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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역사

[책리뷰] 로드니 스타크 - 기독교의 발흥

by 카리안zz 202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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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로드니 스타크의 이 책이 요즘 화제다. 이유는 모 대형교회 목사님께서 적실하게 이 책을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이 책 4장에는 역병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자세가 있기 때문에 언급하신 이유를 알겠더라.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언급을 잘 안 한 이유는 이 책에선 초기 기독교인들은 역병 상황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해 주는데 이번 코로나19는 대처가 전혀 달라야 한다. 그래서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 있기에 이걸 오늘 코로나19와 연결시키는 거에 별로 내키지 않았다. 물론, 이웃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이을 수는 있다. 

 

로드니 스타크, 유감

 이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 그래서 이후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그다지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번역된 두 책의 제목을 봤는데 한 책은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와 얼마 전 나온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이다.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이 없다. 딱히 내가 거기에 대한 전공을 하지 않는 이상 로드니 스타크는 별로 읽을 일이 없지 싶다. 그렇다면 나는 왜 로드니 스타크에게 유감인가? 

 

 로드니 스타크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학과 텍스트 해석에 훈련을 받은 학자들이 과학적 이론보다는 비유를 취급했던 구세대 사회 "과학자들"과 더 편하게 어울리는 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들의 작업 역시 문학적 인용으로 충만하게 케케묵은 도서관 먼지 냄새가 난다. 그러나 과학은 파피루스학과는 달리 더 묵은 것이 더 좋은 법은 거의 없음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을 통해 내가 해야 할 핵심 과제는 초기 교회를 살피는 역사학자들이 더 강력하고 현대적인 사회과학적 도구들과 친숙해지도록 돕는 것이다.
... 이 책에서 나는 기독교의 발흥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그 토대는 근대 사회과학 이론에서 얻은 많은 추론들이다. 그리고 종교와 종교 운동에 관해 내 자신이 정식으로 이론화한 학설들을 구체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51-52)


바로 신흥종교 운동의 사회적 토대와 관련하여 이미 검증된 사회학의 명제들을 사용함으로써 기독교의 개연성 있는 계급적 기반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60)


나는 신약시대의 헬라파 유대인과 19세기 해방된 유대인 간에는 광범위한 정황적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93)

 저자는 신흥종교(통일교 등)와 19세기 유대인를 분석하며 얻은 사회과학 데이타를 바로 초기 기독교에 대입을 한다. 솔직히 나는 이 대목에서 뜨악했다. 아니, 너무 점핑을 뛰는 것이 아닌가? 신흥종교가 이랬으니깐 초기 기독교도 이랬을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당장에 미국이라는 배경에서 통일교가 성장한 것과 로마 사회에서 초기 기독교가 성장한 것과 그 사회적 풍토가 너무 다르지 않나? 물론, 저자 역시도 이에 동의를 한다. 저자 나름의 안전장치인듯 하다.

물론 로마 시대와 지금 시대는 기본적인 사회/심리 프로세스가 다르다고, 그러니까 고대에는 인간의 정신이 지금과는 다른 원리로 작동했다고 주장하지 않는 한 말이다. (77)

 뒤에 문장에서는 그러니까부터는 비꼬았지만 사회/심리 프로세스가 다르다기보다는 그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이랄까 그런 것들이 사회/심리를 다르게 만든다.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물론, 개연성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하니깐 나름의 사회과학적인 이론 도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도출까지는 과학이라는 명을 붙일 수 있겠으나 초기 기독교로 확장시킬 때는 과학이라는 말을 못 쓴다. 허술하다고 본다. 

 

 8장 순교자 편은 너무나 건조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으로 최근에 영화가 나왔다. <사일런스>란 제목의 영화는 책에서 읽었던 것보다 순교의 직면에 서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훨씬 생생하게 잡아냈다. 예수를 전하면 죽기에 고민하는 신부의 모습은 인상 깊다. 오히려 이런 작품이 순교를 더 잘 드러내지 않을까. 문과성향의 차이려나? 스타크가 말하는 순교는 건조하고 기계적이여서.

 

그래도 좋았던 점

 그래도 이 책에서 4, 5장은 좋았다. 역병과 여성의 역할을 말하는 부분이 특히나 그랬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2020/03/08 - [공부흔적] - [강의] 《신앙을 읽다》첫 번째 시간: 초기 기독교(초대 교회와 전염병, 전염, 역병, 여성, 로마황제 박해)

 

여기 글을 한 번 살펴본다면 좋을 듯하다. 역병과 여성에 대한 부분을 언급했다. 

 

 

나가면서

 초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 여러 분기점이 있다고 저자는 본다. 역병의 발생에서 이교도와 초기 기독교와의 차이, 여성과 아이에 대한 태도 차이 등 흥미로운 지점들이다. 또, 그는 네트워크(인간관계-가족, 친구? 포함)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읽고보니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기독교의 발흥에 합리적인 설명을 해줄 수 있다고 본다. 

 사건을 잘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지만 사회’과학’의 작업의 적용은 여러모로 낯설다. 낯설기에 미심적인 의혹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신학자들의 시선으로만 봤기에 한정적일 수 있지만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보니 이렇게 볼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 추천한다! 


메모

현대 사회과학은 교리의 흡인력은 매우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사람이 새로운 신앙이 전하는 교리에 큰 애착을 가지게 되는 것은 개종한 이후라는 것이다. (34)

- 신천지도 이렇게 보면 되지 않을까? (코로나19 이후 신천지에 대한 영상을 몇 개 봤는데 확실히 이 책에서 말하는 네트워크가 그들의 부흥의 핵심인듯 하다.)

 

 

 

실제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도 히브리 문서들은 메시아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십자가를 사용했다(피네건 1992:348). (101)

- 아무리 그래도 십자가는 아니지 않았을까? 나무 위에 달린 자라고는 했지만...

 

 

 

19세기 서부 유럽에서 새롭게 해방된 많은 유대인은 그들이 처한 주변인적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개혁파 유대교로 귀의했다. 그렇게 그들의 종교적 유산을 일정 정도 유사하게 보존하면서도 민족성이라는 무거운 짐은 내다 버린 것이다. (111)

- 아무리 그래도 예수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게 그들에게 쉬운 선택이었을까? 이렇게 간단히? 사실은 명확하고 그 빈구멍을 설명해야 하는데 그때 사회과학의 모델을 가져오는 것 아닐까? 


책 맛보기

 

유사한 방식으로, 기독교는 사회의 빈부격차가 증가하는 시점에 사회계급 간 차별을 크게 완화시켰다. 기독교는 '이생'에서 모든 이가 부와 권력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다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설교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이가 동등하며 형편이 더 나은 자에게는 궁핍한 자를 도울 책임을 부여하셨다고 설교했다. (282)


기독교적인 삶을 온전히 구현하기 위한 지도를 받기 위함이다. 성직자는 양떼와 거리를 두지도 않았다. 성직자는 신비르서운 비밀을 움켜쥔 배타적인 엘리트가 아니라 선생이요 친구였다. 터툴리안이 설명했듯이 성직자는 "돈으로 구매한 것이 아닌, 확고한 인격"으로 선발된 이들이었다. 더욱이 교회는 자원을 조달하려면 평신도 층에 의존해야 했다. (310)


기독교가 성장한 이유는 (비록 많은 기적이 일어났지만) 저잣거리에서 기적을 행사해서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가 성장해야 한다고 천명해서도, 심지어 순교자들이 신뢰도를 높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기독교가 성장한 이유는 기독교인이 치열한 공동체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 공동체를 소 플라니우스를 그토록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엄청난 종교적 소득을 양산한 기독교인의 "불굴의 의지"가 창출되었다. 그리고 성장의 주요 수단은 하나로 뭉쳐 의욕적으로 친구와 친척, 그리고 이웃을 초대하여 "복음"을 나누려고 노력했던 수적으로 증가하는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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