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이 책은 고대에서 밀턴의 시대까지 에피소드들을 저자가 선별해서 적은 책이다. 상세하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막적인 상식을 배우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같다. 각 장마다 호흡도 짧아서 조금씩 조금씩 읽어도 괜찮을 듯하다. 가볍게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이 상식적인 내용을 소개한다고 했는데 한 챕터 짧게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세계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147-152)
저자는 정보를 아주 맛깔나게 잘 꾸민다. 특히 22장이 그렇다. 방송 '히스토리 채널'에서 역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 100명을 뽑았단다. 기간은 서기 1000년에서 2000년까지의 인물을 뽑았다. 그중 1위가 누구일까? 일단 10명의 인물을 적어 보겠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윌리엄 셰익스피어, 카를 마르크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10위 권 안에 드는 인물들이다. 과연 여기에서 1위는 누구일까? 그건 바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이다! 의외인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순위를 적어보겠다.
1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2위: 아이작 뉴턴
3위: 마르틴 루터
4위: 찰스 다윈
5위: 윌리엄 셰익스피어
6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7위: 카를 마르크스
8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9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0위: 갈릴레오 갈릴레이
의외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명도에선 구텐베르크가 가장 낮을 수 있다. 아니면 알아도 그냥 인쇄업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루터도 동양권 사람이 본다면 왜 종교계의 인물 3위나 차지하는지 의문일 수 있다. 그야 루터로 인해 촉발된 종교개혁은 단지 종교만을 개혁한 것이 아니라 유럽사회 전체를 개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정교분리가 당연하지만 저 당시만 해도 정치와 종교가 긴밀한 영향을 끼치던 사회였다. 이걸 박살낸 것이 종교개혁이다. 그렇다면 구텐베르크는 왜 1등을 했을까?
일단 그를 단순히 이윤을 내는 벤쳐기업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니 그의 출생에 사람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나 보다. 정확한 날짜를 모르고 1400년경으로 추정한다. 사망일은 1468년 2월 3일로 알려져 있다. 인쇄술이 발달되기 전에는 성경 한 권을 만들려면 200~300마리의 가축을 도살해야 한다. 게다가 1,200쪽 자리 책 한 권에 필경사 두 명이 꼬박 5년을 매달려야 했다. 그러던 차에 펄프로 만든 종이로 책값이 크게 하락했고 자연히 읽고 쓰는 것에 비용이 저렴해졌다. 책 시장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고 구텐베르크는 인쇄업에 뛰어들어 1450년경 활판인쇄술을 발명했고 1455년 성경을 인쇄했다.
그러던 차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써졌고 이는 때맞춰 발명된 활판인쇄술 덕분에 대량으로 인쇄되어 유럽 세계 전역으로 뿌려졌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종교개혁의 불길에 부채질했다고 볼 수 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도 인쇄술을 통해 독일 전역에 퍼졌고 독일 전역에 표준어로 정착했다. 독일의 문화적 민족주의를 확산시킨 것이다.
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한국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지만 학계의 공인된 역사는 아니다. 물론, 아주 지어진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구텐베르크의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동양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면 왜 동양 사회를 변혁시키는데 영향일 미치지 못했을까? 이유는 동양에서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네스의 기록과 역사 기록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기네스의 기록들은 대중들의 관심을 끈 만하고 흥미롭다. 하지만 그 기록들은 역사적인 의미가 없다.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누가 '최초'였는지가 아니라, 누가 '역사를 바꾸는 데 더 크게 기여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152).
나가면서
책 맛보기를 보면 알겠지만 알찬 정보들이 참 많다. 상식을 배우고 전반적인 역사의 분위기를 살짝 맛보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메모
p. 76 메모: 고대와 현대를 오가며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서 좀 더 생생히 다가온다. 칼럼 느낌.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 확산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검토해볼 때, 이제 막 근대 초입에 들어선 우리 사회의 역사적 단계에 비해 담론이 지나치게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망국적이고 전근대적인 지역감정, 그리고 정치인·관료·언론인 사이에 팽배해 있는 불합리와 부정부패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190)
- 내 말이!(나 역시 한국 사회를 그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고 보는 것에 딴지를 걸고 싶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시민혁명을 경험한 적이 없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왕의 목을 잘라본 경험이 없다. 여전히 전전긍긍하면서 여왕님을 떠받들고, 그분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238-239)
- 시대가 달라졌다. (여왕님은 탄핵당하셨다!)
책 맛보기
서기 455년 6월 2일, 북아프리카에 독립 왕국을 건설한 게르만족 일파인 반달족이 지중해를 건너 로마를 침공해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를 자행했다. 이 사건으로 '고의 또는 무지에 의해 예술품이나 공공시설을 훼손하거나 약탈하는 행위'란 뜻의 '반달리즘'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70)
그는 신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려 했고 단호한 의지로 학문을 부흥시키고자 했다. 중세 초기 서양은 지독한 문맹 사회였지만 샤를마뉴의 열정에 힘입어 그의 생전에 학문이 부활했다. 이른바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활짝 꽃을 피운 것이다. (81)
근대 이후 서유럽 그리스도교 문명이 이슬람 문명을 압도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 시대 일반 독자들의 뇌리에는 '서양 문명은 앞선 문명', '아랍 문명은 뒤떨어진 문명'이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므로 서유럽인이 아랍 문명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일이다. (95)
유의해야 할 것은, 중세 전성기에 서유럽이 달성한 사상적·학문적 업적이 '번역 작업'이 없었다면 결코 등장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12세기에는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고전 저작들이 라틴어 처음 번역되어 서유럽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번역 작업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 저작이 서양 사상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96)
'바로크'는 포르투갈어의 바로코(삐뚤어진 모양의 진주)에서 왔다. '거칠고 조야하다'는 뜻이다. 바로크는 갈등과 모순, 괴리를 봉합하지 않은 채 대립의 양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인간을 이상화한 르네상스와 대조적으로, 바로크의 인간관을 요약하는 명제는 '나는 불완전하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209)
인간은 원초적 불행을 느끼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를 얻지 못하지만, 신경을 분산시킬 오락과 놀이, 노름과 여인들과의 대화, 전쟁이나 거창한 기획 따위를 추구한다. (213)
...밀턴은 종교개혁을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며 영구히 지속되어야 할 과제로 간주했다.
밀턴은 칼뱅이 비춰준 '섬광'을 너무 오래 쳐다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빛은 '응시'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며, 오래 쳐다보면 앞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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