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김승옥, 황현산, 그리고 까먹은 한 사람이 한국어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아쉽게도 한 명은 이름을 잊어버렸다. 김승옥의 대표작 <무진기행>은 읽고 다음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를 읽었다. 리디북스에서 바로 구입을 해서 읽었다. 아뿔사. 나는 소설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산문집이다. 신문 사설에 기고한 기고문들이었다. 한겨례, 국민일보에 실었던 글들이 주로 이루고 있었다. 그의 글을 익히려고 책을 읽었는데 오히려 그의 글보다 그의 생각을 더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한 황현산이 재작년 암투병 끝에 사망하였다. 그 소식을 듣고 책으로 만나 알고 지내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에서 그가 신문사에 기고했던 시기는 2000년대 초엽과 2009년-2013년까지였다. 간간히 80년대와 90년대도 있다.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이명박 시기에 썼던 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나 사역자가 봤을 때 뼈아픈 지점도 있었다. 그의 글을 한 번 보자.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2009)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30쪽
용산참사에 관한 일을 기록했다. 나는 이 참사를 영화로 접했다. <소수의견>이 바로 그 영화다. 보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내쫓으려는 사람들은 어떤 짓이든 다 했다. 그 사이에 여러 힘있는 자들의 농락이 눈에 보였다. 이 영화의 이 부분의 내용이 정말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이 아닐까. 아직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일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소리를 나쁜 자들의 소리로 바꾸어버린 것이라서.
문제는 이 일을 처리한 이명박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를 표방한다는 것에 있다. 그의 당선으로 우리 개신교는 하나의 꼬리표를 계속 달고다닌다. 탐욕의 교회. 박영돈 교수님의 책에서도 잘 지적했지만 우리 개신교회의 열매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김덕영의 <에리식톤 콤플렉스>에서는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국가, 재벌, 개신교의 열매를 이명박이라고 했다. "여전히 배고프다"는 프랜차이즈와 함께. 우리의 열매가 이런 식으로 노출되니 참 가슴이 답답하다. 새 밭을 갈고 새 씨를 뿌려야 될까?
이외에도 그의 사회비평은 날카롭게 계속 이어진다. 이 책을 읽었을 때 2016년이었기에 2000년대 초엽, 2009-2013년까지의 일들을 기억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08-2010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몰랐다. 나는 아직도 광우병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 당시 나의 세상에선 별로 시끄럽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소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 간극을 이런 칼럼으로 그나마 줄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운 이야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황현산과 김승옥이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 받았다고 했다. 한국어를 가장 한국어답게, 아름답게 쓴다는 사람이 바로 황현산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왠걸. 이수열 선생이라는 분에게 글 교정을 받았다고 한다. 들어보니 이 분이 참 유명하단다. 신문에 기고하는 필진들에게 글 교정을 해서 보내준다고 했다. 황현산 선생도 마찬가지로 교정을 받았단다. 우리말 어법에 어긋난다고 보낸 편지를 받았단다. 이 분의 경력은 초, 중, 고등학교 근무하시고 정년퇴임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 국어교과서, 헌법 조문의 글조차도 그분은 탐탁치 않게 생각했단다. 나는 이런 순결주의같은 태도보다는 황현산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는 말에 대한 선생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동하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뿌리가 없고 본디의 결에 거슬리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관용으로 굳어졌으면 그것을 새로운 뿌리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어떤 표현법이 일어나 영어에서 연유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언중에게 그 표현이 큰 무리가 없이 이해된다면 이미 우리말 속에 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들어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선생이 지향하는 순결주의가 말의 표현력을 적지 않게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도 접어두기 어렵다.... '서로가 서로에게'라는 구절을 두고 '서로'는 격조사를 붙일 수 없는 부사라고 했을 때 나는 불평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로가 무슨 해병대인가. 한번 부사면 영원히 부사란 말인가." (이수열 선생, 2005)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272-273쪽
언어의 순결주의자의 잣대는 이렇다. 대명사 '그'도 써서는 안 되는데 왜냐면 뿌리가 없어서란다. 그 대명사를 쓰지 않으면 우리가 얼마나 불편해질까. 철학의 단어에 일본어식 표현이 많아서 쓰면 안 된다는 분들이 있다. 그 단어를 안 쓰고 고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단어를 쓴다면 얼마나 혼란이 많을까. 나는 확실히 언어 순결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칼럼이기에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나간 시간들의 의미도 짚어보아서 좋았다. 굿바이, 황현산!
책 맛보기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과거도 착취당한다, 2009)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9쪽
더구나 내가 사회의 발전에서 앞으로 오게 될 세계의 그림을 문학이 항상 먼저 그려 왔으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면, 그는 어쩌면 자신의 세계관에 적대할 사람들을 불어불문학과에 기르고 있다고 아연 긴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불문과에서는 무얼 하는가, 2010)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41쪽
인문학의 위기는 오래전에 찾아왔고, 그 뒤를 이어 이공계의 위기가 걱정거리다. 따지고 보면 학문의 위기고, 대학의 위기다. 생각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소비하는 일에만 매달릴 때 그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삼학도의 비극은 그렇게 계속된다. (삼학도의 비극, 2010)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58
우리 사회에서 시는 대량으로 소비되지만 그 원산지에서 일하는 시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진이정의 경우처럼 특별히 독창성이 있는 직업, 그래서 미래의 생산성을 크게 기약할 수 있는 작업에 몰두하는 시인일수록 그 고단함이 더하다. 이 점은 시의 유통경로가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사태를 파악해야 할 살마들이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년에 들어서는 문학 단체에 지원하는 공적 자금까지도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하기야 저항의 문학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정부도 아닌 이 정부가 돈을 주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저항 없이는 한국 사회를 꿈에 부풀게 했던 한류 같은 것도 없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말은 이 경우에나 써야 할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2011)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89-90
우리는 너무나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긴급한 이유도 없이 강의 물줄기를 바꿔 시멘트를 처바르고, 수수만년 세월이 만든 바닷가의 아름다운 바위를 한 시절의 이득을 위해 깨부수는 것이 폭력적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속도로를 160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것도 폭력이고, 복잡한 거리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것도 폭력이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다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폭력에 대한 관심, 2012)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126-127
그는 날마다 모욕당하지만 날마다 승리한다. 누구에게 뺨을 한 대 맞으면 자신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맞아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돈을 한 푼 빼앗기면 불쌍한 녀석에게 적설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니 일찌감치 마음을 고쳐먹자는 것이 그 내용인 이 정신적 승리가 은폐되고 왜곡된 패배주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패배주의는 매우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정신의 승리는 실제적인 노력을 면제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 자신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적인 성공을 거둘 때, 이 태평한 아Q라고 해서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수는 없는데, 그때도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그럴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보더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는 이 패배주의 속에서 편안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지녔을 능력과 재능을 깎아내려야 하고, 그래서 결국은 자신을 깎아내려야 한다. (내 이웃을 끌어안는 행복, 2002)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192-193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 2002) -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204-205
목차는 각 칼럼의 제목이기에 너무 많아서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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