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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책리뷰] 문유석 - 미스 함무라비

by 카리안zz 2020.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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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판사들의 생활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러던 찰나에 문유석 판사의 소설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딱! 내가 기대했던 대로의 책이었다. 이야기가 있으면서 그 사이사이 판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나 판사의 고충이 소설에서는 잘 녹아 들고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1년 뒤 인가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내심 반가웠다. 드라마를 다 안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강 등장인물을 봤을 때 이미지가 대체로 괜찮은 듯 보였다. 

 재판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게 힘이 있고 재미있었다. 현직 판사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경우가 있을까? 문유석 판사 말대로라면 판사들은 글은 참 많이 있지만 그건 사건에 대한 글일 뿐이었다. 문학도 아니고 다른 분야의 글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주장되는 서로의 이야기들의 혼합체를 읽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런 소설을 잘 쓰는 건 문유석 판사의 재능이 아닐까 추측된다. 

 

 

문유석 판사가 생각하는 전관예우

 

 나에게 있어 이 책의 백미는 각 챕터가 끝나고 있는 <판사의 일> 부분이었다. 어쩌면 판사의 생활이 어떤지는 여기에서 더 잘 드러났다. 문유석 판사가 하고싶은 이야기도 여기에서 더 폭넓게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전관예우에 대해서 문유석 판사는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244-253). 문유석 판사는 모든 판사들이 전관예우가 없다고 주장한다고 전한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은 전관예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판사만 없다고 말해서 더 욕을 먹는 판국이라고 한다. 문유석 판사는 왜 이렇게 인식에 괴리가 있는지는 전관예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사들이 생각하는 전관예우는 이렇다. 

 

먼저, 판사들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전관 변호사의 로비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재판의 결론이 바뀌는 것', '판사가 재판 결론과 관련하여 전관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하는 것',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주고 되는 것을 안 되게 하는 것'이다. 이건 그냥 대놓고 범죄인 경우들이다. 놀랍게도 일상적으로 판결 결론에 대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돈을 판사에게 전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45)

 

 이런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돈을 받고 갑자기 결론이 바뀌면 누가 봐도 이상해진다. 이러면 좁은 사법계에서는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범죄자가 없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결단코 아니다. 문유석 판사는 전관예우가 없다고 하지만 전관예우를 통해서 왜곡된 인식을 부추기며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전관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한다(248). 어쩌면 이런 돈벌이 수단이 되어야 하기에 전관예우는 존재한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문유석 판사는 마냥 판사들을 옹호하지 않는다. 판사들이 '전관예우'라는 사회의 비판을 너무 협소하게 이해한다고 지적했다(249). 판사가 솔직히 판결하는데 마음 속의 변화야 돈을 받고 변했는지 아니면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보고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건 조사를 면밀히 해봐도 알까 말까인데 모든 판사들의 판결에 이런 잣대를 드리대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외부자들의 시선에 나타난 법원의 행태이다. 법관이었던 사람이 변호사로 개업해서 친분을 과시하고 거액을 요구한다. 재판장에게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면 외부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의심을 사온 것은 법원이다. 문유석 판사는 시민들이 '전관예우'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법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거라고 한다(250).

 

돈 있고 힘있는 사람에 대한 납득 가지 않는 양형, 결론에 이른 과정을 도무지 알 도리가 없는 불친절한 판결문, 억울한 사정을 충분히 경청하지 않는 재판, 이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 그 배후에 '전관예우'가 있을 거라 분노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납득이 안 되니까. (250)

 

 문유석 판사도 다가오는 젊은 세대에게 기대를 건다. 전관예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면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을 참고하길 바란다. 여기에도 전관예우에 대해 심도있게 다뤘다. 문유석도 김두식도 다가오는 젊은 세대에게 기대를 건다. 그 젊은 세대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부조리를 서구식 합리주의, 개인주의가 익숙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이런 집단주의에서 오는 불의가 더 잘 보이고 따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1/30 - [북리뷰] - 김두식 - 불멸의 신성가족

 

이 장면, 꼭 나왔으면...

 

 <미스 함무라비>가 JTBC에서 드라마로 나온다고 했을 때 이 장면은 꼭 나왔으면 한 부분이 있다. 이 책의 6부(257-312)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특히 '주폭' 노인 에피소드다.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의 한 주제를 사건으로 가져온다. 자유의지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신학에서도 자유의지가 종종 등장하는데 선악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온다.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따먹게 나뒀냐고 말할 때면 늘 반복되는 대답이 자유의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로보트처럼 만들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는 게 바로 이 대답이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주장이 현대의 신경과학에게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주폭 노인은 전과 26범인데 도대체 어떤 곳에서 생활을 하는 것일까? 소설속 주인공들이 그곳에 직접 가본다. 이 에피소드는 문유석 판사가 직접 겪은 일을 전한 것이다. 지방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연달이 일어났었다. 특정 아파트 이름이 자꾸 등장해서 주말에 직접 찾아가 본 것이다. 그는 그 아파트를 이렇게 표현했다. 

 

동네 전체가 희망이 하나도 없는 분위기였다. 아이 웃음소리 하나 없고, 가게에선 소주만 잔뜩 팔리고 있고, 형사재판을 하다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법이나 재판이란 건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안온한 중산층의 도덕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이들에겐 술 먹고 싸우는 게 일상이다. 사람은 절박한 처지에 놓이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작은 일에도 울컥한다. 늘 자존감이 낮은 상태, 그런 환경에선 폭력 사건이 자꾸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 사람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남한테 피해 안 끼치고 우아하게 살 만한 선택의 가능성이 과연 이 사람에게 있었을까 하는. (308-309)

 

 물론, 구조나 환경 때문에 범죄를 했다고 하면 왠지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 같은 환경에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구조나 환경을 너무 등한시 하면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드라마에서 꼭 나왔으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티비를 딱 틀었는데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가 하고 있더라. 왠걸 그때 딱 이 부분이 나오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는 덜 허름한 임대 아파트였는데 그래도 보고 싶은 부분을 이런 기가막히 타이밍에 맞춰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구조와 환경에 대해서 꼭 생각해 보고픈 장면이었다. 현장까지 직접 나선 문유석 판사에게도 존경을 표한다. 

 

 


메모

 

"사람 사는 세상은 정답만 있는 건 아니니 조급해하지 말아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조금 억울해도 그 또한 다 지나갑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들 하잖아요?"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는 다시 나긋나긋했다. 달콤한 솜사탕처럼. (123)

- (혜민과 김난도 동시) 디스하는 클라스를 보아라!하하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평소 생각조차 안 해본 것이란 결국 나에게 있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297)

- 존재론이 아닌가? 

 

 

 

계속 높아져만 가는 오해와 불신의 장벽을 부수려면 이제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신전에서 내려와 시민들이 오가는 광장에서 함께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380)

- 유시민의 글에서 비슷한 늬앙스를 본 거 같은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참고해 본다. 


 

 

책 맛보기

 

 

"...사람들 속의 과물을 들여다볼수록 내 안의 괴물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사람들은 내 겉만 보지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해요. 난 엄격한 가정에서 모범생의 탈을 쓰고 자랐지만 속으로는 날 억누르고 괴롭히는 인간들 모두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처지가 바뀌었으면 나 또한 내가 재판하는 범죄자들과 같은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192)

이에 못지않게 힘든 사거이 사건 당사자가 목사나 교수인 경우다. 평생 자기 영역에서는 신처럼 군림하던 사람들이라 자기 확신이 강하고 고집이 세서 판사 말이고 뭐고 남의 말은 도통 듣질 않는다. 경험은 못해봤지만 판사 또는 전직 판사가 사건 당사자인 경우도 비슷할 것 같다. 노인들이 당사자인 경우도 쉽지 않다.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벌컥 화를 내기 일쑤다. 그런데 이 사건은 형제간 재산 분쟁인데, 소송을 주도하는 이가 육십대의 목사와 교수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임 판사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218-219)

 

 

 


 

 

목 차

 

1부

첫 재판

정상과 비정상

아프냐? 나도 아프다

판사의 일_ 그런데 좌배석판사가 뭔가요?

2부

초등학생도 아는 정의

내 손톱 밑 가시

판사의 일_ 골무

3부

가슴 털 사진 보낸 가장의 밥줄을 끊는 건 심할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성공의 길

타협의 길

판사의 일_ 기록

4부

흐트러진 단 하나의 실오라기

잊힐 권리, 잊을 의무

아이들은 아빠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

판사의 일_ 보따리에서 캐리어까지

5부

헬조선 항공의 풍경

재산이 가족에 미치는 영향

신화가 불멸이 되는 과정

판사의 일_ 전관예우는 네스 호의 괴물인가?

6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법원

메멘토 모리

개가 된 것은 너의 자유의지였노라

나약함이라는 죄

판사의 일_ 나쁘고 추한 사람은 없다. 나쁘고 추한 상황이 있을 뿐

7부

신뢰를 받지 못하는 판단자

튀는 판사와 막말 판사

정당방위인가 천벌 받을 패륜인가

처음부터 다시 토론합시다

마지막 재판

박차오름 비긴스

판사의 일_ 이제는 신전에서 내려와 광장으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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