회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를 반대하면 그것이 아무리 암시적이고 무해하더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잃게 되는 행위로 기술했습니다. 반면 폭스는 이를 뒤집어 누군가 로마 교회를 반대하기만 하면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 참된 증인이라고 기술했습니다.
 ... 프로테스탄트 역사가들은 단순히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더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중요한 것은진리를 유지하는 집단의 연속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7-49)
 

 

 그리고 더 나아가 과거를 거부하는 것을 넘어서 과거를 낯설게 만들어야 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사가들은 우리가 가진 기록을 훨씬 더 주의 깊게, 분별력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고, 초기 교회의 무엇이 잊히고, 무엇이 왜곡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이야기"(49)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부들의 저작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칼뱅 역시도 교부들에 대한 글을 많이 해설하려고 했었다. 그 이유를 여기에서 알게 되었다. 반대자들이 교부들을 가지고 전통적으로 주장했던 내용들을 낯설고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만들려고 했다. 교부들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기에 전통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로마가톨릭교회에게 교부들의 이야기로 반박을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전통성에 흠집을 제대로 내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새로운 면모를 등장시킬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 내재한 두 측면(그의 은총론과 교회론)의 대립으로 이해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새로운 못브을 발견해냈는지 주의를 환기하곤"(50) 했다. 

 이러한 반박을 받은 가톨릭 학자들은 종교개혁자들 못지 않게 교부들을 읽어내야 했다. "그들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어떠한 불연속성이나 부조화도 없음을 입증하고자 했"(50)다. 

 

종교개혁, 그 이후

 

 그런데 문제는 종교개혁자들의 이러한 낯설게 하기에서 급진적으로 더 나가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신학의 주요 주제인 삼위일체나 성육신 교리 역시도 부패한 것의 영향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그랬다. 이 문제에 맞서 가톨릭과 종교개혁자들이 더 정교한 해석을 해내야 했다. 

 

 이같은 급진주의자들의 주장에 로프랑스 예수회 수사 드니 페토는 주류 프로테스탄트의 근간을 흔드는 대담한 시도를 한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의 교리 정식은 모호한 수준이고 이후에 관점에서 틀린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로마 주교의 역할을 그들이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나 그러한 2세기 일부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이 성부와 성자에 모호한 진술을 했다고 해서 니케아 신경의 진리를 훼손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경의 진리는 특정 고대 저술가의 권위가 아닌,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교황의 권위에 달렸"(53)기 때문이다. 이제 페토는 프로테스탄트 진영에 되치기를 놓는데 그는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통 칼뱅주의자들은 유아 세례와 삼위일체론을 폐기하고자 하는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어떠한 설득력이 있는 논변도 제시하지 못하리라고"(53) 공격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에 많은 반발이 있었고 가장 효과적으로 반론을 제시한 진영은 성공회 학자들이었다. "성공회 주교 조지 불은 니케아 신경을 옹호하며, 모호해 보이는 정식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맥락을 충분히 살펴야 하고 이를 따라 각 표현이 가리키는 의미를 주의를 기울여 헤아려 본다면 교리의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54) 말했다. 이에 가톨릭 진영과 전통 프로테스탄트 진영 모두 그에게 동의를 했다. 

 

 확실히 이후 종교개혁은 "교회의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태도를 만들어 냈"(55)다.

사람들은 과거에서 현재가 필연적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서 어떤 새로운 당위를 찾든, 과거에서 현재까지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하든 모든 주장은 자료들을 다시 읽어야 하며 여러 추가 작업을 통해 보완되어 이치에 맞게 설명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생겨습니다. 이와 동시에 과거의 대부분이 잘못된 것, 왜곡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이들은 교회가 태어났을 때부터, 혹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진리를 상실했거나 무언가 덧입게 되었다는 강력한 의혹을 품고 과거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교회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이러한 생각은 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 교회사 전통의 토대를 이루는 신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지요. (55)

 로완 윌리엄스는 18세기 독일 교회사가인 로렌츠 폰 모스하임을 이야기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초창기부터 플라톤철학에 신학이 점령 당했고 이후 그리스도교 사상은 왜곡되었다고 기술했다. 이후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아돌드 폰 하르낙은 모든 교리를 제거함으로써, 유니테리언주의 방식도 경건주의 방식도 아닌 자유주의에 따라 예수의 복음을 재구성함으로써 이 신화에 결정적인 형태를 부여했"(56)다. 이후 루돌프 불트만 역시도 "초창기 교회 역사가 교리와 가톨릭 제도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독일 교회사 전통의 기조를 견지했"(56)다. 

 

이러한 역사적 배열을 통해 로완 윌리엄스가 하고자 하는 말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이러한 재구성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시도해서는 안 된다거나, 지적으로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시도들은 여타 신화들과 많은 측면에서 유사한, 너무나 친숙해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어떤 신화를 역사 해석의 틀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사가들은 언제나 그리스도교 역사 이야기 속에서, 자료들에서 일정한 줄거리를 찾아내려 했습니다. 그 줄거리는 에우세비우스처럼 수난과 하느님의 승리일 수도 있고, 베다처럼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의 전투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종교개혁 시기에 나온, 그리스도 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혹은 시작되자마자 외부 세력으로 인해 왜곡되고 타락했기 때문에 오래된 기록들을 뒤지고 수고를 기울여 참된 정체성을 재구성해야 한단느 거대한 음모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교회사가들이 과거의 흐름을 살피면서 이에 대해 특정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리고 이는 앞서 살폈듯 모든 역사 서술의 핵심 동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흐릿해질 때, 정체성이 의문시될 때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저 정체성을 다시금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확고하게 정립하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정의는 이전과 상당히 달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언제나 우리가 누구인지를 더 온전히 아는데,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좀더 온전한 감각을 갖추는 데 있습니다. 
 저는 과거의 낯선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그러한 과거와 만나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 좋은 역사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워진 감각을 바탕으로 '나', 혹은 '우리'는 정체성을 새로이 수립하게 됩니다. ... 우리가 머무르고 있다고 여기는 '지금, 여기'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체성은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만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생각해왔던 우리와는 다르나 실제 우리를 이루는 것과 연결됩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정체성은 그때가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포괄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좋은 분석은 자기 안에 있는 낯선 요소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왖ㅂ니다. 
 ... 반면 나쁜 역사 서술은 이러한 지난한 과정, 정체성의 확장을 거부하고 가로막습니다. 거짓 역사는 우리에게 과거를 외양만 바꾼 현재로 제시하거나 야만과 무지로 가득찬, 완전히 '낯선 나라'로 제시해 배척하고 거부하게 만듭니다.
...
...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연속성과 차이 사이의 어려운 균형을 찾아야 하는 곳, 낯선 것에 대한 존중과 낯선 것을 해석하고, 낯선 것과 다투고, 낯선 것을 다룰 수 있는 자유 사이에 도덕적 긴장이 있는 곳으로. (57-61)

 과거의 의미를 알려는 것에서 로완 윌리엄스는 태도를 중요시 여기는 것같다. 교회를 물을 때 나는 교회의 역사를 탐구한 책들을 살펴보려고 했다. 아마도 이러한 태도가 저자가 봤을 땐 나빠보이진 않을 것 같다. 당연한 모습이겠지만. 

 반면 로완 윌리엄스가 나쁜 역사 서술이라는 것에 주목해 보자. "현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61)진다고 했다. 그 예로, 에우세비우스가 200년 전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어느 종교개혁자(존 폭스)는 4세기 그리스도교 저술가가 자신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물음에 답하고 있다는 생각, 어떤 현재 학자가 원시 그리스도교가 근본적으로 현대 페미니즘과 같다는 생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오류들 때문에 원시 그리스도교의 낯선 면모는 유지되어야 한다. "원시 그리스도교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외양만 바꾼 현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과거이기 때문이"고, "원시 그리스도인들은 옛 옷을 입은 현대인들이 아니"며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었"(62)다.

 이러한 서술은 리처드 버릿지의 <복음서와 만나다>의 한 대목이 연상된다. 

네 편의 복음서가 지닌 다양성은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예수상이 생기는 데 자극제 역할을 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 이후의postmodern, 나아가 무신론 이후의post-atheistic세계, 서구권의 낙관적인 과학적 인본주의와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모두 붕괴하고 난 21세기 세계에 걸맞은 새로운 예수상을 그리도록 사람들은 고무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이를 허용할 수 있을까? 그 한계란 무엇일까? 네 편의 복음서는 어떻게 이 모든 그림을 '제어'할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4라는 수는 운동경기장을 둘러싼 면의 수이기도 하다. 축구든 미식축구든, 럭비든, 야구든, 경기를 진행하려면 공은 경기장 안에 있어야 한다. 경기장 밖으로 공이 나가는 것은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심판은 '라인아웃'이나 '스로인'을 선언해 공을 경기장 안으로 다시 넣고 이때에야 비로소 경기는 재개된다. 한계, 경계선을 넘어가면 크리켓에서는 6점을 얻고 야구에서는 홈런이 된다. 모든 사람은 여기에 갈채를 보낸다. 그러나 경기가 계속되려면 공은 다시금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308-309)

출처: https://kuyrian.tistory.com/221 [카리안의 책 이야기]

 이 대목은 로완 윌리엄스는 낯선 면모가 유지해야 한다는 부분과 이어진다고 볼 수 있지 싶다. 

 

 

나가면서

 위의 내용은 고작 1장일 뿐이다. 앞으로 2, 3, 4장이 남았다. 2장에서 에우세비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데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교회가 얼마나 분열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지표를 저자는 하나 제시하는데 

 

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되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은 그로 인해 구성원들이 함께 시편을 노래할 기회가 가로막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교회로서 우리의 공통 언어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한 언어입니다. 이 언어를 충분히 익히면 우리가 서로에게 말할 거리는 더 많아질 것입니다.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못할 정도로 관계가 뒤틀어졌을 때, 우리는 찬미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181)

 이 대목에서는 띠용했다. 함께 찬송을 할 수 없다는 것. 정말이지 그것이야 말로 서로가 분열된 가장 지표가 아닐까. 이후 다른 부분들은 내 역량의 부족으로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위의 부분을 간략하게 나마 보더라도 로완 윌리엄스의 역사를 궤는 능력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하는 이야기들도 참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전개를 시킨다. 기대하고 봐도 좋다. 강추한다!

 

 

 


메모

맨 앞 페이지

- 순교, 하나님의 백성/세상의 백성, 교회일치, 찬송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의 그리스도교 신학이 공들여 재구성한 조화로운 세계를 위협했습니다. 또한 그의 신학은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역사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에 의존해 빚어낸 교회의 일치 주장에 도전했습니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에 제기되었던 질문들을 가지고 분투하면서도 과거에 해결되고 종결된 것으로 보였던 신학이론들이 새롭고 불편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을 암시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기 위해 마지못해 새로운 용어를 채택했던 니케아 공의회의 대표들과 같은 길을 그도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2)

- 순교를 통해 거룩한 행위가 강조되었던 2세기의 신학들이 어거스틴을 통해 도전 받음.

 

 

 


책 맛보기

 

 먼저, 역사는 우리가 누구인지, 또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이란 무엇인지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
 이는(다른 제도, 혹은 기관들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역사에도 적용됩니다. 교회의 정의가 이전보다 흐릿해졌다는 판단이 들 때, 혹은 교회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잘못된 정의를 따른다고 여길 때 사람들은 이에 맞서기 위한 실천으로서 교회의 역사에 주목합니다. (8)


다시 말해 교회는 역사적 사건이나 문화와 같은 인간 행동의 산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으로 세워진 곳이라고 그리스도교는 믿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역사를 쓰려는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하느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는 자신의 기원을 어떻게 입증했는지를 추적할 때, 혹은 자신의 기원에 관한 주장을 약화하는 정식이나 관습을 어떻게 피하려 했는지를 살필 때 여러 도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9)


이 책의 목적은 교회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신중하게 읽는 법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10)


역사는 누군가 아무런 의도도 없이 어떤 중립적인 공간에서 사건들을 나열하는 시도의 산물이 아닙니다.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더 분명하게 식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16)


성서가 하는 일 자체가 역사 서술의 중요한 토대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핵심은 그리스도교는 시작할 때부터 역사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하나의 이야기로 아우르려는 시도로 이해하고 커다란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25-26)


 역사가들은 과거의 인물들을 그 자체로 대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을 쉽사리 판단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섣불리 자신의 편으로 간주하거나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도 안 됩니다. ... 크레이턴은 과거를 평가할 때는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5세기 정신에는 현재와 다른 낯선 측면이 있고 역사를 해석할 때는 언제나 이러한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도덕 문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다시 액턴은 크레이턴의 주장이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역사를 쓰는 목적(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에 위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 이러한 논쟁은 손쉽게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단계에서 우리는 과거의 낯선 측면을 인식하지 않으며 과거를 마치 순전히 낯선 나라로 치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30-31)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은 오직 불가능해 보이는 가정, 즉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 나의 삶을 형성했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끔 내 삶을 빚어냈다는 믿음과 이러한 과정을 보고 파악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만 온전히 답변할 수 있습니다. (64)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체적인 행동, '세상 사람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행동은 하느님의 권능이 자신들과 함께함을 드러내는 표지였습니다. 적어도 4세기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 요구한 높은 수준의 금욕과 절제는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얼마나 바꾸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89)


성숙한 관상적 삶은 (어떤 철학자가 말했듯) 하느님의 질서를 이 땅에 구현합니다. 오직 사랑할 때, 분석하려는 충동, 상상을 발휘하려는 충동으로부터 멀어져 멈추고 침묵할 때 하느님의 질서는 현실에서 퍼져나갑니다.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이 무한한 근원인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는 관계에 머물 때 하느님께서는 그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변치 않는 세계의 본래 질서와 당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완전한 자유와 신비를 이 세상에 드러냅니다. (104-105)


교회는 무엇에 저항해야 할지를 깨달을 때 일치에 이릅니다. (120)


초대교회는 우리에게 완전한 삶과 언어의 모범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초대교회는 우리가 외국 시민권을 주장할 때 어떠한 위험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지,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그리스도에 관해 무엇을 언급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122)


오늘날의 문화는 지나간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작동했던 방식에 대해 너무나 무지합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힘을 크게 잃어버렸습니다. 다시금 교회는 보편적 공동체에 대한 약속을 증언해야 합니다. 교회가 증언하는 보편적 공동체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이성에 대한 추정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공동체는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적 인간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활동, 이 활동이 어떻게 모두를 연결해 소통하게 하는지를 드러내는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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