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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인물

[책리뷰] 루이스 프람스마 -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by 카리안zz 2020.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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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3명의 신칼뱅주의자들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벤자민 워필드. 예전 이상웅 교수님 논문에 3대 칼뱅주의자라는 말은 없단다. 삼두마차라는 표현이 있었다나. 신학지남 논문에서 그렇게 본 기억이 있다. 현대에 주목 받는 칼뱅주의자는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앨빈 플랜팅가, 리처드 마우가 있다. 나는 리처드 마우가 저 두 사람가 어깨를 나란히 할 줄 몰랐다. 앞에 두 사람은 미국철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철학학회 회장까지 역임하신 분들이다. 이렇게 칼뱅주의는 지금도 살아남았다. 

 

 나는 이 신칼뱅주의자들 중에 아브라함 카이퍼에게 꽂혔다. 그래서 닉네임도 카리안이다. 카리안의 이름은 영문으로 표기하면 kuyrian인데 kuyperian(카이퍼리안)의 준말이다. 그의 유명한 명언 "우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한 치도 없습니다."라는 그의 선언에 나는 매료되었었다. 그리고 주권이라는 단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대표작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도중에 읽다가 말았지만 해설부분은 읽었었다. 강영안 교수님께서 해설을 해주셨는데 거기에서 칼뱅주의의 가장 핵심이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했다. 예정설이 가장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가장 중심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고나서 칼뱅주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아브라함 카이퍼에게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가 읽은 책이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라난 하나님 나라>이다. 톰 라이트는 개혁주의 진영의 방법론인 세계관을 차용하는데(이 부분은 N. T. 라이트의 주저를 리뷰할 때 보여주겠다) 그의 대표작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역주권이 강조된다. 그래서 이 부분만 본다면 톰 라이트를 카이퍼리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게 연타석으로 아브라함 카이퍼에게 빠져드는 계기가 생겼다. 그러니 당연히 그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의 생애가 궁금해 졌다. 그리고 복있는사람의 '하나님의 사람' 11 시리즈가 아브라함 카이퍼여서 이 책을 읽은 것이다. 

 

 그의 별명이 있다.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13)이다. 그의 별명 답게 그는 많은 직업과 일을 했다. 목회자, 신학자, 언론인, 국회의원, 대학 설립자, 대학 교수, 교회 개혁자, 정당 당수, 수상 등 대단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특히나 나는 그가 네덜란드 수상을 했던 경력이 제일 놀라웠다. 한 나라의 대표가 목회자가 될 수 있다니! 영역주권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야한다는 것인데 정치, 문화, 사회 등 전 영역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치분야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조금 애매한 실정이다. 왜냐하면 전XX목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목사의 정치 참여를 했기 때문에 카이퍼식 정치참여가 논의 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소망교회 등 초대형 교회들이 정치적인 우클릭을 너무 노골적으로 해서 우리 나라에서는 아브라함 카이퍼식으로 정치참여를 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 30년 뒤에는 좀 달라지려나 모르겠다. 

 몇 년에 트럼프가 당선되고 미국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는데 배시 디보스(Betsy Devos)가 임명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재벌가(암웨이)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그녀가 칼빈 칼리지 출신이라고 한다. 칼빈 칼리지에서 바빙크 관련 공공신학 학위를 쓰고 계시는 분의 글을 읽었다. 칼빈 칼리지가 있는 그랜드 래피즈가 암웨이의 지원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칼빈 칼리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칼빈 칼리지 출신들이 우리 나라에도 많다. 대표적으로 옥한흠 목사님께서 칼빈 칼리지에서 석사를 받으신 걸로 안다. 보수 신학교 교수님들도 칼빈 칼리지 출신들이 제법 있다. 

 배시 디보스에 대해서 리처드 마우가 기고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해석이 다 되지 않아서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런데 대충 보니깐 그녀를 카리퍼리안이라고 소개했다.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영역에서 드러나야 한다.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교육부 장관을 하고 있다. 그녀가 잘 하든 못하든 공공신학 분야에서 공적신앙 분야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지 싶다. 

 

 아브라함 카이퍼 다이나믹한 시기를 살아냈다. 다이나믹하지 않은 시기가 사실 없겠지만 카이퍼가 살았던 시기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이 있었고 공산주의가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더구나 그는 네덜란드의 수상이기에 이 시기를 어떻게 마주했을까. 그 궁금증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단, 아쉬운 점은 너무 카이퍼를 추앙하는 책이다. 카이퍼 최고!를 외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염두에 두시고 보시라. 나는 좀더 비평이 담긴 책을 원했는데 그런 책은 번역이 안 되었다. 네덜란드 책이나 영문판에는 있을지 모르겠다. 

 

 


 

메모

 

나는 이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프랑스 혁명의 원리들을 온건하게 적용하고자 했던 19세기 유럽 중산층의 사상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53)

- 신학적 자유주의와 이념적 자유주의가 뒤섞인 것 아닐까? 둘은 이어지려나?

 

 

교회 회원들이 밤거리에서 소동을 부리고 싸움질을 하고 있다. 교회 회원들이 밤마다 술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영혼을 죽이고, 그들의 가족의 행복을 앗아가고 있다. 교회의 신자들이 정부를 두고 사생아를 가지고 있다.... 한편, 교회의 회원 자격 요건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삶과 교리에 있어서 건전할 것." (124)

- 당시 네덜란드 상황이 이랬나 보다. 

 

 

25년이 지난 후에, 네덜란드의 잘 알려진 목사이자 교회 역사가였던 바허나르 박사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43)

- 같은 진영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진영에서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다. 

 

 

1850년에는 상당수의 공립학교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161)

- 정말?

 

 

셋째, 우리는 성경의 영감에 반하는 철학적 원리들을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진화론, 신인합력설, 인본주의, 종교 다원주의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171)

- 음... 글쎄? 이것도 시대의 한계겠지? 인본주의는 근대적 산물을 뜻하나? 

 

 

때때로 주님께서 영감하시고 지시하시는 방식으로 성경 저자들이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때로는 주님께서 단지 그들을 도와 그들의 영에 지시하셔서 그들 스스로 저자로서 기록할 수 있게 하셨다. (172-173)

- 기계적 영감설과 유기적 영감설을 섞은 건가?

 

 

프랑스 혁명은 세속 권력들의 절대주의의 타락과 교회 권력의 부패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제3계급들이 자유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했던 자유는 전적으로 인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인간 이성의 권위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대체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반으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유기적인 연합과 사회적 유대는, 자율이라고 하는 가치와 개인들의 이기심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207)

- 카이퍼가 프랑스 혁명을 부정적으로 본 이유이다. 

 

 

이러한 필요들이 발생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하게 되자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갈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삶을 위한 투쟁은 돈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 부유한 중산층은, 모두를 위한 자유라는 슬로건 아래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항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하게 굳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208)

- 음흠... 글쎄다. 

 

 

칼빈은 루터파 교회가 자기에게 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관용적으로 루터파 교회를 대했다. 그는 심지어 로마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참된 교회의 흔적을 찾았다. (240)

- 으잉? 자! 근본주의분들은 칼빈도 이단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하하하

 

 

작은 여우들이 그 시대 개혁교회의 포도원을 망치고 있었는가? 카이퍼는 이 세마리 여우를 실용주의, 감정주의, 지성주의라고 불렀다. 
첫째로 실용주의는, 우리 종교에 있는 지성적 요소를 무시하고, 신앙고백의 건전성에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며, 이단적인 사상에 무관심하고, 신비적인 요소들을 인정하지 않으며,... 항상 바쁘며, 항상 무언가를 하고, 특별히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기를 열망한다. (245)

- 으잉? 한국교회에 필요한 말씀이다.하하하

 

 

이러한 강조점을 둔 것 때문에 카이퍼는 자주 일반 은총의 사람이라고 불렸다. 카이퍼가 전 창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명백하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기에, 기독교 내에서의 심각한 세속화의 과정을 촉진시켰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 (269)

- 이거 때문에 그 교수님이 칼빈주의자로 인정 안 했구나.(지금은 그 교수님이 누군지 모르겠다.)

 

 

칼빈이 분명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된 행동들을 억제하셨고, 인간의 이성을 보존하셨으며, 모든 창조물들의 재능들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칼빈은 이 모든 것의 원천으로서 하나님의 호의와 자비를 지적했다. (279)

- 도덕이나 자연법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겠지? 전적타락은 구원을 얻을 수 없는 타락이지 인간이 모든 면에서 악하다는 의견은 아니겠지?

 

 

스킬더는 "은총"이라는 용어를 불신자들과 관련해서 쓰기를 원치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83)

- 참 이런걸 보면 이 당시 사람들은 세계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을까? 각주를 보니 1947년이던데 이 때쯤이면 아시아, 아프리카 등등 불신자들에 대한 개념이 넓어지지 않았을까? 당시 서구 사회의 불신자들이야 이미 기독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 말이니 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슈트라우스와 르낭이었다. 이들은 예수의 일대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카이퍼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제기했다. 어떻게 끊임없이 죽고 계시는, 죄인들의 자리에서 죽고 계시는 그분의 생애를 묘사하는 글을 쓸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 자시을 위해 겸손하게 낮아지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 되시는 중보자의 일대기를 그를 수 있는가? (303)

- 으흠?! 개혁파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 같기도 하다.하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인성만을 강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를 위해 제물 되시고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경배한다. (303)

- 그렇다고 신성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예수의 생애 그 용어 자체가 어찌 표현 불가인가? 

 

 

카이퍼는 어느 정도 시간 후에 일본이 이슬람과 연합해서 세력을 이룰 것이라고 확신했다. (321-322)

- ㅠㅠ 

 

 

한 명은 귀족으로 카이퍼 내각의 식민지 분야를 담당했고 이후에 동인도 회사의 총독이 된 이덴뷔르흐였고, 다른 한 명은 역시 식민지 전문가로 후에 수상이 된 꼴레인이었다. (336-337)

- 그러고보니 제국주의에 대한 카이퍼의 입장은 어땠을까? 

 


 

 

책 맛보기

 

'이 시대에도 여전히 신앙을 위한 자리가 남아 있는가?', '신앙과 과학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시대의 사람이 된다는 것과 성경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시대의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교회의 일원으로 충실할 수 있는가?' (86)

근대주의의 영향하에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육체가 실제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부활 사건은 자연의 법칙에 반대되는 것이었고, 자연의 법칙은 결코 깨질 수 없는 것이었다. (95)

헤베이 운동은 좋은 공헌을 했지만, 상당히 상류층 중심으로 귀착된 운동이었다. 카이퍼는 우리 주님께서 평범한 노동자 계층과 함께 어울리셨고, 이스라엘의 평범한 대중들을 돌보셨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평범한 일반 회중에게 충실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길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37)

아브라함 카이퍼가 입증하고자 했던 것은, 진정한 자유란 프랑스 혁명의 원리에서 발견되거나 혁명의 원리들을 실천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며, 칼빈주의에 의해 가장 일관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148)

카이퍼가 주장했던 논제는, 우선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홀로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하신다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반드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166)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내적 삶을 위한 지식도(윤리 신학), 진화하는 종교에 대한 학문도(근대주의) 아니다. 신학을 설명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와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지식이다. 신학은 하나님 중심적이다. (169)

카이퍼의 개념은, 진리가 아닌 개념들이 가능하다거나 진리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여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형식의 다양성'이 필요함을 언급할 따름이었다. (196)

카이퍼는 이것이야말로 시대적 필요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이미, 국회에서 행한 첫 연설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강력히 변호했던 카이퍼를 살펴보았다. 카이퍼는 노동자와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해서 목청을 높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로 교육시키기 원하지만 이를 위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부모들의 편에 서 있었다. (206)

이 책자에서 카이퍼는, 비록 정부의 통제가 요구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밝혔다. 노동자들 스스로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직을 구성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6)

그들은 사회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는 옳았지만, 그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옳지 않았다. (208)

카이퍼가 제시한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7가지 근본적인 원리를 제시했다. 
첫째, ... 자연과 도덕법을 통해 제시하신 이러한 법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둘째, ... 국가와 사회는 각자 자기의 고유한 영역의 주권만을 가지고 있다. 
셋재, 우리는 인간 사회가 단순히 개인의 집합이 아닌 한 몸임을 인식한다....
넷째, ... 불의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최선을 다해 그 상황을 변화시키도록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다섯째, ... 그 대신에 그리스도인들은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세워 나가야 한다.
여섯째, ... 정말 필요한 것은 소유물을 얼마나 책임 있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소유물을 관리하고 사용해야 한다. 
일곱째, 토지 소유권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을 모든 지파와 가문에게 분배했음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210-212)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모든 종류의 새로운 개발과 새로운 창조를 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의미는 원창조로 돌아가는 것과 오랜 기초를 다시 세우는 것, 그리고 동시에 죄와 싸우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306)

연합은, 로마 가톨릭과의 정치적 연합을 의미한 것이었는데, 카이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의 연합된 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초기에 카이퍼는 교황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했고, 흐룬 판 프린스떠러가 말년에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과거의 적들과도 가능한 한 연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카이퍼는 이제 환경이 변했음을 깨닫고, 로마 가톨릭 정치가였던 스캐프만과 친구가 되었다. 카이퍼는 그 시대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로마 가톨릭과 "같은 신앙의 토양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326)

카이퍼의 주장 중에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정부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배되어야 하지만 신정 국가가 되어서는 아안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상황은 특별하며 반복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는 나라에 의해서 창죄된 것이 아니다. 사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회만의 주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카이퍼는 가족, 교회, 과학, 예술, 기술, 발견, 무역, 산업, 농업, 수렵과 어업, 그리고 사회적 기구들을 언급한다. (353)

카이퍼는 심지어 교회에 분열음이 나게 되더라도 교회가 진정으로 개혁되는 것을 보기 전까지 결코 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되어지는 개혁에 대한 갈망을 쉬지 않고 표현했다. (365-266)

 


 

목차

해설의 글

 

1. 19세기의 시대정신

2. 시행착오: 그 시대의 신학

3. 네덜란드의 상황

4. 젊은 카이퍼

5. 목사관에서의 회심

6.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

7. 작은 단상

8. 위대한 모험

9. 교회의 개혁자

10. 세상의 소금: 카이퍼와 사회 문제

11. 교수로서의 카이퍼

12. 신세계에서

13. 두 가지 은혜

14. 그리스도 우리의 왕

15. 방관자의 입장에서

16.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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