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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앙서적

[책리뷰] 레슬리 뉴비긴 - 복음, 공공의 진리를 말하다

by 카리안zz 2020.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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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레슬리 뉴비긴의 책을 읽었다.

올해 들어 결심한 게 IVP모던클래식 책을 한달에 한권씩 읽기로 했는데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너무 타격이 컷나.

배제와 포용은 1장만 손대고 앞으로 나가질 못한다.

언제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을 읽어 나갈까.

 

"우리는 그것들을 적어도 잠정적으로나마 믿어야 한다. 신앙으로의 인격적 투신과 증거에 대한 인격적 판단은 모든 단계에서 요구된다. 신앙과 지식의 절대적 분리란 없다.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p.40)

 

"하나님의 계시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신뢰할만한 근거는 없다." (p.41)

 

"우리는 데카르트가 제공하기를 원했고, 또 우리 문화의 과학적 분야 역시 자주 제공하려고 했던 그런 종류의 확실성이 우리나 다른 모든 인류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관념을 포기해야 한다." (p.43)

 

진리는 의심하며 알아가는 것인가 믿어서 알아가는 것인가.

데카르트 vs 어거스틴에서 당연히 저자는 어거스틴의 편을 든다.

"진정한 이해는 은총과 분리된 확실성의 추구가 아니라, 이해를 추구하라는 부르심을 수용함으로써 동시에 온전한 이해는 우리의 탐구의 지평 너머에 있는 은총의 선물일 것임을 앎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p.44)

 

"나는 다원주의를 두 종류로 구분했다. 나는 그것들에 '불가지론적 다원주의'와 '헌신된 다원주의'라는 명칭을 붙여 볼까 한다. 물론 전자가 의미하는 바는 진리란 알 수 없는 것이고, 상이한 신념과 행태를 판단하는 기준이 없다고 보는 그런 유형의 다원주의이다. 이는 세칭 '자유' 사회에서 점점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다원주의이다. '헌신된 다원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나는 지식이란 순전히 객관적인 것도 그렇다고 순수하게 주관적인 것도 아니고 인격적이고 책임 있는 헌신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발견을 공적으로 진술한다는 폴라니의 비전을 따르고 있다." (p.66)

 

후자의 헌신된 다원주의는 리처드 마우가 쓴 무례한 기독교와 의미가 통한다고 본다. '책임 있는 헌신으로' 어디에서? 바로 우리가 입이 마르도록 말하는 외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거기서 진리를 외친다. (p.73 참고)

 

"찢겨지고, 혼란스럽고, 타협함으로써 교회는 좀체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는 수많은 가이사의 왕좌를 차지했던 이들보다 오래 지속하였고, 그보다 훨씬 오래 지속할 것이다. 교회가 신뢰하는 그 진리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p.101)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제 방영된 PD수첩을 본 이후라 타이밍이 기가막히다. 절로 공감된다. '찢겨지고, 혼란스럽고, 타협함으로' 절묘하다. 이 책 90년대에 쓰여진 책인데. 20년이 지난 뒤에 한국 상황에도 적용된다. 그럼에도 절망하지만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이미를 강조한 승리주의에 빠지지 말라 했던가. 아니 절망하기에 더욱이 이미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둘 수밖에 없다. 아직은 아직 아프다. 진리의 외침이 선포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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