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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역사

[책리뷰] 톰 홀랜드 - 도미니언[책과함께 I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I 기독교 I 서양역사 I 도덕 I 자연법 I 혁명]

by 카리안zz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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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내가 읽은 책 중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다. 그리스도교 2000년의 역사, 곧 서양 역사로 말할 수 있는 긴 기간을 총 21장 또, 각 장마다 세 장면들을 선정해서 60여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너무나 긴 이야기이기에 전공자들마다 비판점들이 있을 순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 저자 톰 홀랜드는 엄청난 이야기꾼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다니. 나는 저자가 불가지론자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교회를 다녔지만 공부를 해가면서 서서히 교회와 멀어지는 전형적인 탈기독교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고대 시대를 탐독해나가다 이상함을 느낀다. 어느 순간 고대의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이 책을 쓰던 초기, 2014년쯤 IS가 휩쓸어 악행을 저지른 마을 보며 그는 고대 시대가 이랬겠다 말한다. 그리고 발견한 것, 2000년 동안 기독교인은 그런 방식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했던 역사라고(721).

 

미국보다 교회 신자석이 훨씬 더 많이 비는 대륙인 유럽에서조차 기독교적 요소들이 사람들의 도덕과 전제 조건에 철저하게 스며들어 있어 많은 사람이 아예 그 존재를 의식하지조차 못한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아주 고운 먼지 입자처럼, 유신론자, 무신론자, 종교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등 모든 사람이 그 기독교적 요소를 동등하게 들이마시고 있다. 만약 이런 현상이 아예 없었다면, 그 누구도 각성하지 못했을 것이다.(711)

 

저자는 기독교를 마치 공기와 같다고 말한다. 모두가 들이마시고 있지만 그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어쩌면 다른 신화(계몽주의의 작품)이라는 믿음에 기독교는 적대시 된다. 그것 역시도 신화다. 여튼, 이 강력한 이의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바로, 바울의 선언에서 분명히 보인다.

 

자연을 보면 질서가 있다(자연법). 자연에겐 신성이 있고 인간 역시도 신성한 흔적이 있다. 이를 시네이데시스, 즉 양심이라고 한다. 자연의 법칙이 있는 이 양심은 인류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자연의 법칙은 이런 것이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 로마인들이 획득한 부, 해외에서 이탈리아로 데려온 엄청난 수의 노예들, 로마인들의 높은 지위, 그들의 명성과 위엄, 이 모든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자연의 법칙에 따라 벌어진 운명을 안고 있었다.(70)

 

바울은 이 질서를 뒤흔들었다.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롬 2:14-15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을 양심으로 표현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지고 또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그 마음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을 융합시킨 개념이다. 이것은 바리새인들과 스토아학파에게는 똑같이 낯선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 융합의 사상 때문에 바울의 편지-아무런 세속적 지위나 명성도 없이 그저 지중해 지역을 순회하며 설교한 전도사의 편지-는 가장 영향력 높고, 가장 획기적이며, 가장 혁명적인 문서가 되었다. 그 후 2000년 동안 생전의 바울 자신은 알지도 못한 사회와 대륙에서 그 편지들의 영향력이 계속 메아리쳤다. 그의 율법 사상은 서구 문명에 속속들이 스며들었다. 그는 자신이 선언한 바와 같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었다.(137)

 

이 혁명은 가난한 자도 생활필수품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원리, 이걸 교회 법률가들은 규정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권리였다. 그들이 제정한 법의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정의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니 말이다(327). 이 법률이 이후 혁명의 핵심 도구가 된다. 지금의 결혼 제도 역시 마찬가지며, 특히나 노예제 폐지는 복음주의자들의 승리라는 말에 가슴이 웅장해기도 했다.

 

물론, 기독교의 흑역사들을 감추지 않는다. 톰 홀랜드는 아이러니함을 말한다. 성경으로 억압했고, 성경으로 해방을 이루려 했다. 십자군, 중세 이후 가톨릭-개신교간의 전쟁을 보면 끔찍하기도 하다. 그래, 내가 이렇게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기독교의 흔적이리라.

 

초기 기독교 시절 기독교는 로마 세계에서 역겨운 것이었다. 약함이 강함이라니. 이는 니체 역시도 그렇게 봤다. 그것은 노예의 것이라고. 후에 자연을 보니 하나님의 다스림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양육강식의 자연을 본다. 우생학을 무장한 이들은 고대 시대를 재연한다. 나치를 보라! 히틀러와 그들은 기독교를 역겨워 했다. 약함이 강함이라니.

 

얼마 전 아이들과 역할극 비슷한 걸 했다. 나는 무신론자, 너희는 기독교인. 나를 설득해 보라고. 사람을 왜 죽이면 안 되는지, 왜 혐오하면 안 되는지, 도덕이 무엇인지 대충 이런 주제였다. 나는 싫은데! 싫은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라고 답했다. 아이들은 그건 무신론이 아니라 사이코패스가 아니냐고 묻는다. 니체가 말한대로, 나치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신의 형상이 아니라면 인간에게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은 한낱 먼지며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나치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뭐가 다를까. 나치의 시대가 100년도 안 되었다. 불과 77년 전의 이야기다.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든 니체와 나치의 망령이 되살아 날 수도 있을 것같단 생각이 불연 듯 들기도 한다. 어떤 가사처럼 기독교가 사라진 시대를 생각해 본다. 유토피아일까? 모르겠다. 일단 이책 <도미니언>을 추천해 보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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