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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책리뷰] 손아람 - 디 마이너스

by 카리안zz 2020.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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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내가 손아람 작가를 알게 된 건 영화 <소수의견> 때문이다. <소수의견>의 모티브는 용산참사다. 나는 경찰도 한 명 죽었기에 그저 사고로 치부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참 충격적이었다. 입주인들을 내쫓으려는 그들의 방법에서 충격을 받았다. 경찰이라는 국가의 손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위에서 너무나 강경하게 대응한 그 당시 지휘자도 충격이었다. 안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 비극이 되었다.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였지만 영화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나는 배우 윤계상의 연기를 참 좋아한다. 그의 연기가 너무 좋다. <범죄도시>가 개봉하기 전부터 좋아했다. 연기가 너무 능글맞다고 해야 할까? 내가 이런 연기자를 좋아하는구나 세삼 느꼈다. 그렇게 영화에 흥미를 느끼니 검색을 해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원작 책으로 있고 그 작가가 손아람이라는 걸 알아냈다. <소수의견>이라는 책을 먼저 안 읽었는데 아마도 <디 마이너스>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90년대에서 2000년쯔음을 배경으로 한다. 아마도 저자의 자서전적 내용이라고 들었다. 그는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으니 대강 작품의 분위기도 그곳이라고 봐야할 듯 싶다. 그곳에서 운동권에 몸담은 사람의 이야기다.

 요즘도 주사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3분이 교회를 나갔다. 이유는 나라가 주사파들이 장악해서 빨갱이화되는데 우리 교회도 거기에 동조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태극기 집회를 옹호하시는 분들이다. 전국의 교회들이 광화문을 지지하는데 왜 우리 교회만 이상하냐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 이거 참 위험하구나 싶었다.' 지금은 교회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NL과 PD가 뭔지 정말 궁금했다. 격동하던 운동권의 분위기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먼저 읽었다. 

 

 글을 너무 잘 쓴다. 글을 너무 잘 쓰는 데다가 공감되는 내용까지 있다. 운동권에서 활동하다가 사랑에 빠지고 고문당하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그런 내용이 있다. 나야 운동권은 아니지만 사랑은 해봤다. 모든 사랑은 제각기 다르지만 실패한 사랑은 다 비슷한 걸까? 손아람의 문장이 너무 공감이 된다. 2017년 근래 나의 가장 슬럼프였던 해. 기억나는게 별로 없다. 억지로 지우는 건지도, 아니면 2016년에 너무 힘을 쏟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연인과 헤어진 뒤 이 책을 읽었기에 너무나 공감되는 글들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도 연인과 헤어진 뒤 자신의 마음을 남겼으니까. 주인공의 심정처럼 나도 하루종일 "저항할 수 없는 생각에 무력하게" 사로잡혔었다. 또, "기억하기는 쉽다. 잊기는 어렵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지우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몸부림친다. 처음으로 되돌리려고" 처음으로 몇 번을 되돌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저항 할 수 없는 생각도 멸종했다. 저자도 하루종일 생각나게 하는 그 사람을 만나서 멸종했듯이 나도 1년 뒤쯤 하루종일 생각나게 하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 멸종했다. 마지막 문자를 보냈을 때 나는 안도했다. 내가 너무나 잘 알던 어떤 감정과 발버둥들이 없어져 버린 날이었다. 만났기에 일어난 일이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글까지 잘 써보인 건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그 심정이 약간 올라온다. 아마도 아직 완전히 소멸은 아닌갑다. 사라질 뿐인가? 

 

 손아람의 <디 마이너스>. 이 책의 제목이 학창시절 대학에서 받은 점수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이 점수들에 그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의 'D-'는 그저 받은 성적이 아니라 그의 인생이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래서 'D-'가 아니라 '디 마이너스'인지도 모르겠다. 

 


 

 

메모

 

장마가 지나간 여름
웅덩이에 빠뜨린 시들을
끝내 건져내지 못하고 말았네 (23)

- 추위가 지나간 겨울

  눈길에 빠뜨린 말들을

  끝내 건져내지 못하고 말아네

 

 

 


 

 

책 맛보기

 

 

아내는 딸아이의 건강을 생각한다. 딸아이는 내 건강을 생각한다. 나는 담배를 생각한다.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6, 이하 모든 페이지는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으로 한다)

"신자인 부모님이 너를 강제로 교회에 보냈다면서. 무신론자인 너는 아이가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강제로 막겠다고? 그게 뭐가 다르지? 종교를 종교의 방식으로 부정하는 거잖아." (31)

그런 말을 들으면 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싶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일원이는 왜 수학 문제를 못 풀어서 자학에 빠지는가? 인문학도인 나는 왜 여기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가? 인류가 주판과 계산기를 밀어내고 수학의 방법론적 수단이 되어버렸나? 
그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서로에게 득 될 게 없었다. (95-96)

정신연령이 유년의 어떤 시점에 머무는 발달 장애를 정신지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남자의 증세는 시대 지체라고 명명해야 할 것이었다. (106)

"미쥬가 그렇게 좋아?"
대석 형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그렇게 좋다는 게 어떻게 좋다는 건데?"
"우리 과방으로 찾아와서 무릎을 꿇을 만큼"
"그건 내가 미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건 왜 무릎을 꿇은 거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이 보니까. 여자는 자기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눈에 영향을 받거든
대석 형은 나를 보며 웃었다. (119)

하늘은 고요했다. 논발만이 어지럽게 흩날려 내렸다. 하얀 눈송이. 우리도 그들도 해칠 수 없는, 우리도 그들도 가리지 않는. 결국 전투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 속한 일이었다. (156)

내가 이 피비린내 풍기는 싸움을 진작 버리지 못한 이유를. 나는 올바름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숭고한 인간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나는 그저 미쥬의 곁에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 (193)

땅은 안개에 잠겼고 바다는 바에 묻혔고 하늘은 엔진 소음에 밀려났다.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나는 흥분한 것처럼 떨었다. 엔진 진동 때문이었다. 조금은. 요란한 굉음을 쏟아내는 엔진실 앞에서는, 내 고백이야말로 잡음처럼 들렸다.
 "서울에 돌아가면 우리가 조금 달랐으면 좋겠어"
 미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다를 보고만 있었다.
 "어떤 대답도 상관없어. 난 괜찮아."
 미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정말이야. 난 괜찮아."
 미쥬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미쥬를 갑판 위에 홀로 남겨두고 먼저 선실로 돌아내려갔다. (235)

"인식이 도약적이잖아. 아름다운 만큼 위험해 보여. 이 사람의 글은 옳을 때도 아름답지만 완전히 틀렸을 때도 아름다울 테니까." (245)

나는 알고 있었다. 문 경사도 알고 있었을까? 그가 사용하는 전략은 철학과 수학과 경제학의 공동 유산이었다. 게임이론의 기초적인 모형. 죄수의 딜레마. 내가 입을 열면 진우가 망한다. 진우가 입을 열면 내가 망한다. 둘 다 침묵하면 둘 다 산다. 둘 다 입을 열면 둘 다 망한다. 그런데 결국 우리는 다 같이 입을 열고 다 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277)

진우가 기소된 실질적인 이유였다. 도로교통법 위반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도, 국가보안법 위반도,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도 아니었다. 독재에 대항했기 때문에, 혁며어을 계획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윌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세계인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축제는 태양만큼 뜨거웠다.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에 올랐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그것뿐이다. (282)

가까워지기는 어렵지만 멀어질 때는 가속이 붙는다. (298)

내가 모욕당한 미쥬를 위해 안전하게 대자보 따위나 붙이는 동안 그는 자신의 미래를 내려놓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무엇보다, 나는 멀쩡했고 그는 병을 앓았다. 그게 무슨 뜻인가? 그의 양심이 내 것보다 더 연약하고 예민하다는 뜻이었다. 대공분실에서 우리가 저지른 일은 완전히 똑같았는데도. 완전히 똑같았는데도. (306)

대한민국의 45개 국가기념일 가운데 17개가 전쟁과 관련이 있다. 축제는 인간의 죄에서 유래했다. 축제의 흥취에 익사 직전까지 젖었을 때, 비로소 인간이 저지른 지나간 죄는 깨끗이 망각된다. 
 그러므로.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인간의 죄가 계속되는 한. (314)

나는 저항할 수 없는 생각에 무력하게 사로잡혔다. (321)

불법 사람들을 노동자 조합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노동자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 나라의 노예였다. (336)

어둠이 세상을 거두어 가는 순간마다 나는 느꼈다. 사랑했던 사람을 완전히 벗겨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미쥬를 상상했다. 매일같이. 하루 종일. (336)

기억하기는 쉽다. 잊기는 어렵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지우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몸부림친다. 처음으로 되돌리려고. 얼마나 더 큰 에너지를 지나간 기억 위에 미련하게 쏟아부어야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337)

다른 교수들은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아붓느라 수업에 들어올 수 없었던 윤구의 성적을 D-로 올려주었다. 낙제에서 복권시킴으로써 정치적 신념을 위해 희생된 제자의 학업 혹은 문득 떠오른 젊은 날의 추억에 최소한의 존중과 경의를 표시한 것이다. (376)

누군가의 반대편에 서는 것으로 내 위치를 결정하진 않을래. (393)

택시가 떠났을 때 나는 안도했다. 내가 익히 알던 어떤 감정과 기억이 아무런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무사히 멸종해버린 날. 정확한 날짜는 역사는커녕 내 일기에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멸종이란 반드시 그래야 한다.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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