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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역사

[책리뷰] 마이클 리브스 - 꺼지지 않는 불길

by 카리안zz 2020.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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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마이클 리브스. 이 책에서 였지 싶은데 성경 신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새관점에 대해서 엉뚱한 소리를 해대서 이 작가는 내 관심과는 멀어졌다. 최근에 삼위일체 관련된 책이었나? 그걸 냈는데 난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아마 그 부분을 읽고나서 역사신학과 칼빈신학 진영에 대한 내 선입견이 더 커졌다. 

 그런데 왠걸. 난 이 책을 평생 다시 안 볼줄 알았는데 작년에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1, 2월 사이 5주간 신앙강좌를 여는데 내 강의는 선배들의 신앙을 읽는 것이었다. 첫 시간은 초기 기독교인들이었고, 두 번째 시간은 어거스틴, 세 번째 시간은 칼뱅, 네 번째 시간은 윤동주였다. 처음 내 계획으론 초기 기독교인 자료는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과 래리 허타도의 <처음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이었다. 다행이 첫 시간은 무사히 잘 넘겼다. 두 번째 시간부터 문제였는데 자료를 피터 브라운의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이 책은 무려 880페이지나 되는데 이걸 다 읽고 정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맥그라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어거스틴 편, 곤잘레스의 <초대교회사> 어거스틴 편을 참고 했었다. 물론 전반기의 어거스틴은 피터 브라운의 책을 참조했었다. 세 번째 칼뱅은 브루스 고든의 <칼뱅>을 요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왠걸. 한 오분의 삼 읽었던가? 후에 다 읽긴 했지만 강의 준비 기간에 다 읽진 못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마이클 리브스의 책을 참조한 것이다. 이번에는 거의 마이클 리브스의 <꺼지지 않는 불길>에서 칼뱅편을 거의 다 참조했었다. 약간씩 브루스 고든의 책에 풍성한 설명을 곁들렸을 뿐이었다. 마지막 윤동주는 김응교 시인의 <처럼>을 참조했는데 이미 읽었던 책이라 머릿속으로 다 구상을 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칼뱅을 참조하면서 이 책을 다시 봤지만 약간 백과사전식으로 살펴 봐도 좋을 책이다. 물론 백과사전보다는 상세한 설명들이 많기에 강의때 참조하면 참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종교개혁 시작부터 마르틴 루터, 울리히 츠빙글리와 급진 개혁자들, 장 칼뱅, 영국의 종교개혁, 청교도, 오늘날의 종교개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장로교에 소속되어 있고 개혁주의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 원류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책도 참 잘 만들었다. 특히나 박규태 목사님께서 번역을 하셨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면 된다. 그리고 책이 안이 참 예쁘다. 가독성이 좋게 편집이 되어서 좋다. 이런 출판사가 나는 좋다! 책에 애정이 있어 보여서.

 

 


 

 

 

메모

카타리나는 규모가 상당한 사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거기서 만든 맥주 가운데 일부를 팔아 집안 살림을 돕고, 나머지는 식사 때 벌어지는 모든신학 토론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마실거리나 저녁거리로 사용했다. 이 와중에 카타리나는 이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말술을 들이키는 마르틴에게 가끔씩 잔소리를 퍼우어 댔으며 (87)

- 맥주가...ㅋㅋ

 

 

이런 일들 때문에 칼뱅은 보수 꼴통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라는 평판을 었었다. (165)

- 박규태 목사님 번역 최고!

 

 

1658년 크롬웰이 죽자, 사람들은유능한 후계자가 없음을 빌미 삼아 처형당한 왕의 아들인 찰스(1649년에 처형당한 찰스 1세와 앙리에트 마리 부부가 낳은 아들인 찰스 2세 - 옮긴이)에게 재빨리 왕관을 바쳤다. (263)

- 박규태 목사님 번역은 참 친절하다. 그래서 좋다. 

 

 

우리는 종교개혁 역사를 살펴보면서 "죽기까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믿음들이란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의 모든 순교자가 진리가 아닌 것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아무 가치 없는 고난을 당한 셈이다. 물론 그들이 잘못했을 수도 있다(종교개혁으로 인해 갈라진 두 진영은 하나같이 다른 편 순교자들은 잘못을 범하여 죽은 이들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맞은 운명은 그저 가볍게 무시해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288)

- 으흠...

 

 

오늘날의 상황은 그때만큼이나 큰 개혁이 필요함을 증언한다. 이신칭의 교리를 하찮다거나 잘못된 생각이라거나 복잡하다 하여 부끄럽게 여기고 멀리 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칭의의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보려는 일부 새 관점주의자들은, 특별히 그 강조점을 개인의 회심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놓으려 하면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루터가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조항이라고 말했던 것을 포기하거나 타협할 거리로 만들고 말았다. 그것은 단지 성경을 새롭게 읽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니다. (292)

- 으잉??(지금 좀 첨부해서 말하자면 이 사람은 음모론에 빠져있다. 과연 새관점주의자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가? 진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고 그걸 의도해서 그렇게 보는건가? 학자라면 할 수 없는 작태다. 그래서 이 진영의 한계가 이런 점이다. 성경신학의 어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런 작업이 나왔는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다. 저런 식의 사유방식은 결과만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논증도 설명도 없다. 음모론이다. 학자 타이틀은 떼길 바란다. 나는 이런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 

 

 

 

 


 

 

 

 

 

 

책 맛보기

그렇다면 당시는 역동적인 시대였는가, 썩은 시대였는가? 이런 식으로 대립 구도를 설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종교개혁 전야의 기독교는 분명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고 활력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기독교가 건강하다거나 성경에 부합했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종교개혁이 몰고 온 것과 같은 종류의 변화를 갈망했다면, 종교개혁은 그저 자연스러운 사회 운동이나 도덕 정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늘 이를 부인했다. 종교개혁은 대중이 일으킨 도덕 개혁이 아니었다. 기독교의 핵심 자체에 던진 도전이었다. 개혁자들은 하나님 말씀이 세상 속으로 뚫고 들어와 세상을 바꿔 놓는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아무도 예상 못한 사건이었고, 그야말로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인간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던지신 폭탄이었다. (30)

루터는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아무 구분이 없다는 주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71)

소키누스주의는 합리성과 도덕성을 내세운 근대 종교성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139)

요컨대 신학이 주된 동력이 된 종교개혁과 정치가 주된 동력이 된 종교개혁은 달라도 사뭇 달라 보인다. 잉글랜드의 왕들과 여왕들은 정치가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은 생각이 달랐다. 이는 잉글랜드의 종교개혁과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사이의 차이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개혁이 이루어졌고, 군주가 추진 세력이었다(그리고 개혁자들은 군주의 이런 개혁 조치를 활용했다.) 반면 스코틀랜드의 개혁은 아래에서 위로 이루어졌고, 군주의 뜻을 거슬러 민중이 개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228)

 

 

 

 


 

 

 

목차

프롤로그: 여기 내가 섰나이다

1. 중세의 종교상황: 종교개혁의 배경

 

2. 하나님의 화산: 마르틴 루터

 

3. 군인, 소시지 그리고 혁명: 울리히 츠빙글리와 급진 개혁자들

 

4. 어둠 뒤에 빛이 오다: 장 칼뱅

 

5. 타오르는 열정: 브리튼 섬의 종교개혁

 

6. 종교개혁을 개혁하라

 

7. 종교개혁은 끝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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