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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역사

[책리뷰] 이덕주 -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by 카리안zz 2020.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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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이 책 참 재미있게 써져있다. 책을 잘 쓰셨다. 각 챕터마다 알차고 귀한 이야기가 꽉 차있다. 학부 때 교회사 수업교재로 김영재 교수님이 쓴 <한국교회사>로 공부를 했다. 그 책은 좀 딱딱하고 어렵게 써져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말랑말랑한 문체인 듯하나 내용은 알차기에 목회자나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에게도 딱이다. 

 

 나 역시 목회자이며 설교를 할 때 여기에 내용을 자주 인용한다. 아직까지 인용하는 내용은 김창식 이야기이다. 김창식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머슴살이, 마부, 지게꾼, 장돌뱅이 같은 밑바닥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선교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게 된다. 어떤 소문이냐면 선교사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느니 노예로 판다느니 하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울링거라는 선교사의 집에 위장 취업을 했다. 그 집에 하인으로 들어간 것이다. 거기에서 선교사를 몰래 감시하려고 들어간 것이다. 선교사 집에 들어가 몰래 감시를 하고 있던 김창식은 전혀 뜻밖에 대접을 받게 된다. 울링거 선교사는 물론이고 그의 친구 선교사들은 나랏님 그러니깐 고종과 자주 만나는데 하인에 불과한 그에게 보내는 눈길과 손길이 따뜻하기만 했다. 하인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조선 양반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는 종종 자신과 같은 밑바닥 사람에게 '인간 대접'을 해주는 선교사들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마침내 개종을 결심해 울링거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위장 취업해 들어간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김창식은 계속 전도하면서 신학회에 들어가 정식 목회자 수업을 받은 후 1901년 우리나라 최초의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1924년 정년 은퇴하기까지 영변, 수원, 해주 지방을 돌아다니며 125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48군데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선교사들은 그런 그에게 '조선의 바울'이라는 명칭을 붙여 주었다. 머슴이었다가 한국 최초 목사가 되는 신분의 수직 상승을 경험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낮은 자'의 겸손과 순종을 잃지 않았다.

 그가 처음 선교사 집에 소개받아 왔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이, 창식이, 창식이!"하며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선교사들은 그의 이름이 "김창식이"인 것으로 착각하고 영문으로 표기할 때, 'i, y'(이) 자 하나를 더 넣었던 것이다. 김창식은 굳이 그것을 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낮은 자리'가 자신의 떠날 수 없는, 떠나서는 안 될 은혜의 자리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처음이야기 : 열 번째 이야기 한국의 최초 목사는 머슴 출신이었다, 89-94)

 

 위와 같은 내용들이 책 전체에 있다. 물론 당시의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모습들도 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강성호 작가의 <한국 기독교 흑역사>가 바로 그 내용일 것이다. 이승만 정권에서 개신교는 기득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와 같이 민족 독립을 위해서, 또 복음을 위해서 목숨과 헌신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그나마 이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강성호 작가는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내서 나름의 균형을 맞추기도 했다. 좋았던 점, 나빴던 점 모두 한국 개신교에 다 있다. 우리는 어쨌던 그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되도록이면 우리는 김창식 목사님과 같은 분들과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긴 호흡이 드는 책은 아니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짜임새 있게 잘 썼다. 추천한다! 

 


 

 

메모

실패한 종교, 보완할 종교 편(150-152)

- 이걸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책 맛보기

 

이같은 '서세동점' 과정에서 연출된 선교사들의 조선 접근이 성공했더라면 한국 개신교 역사와 그로 인해 형성된 기독교의 성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23)

병원 이전 계획에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 그의 선교 신학과 정책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는 정동이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병원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궁궐과 양반 저택, 외국 공사관이 즐비한 정동은 '귀족층'이 선호하는 곳으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편안하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크랜턴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병원을 옮기려 한 것이다. 병원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맞아 거지반 죽게 되어 버려진' 인생들이 사는 '여리고 골짜기'(눅 10:30)에 있어야 했다. (58-59)

이런 '쌀 교인'이 선교나 목회에 방해 요인이 될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런 '쌀 교인'을 교회 밖으로 몰아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이런 '쌀 교인'을 '참 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목회가 아니던가? (97)

는 빚 문서를 꺼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살라 없앴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교회 전도사가 증인이 되었다. 빚을 탕감받은 마을 사람들이 교인이 된 것은 당연하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종순일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 19:21)는 말씀을 읽고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교회에 헌납했다. 교회는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 묘지를 구입했다. 또 얼마 있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각 지방과 고을에 보내셨다'(눅 10:1)는 말씀을 읽고 아내와 함께 괴나리봇짐을 메고 남쪽 길상면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 후 '땅 끝'(행 1:8)을 찾아다니며 전도했다. 그는 그렇게 강화, 석모, 주문, 옹진 등지의 외딴 섬을 돌며 십수 처 교회를 개척하였고 평생 가난한 전도자로 생을 마쳤다. (105)

이들에겐 서구적인 것이든 한국적인 것이든, 무조건 배척하거나 답습하는 극단적인 행위를 지양하면서 두 전통을 조화시켜 하나의 새로운 질서와 전통으로 창조해 내는 능력이 있었다. (123)

 "하와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마리아가 아니었으면 예수께서 어찌 세상에 오셔서 죄를 대속하였으리오." 
 "하와만 보지 말고 마리아도 보시오!"
 이것이 남성들을 향한 여성의 외침이었다. 이후 토론회는 남녀 회중 사이의 난상 토론으로 이어졌다. 토론의 승패를 떠나 이날 토론회는 한국 교회사뿐 아니라 한국 근대여성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성 교욱과 남녀평등에 대한 최초 토론회였다는 점 외에 여성들이 처음으로 남성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38)

이렇게 해서 기독교 윤리가 사회 윤리로 자리 잡혀 나갔다. 부흥회를 통해 심령이 새롭게 변한 교인들이 보여 주는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한국 사회는 변해 갔다. 허례와 허식으로 남은 구습이 사라지고 진리를 담은 새로운 질서가 잡혀 갔다. 바울이 말한 바, '새사람'에서 시작되는 변화의 역사였다. (176)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새벽은 밤이 아니라 하루를 여는 '거룩한' 시간이었다. (186)

일제의 침략과 국권 상실,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파탄이라는 극한적 상황에서 집단적 '탄원'형태의 기도가 나왔다는 이야기다. 일리가 있다. 통성기도는 고통과 상실, 아픔과 슬픔을 지닌 자들에게 적합한 기도다. 부자나 지배자들은 잘 못한다. 한이 많을 수록 통성기도를 잘한다. 그래서 통성기도를 통(痛)성기도라 한다. 한 많은 우리 민족에게 썩 잘 어울리는 기도다. 한국 교인들은 통성기도를 하며 한도 풀고 은혜도 받았다. (189)

과연 부흥운동과 민족은동은 서로 배치되는, '상극'의 관계인가? 부흥운동에 참여하면 민족운동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가? 부흥사는 정치나 사회운동과 관련 없는 '순복음'만 전해야 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부흥운동에 열심이던 교인이 민족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민족운동사에 그 이름을 남긴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1910년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부흥사이자 설교자로 명성을 남긴 현 순 목사와 손정도 목사가 그 예다. 그 중에도 해석 손정도 목사 이야기는 자뭇 교훈적이다. (218)

 


 

목차

 

 

여는 글

1. 복음이 처음 들어온 이야기

(1) 열린 문, 고려문

(2) 바늘 눈인가, 바늘귀인가

(3) 조선의 마게도냐인

(4)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 이 땅에서 수고한 선교사들

(5) 같은 날 둘이 함께

(6) 선한 사마리아인의 발자취

(7) '한 알의 밀알' 무덤

(8) 언덕 위 양관

(9) 협산자 예배당의 부부 공덕비

3.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들

(10) 한국의 최초 목사는 머슴 출신이었다

(11) 쌀 교인에서 참 교인으로

(12) 너희는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

(13) 낮아지고 높아지고

4. 이 땅에 뿌리내리는 복음

(14) 네 이름이 무엇이냐

(15) 태극등과 십자기

(16) 찢어진 휘장

(17) '알지 못하는 신'에게

(18) 몽학선생

5. 초기 부흥운동 이야기

(19) 회개와 양심전

(20) 동, 서양의 화해

(21) 새 술은 새 부대에

(22) 날연보와 성미

(23) 새벽기도와 통성기도

(24) 사경회와 성경 암송

6. 기독교인들의 나라 사랑

(25) 구국기도회와 도끼 상소

(26) 희생양 피 세례

(27) 독립운동가의 '땅 끝 선교'

(28) 민중 목회와 민족운동

(29) 믿음의 연단 105인사건

7. 땅 끝까지 전한 복음

(30) 금년 안에 백만 명을 주옵소서!

(31) 디아스포라 선교

(32) 나라 밖에서 '하나 된' 교회

(33) 구세동 '예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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