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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책리뷰] 김승옥 - 무진기행

by 카리안zz 2020.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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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구입했다.


 

 

 

느낀 점

 예전에 김기현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는데 한국에서 제일 한국어를 잘 쓰는 작가가 김승옥과 황현산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한 분까지 해서 세 사람이 한국어로 글을 제일 잘 쓴다고 했다. 아마 국어사용을 가장 아름답게 사용했던 취지였지 싶다. 김승옥, 황현산까지는 기억했는데 나머지 한 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디 메모라도 해둘걸 그랬다. 그땐 김승옥, 황현산을 한 권씩 빨리 읽을 듯했기 때문에 따로 메모해두지 않았다. 그런데 아뿔싸 어디 페북 댓글로 남긴 길이었던 거 같은데 그걸 찾기가 불가능이다. 지금은 예전 계정을 삭제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게 김승옥의 유명한 글인 <무진기행>을 읽었다. <무진기행> 이후에 쓴 글이 없기에 또 그의 제일 대표작이 <무진기행>이기에 읽었다. 이후에 쓴 글이 없는 이유는 그가 신앙체험을 하고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그 사실을 일러주었을 때 내심 당황했다. 또, 단편 모음집인 이 책에서 <서울의 달빛 0章> 이어령 선생님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에서도 새삼 새로웠다. 

 

 이 책을 읽은 지 4년이 지나가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정서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기억이다. 여러 <무진기행> 편도 되게 지루하게 봤다. 그래도 꾸역꾸역 글을 읽었던 이유는 내용은 떠나서 글체를 나에게 익히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꾸역 읽은 결과 <서울의 달빛 0장>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이 에피소드는 묘사랄까 사람의 마음을 적실하게 표현해주었다. 이 책이 왜 와 닿지 않았는지 나름 생각한 결과 60년대에 나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88년생인 나에게 60년대의 분위기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였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다. 그래도 <서울의 달빛>은 지금 읽어도 거리감은 크게 생기지 않는다. 욕망이라는 것은 그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이 잘 보인 에피소드였다. 

 

 예전 책방과 차를 같이 하고 있는 친구는 이 책을 싫어했다. 보니 최근에 <무진기행>에 나오는 폭력적인 장면이 비판받나 보다. 나는 당시 60년대니깐 하고 넘어갔다. 지금 관점으로 본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90년대에는 버스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 그땐 아무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지금 보면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2020년대의 사고방식이 20년 뒤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될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성경해석에서도 자주 쓰는 방법이지만 지금의 관점을 너무 과거에 대입하여 비하하는 것은 조금 지양하자. 물론,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비판받아야 한다.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시선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걸 넘어서 작품이 가치가 없다던가 너무 비하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실, 최근 <무진기행> 관련 비판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서 내가 허수아비 논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자세한 비판을 알려주실 분은 댓글로 써주시면 감사하겠다.)

 

 


메모

"이형 대신 누가 그렸으면 좋을 것 같습니까? 추천해보시지요." 문화부장은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또 한번 이쪽의 부아를 돋우는 말을 했다. 그는 대답하고 싶었다. 글쎄요, 참 이 사람은 어떨까요, 바로 저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소리 높이 좀 웃어보았으면 (238-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허허.

 

 

 

사람들이 지금은 안정된 직장에들 앉아 있겠지요? 저는 항상 만화만 붙들고, 남들은 편하려니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말입니다. (258-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 실상은 불안해서라는 말에 공감된다. 

 

 

 

뻔했다. 그는 아내를 껴안고 있는 자기의 팔에 힘을 주었다. (262-리디북스 기준, '차나 한잔')

- 이번 에피소드는 참 인상깊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그의 속이 어쩐지 짐작이 간다. 이게 김승옥의 묘미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미스 리 쪽에서 내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의심은 풀리지 않는다. 그 영악한 미스 리가 하필이면 내 이름만 빼먹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적어도 미스 리의 나에게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그러한 장난(아아, 장난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을 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건 다소 비관할 일이다. 미스 리는 사장 처제다. 회사일에 관한 한, 미스 리는 사장이 알고 있는 만큼은 알고 있다. 아니 사장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도 있다.
...
아내가 편도선 수술만 받지않았더라도 말하자면 내가 수술을 받게 되었다고만 하더라도 월급날까지 아픈 것을 차라리 참고 있지 가불은 안 했을 텐데. 하여튼 그때 경리과에 미스 리가 무슨 일 때문인지 나타났다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 또 있던가, 아니 없다. 미스 리가 나를 나쁘게 보았다고 하면 그 두 가지 사건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참 소견 좁은 계집애, 아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 내게는 들놀이 초대장을 보내지 말라고 한 건 바로 저 겉 다르고 속 다른 사장 인지도 모른다. 해고?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311-312,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책 맛보기

우울해할 줄 아는 걸 심어줄 수만 있다면, 제기랄, 그들의 팔이 떨어지든 다리가 떨어지든 코가 찢어지든 생식기가 뭉개지든 조금도 아플 게 없을 거다. (147-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여자와 사내가 어디로 갔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우리의 상상도 이젠 틀 속에 갇혀버렸다. 누군가를, 기다림에 지쳐버린 한 여자를 어떤 멋있는 사내와 만나게 해놓고 그들을 소재로 상상을 백여 명의 사람에게 하도록 했을 때, 대동소이 신성일과 엄앵란과 허장강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망할 놈의 영화가 사람들의 상상력을 압박하고 있다. (157-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사람들이 결국 바라는 건 필요 이상의 음식, 필요 이상의 교미... 부잣집 며느리 여름철에 연탄 사모으듯, 남의 아내건 남의 아내가 될 여자건 닥치는 대로 붙는다. 남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남겨두지 않는다. 물처럼, 공기처럼, 여력만 있으면 빈자리를 메우려 든다. 인간은 자연인가? 메우고 썩힌다. 썩은 사타구니에서 쏟아지는 썩은 감정. 자리를 찾지 못한 자들의 증오. 평화가 만든 여유. 여유가 만든 가수요. 가수요가 만든 부패. 부패가 만드는 증오. 부패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남은 일은 증오의 누적, 그리하여 전쟁. 전쟁은 필연적이다. (392,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어쨌든 속눈썹을 떨며 내 눈을 응시하던 그 여자의 눈길은 내 운명을 결정했다. 그 순간에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해버린 것이었다. (399,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마음과 마음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마주치는 눈길이었구나 생각하며 나의 술 마셔 붉은 얼굴은 더욱 붉어지며 이마로 진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399,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내 차 앞에서 탄성을 내지르는 그 여자를 보고서야 나는 내가 가장 비싼 차를 구입한 이유를 처음으로 알았다. (418,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나는 약솜을 사기 위해 주차장 건너편에 있는 약방으로 달려갔다. 그 여자를 위해서 어디론가 마냥 달리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고 있는 몸에 썩은 감정들이 달라붙을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약솜을 사가지고 왔을 때 그 여자는 없었다. 찢어진 통장의 종잇조각들만 마음의 쓰라린 파편으로서 땅바닥에 널려져 있었다. 나 역시 그 여자와의 완전무결한 몌별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증오의 고통도 함께 찢겨져버린 것이다. (421,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진정한 삶. 그가 책을 통해 갖고 있고 그가 글 속에서 써왔던 진정한 삶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삶과 도대체 어디가 비슷하단 말인가? 진정한 삶이란 결국 아내와 도란도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사는 순간에 있는 것인가? 아주 오래 전, 그가 쓴 글들이 처음으로 책으로 묶여져 나오던 때, 인쇄소에서 만난 조판공을 통해 엿보았던 산다는 것의 엄중함, 무명의 강인함이야말로 역시 진정한 삶인가? 열다섯 살에 인쇄소 심부름꾼으로 들어와 지금 나이 오십이 넘도록 조판공으로 일하고 있다는 남자에게는 정한이 써대고 있는 이른바 '진정한 삶'이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일까? 동시에 아내에게도 그런 것들은 얼마나 허황돼 보였을 것인가? 그가 써왔던 진정한 삶이란 그 자신도 살아보지 못한 삶이며 아무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하지 않는 그야말로 꿈일 뿐. 결국 자기는 조판공이 활자를 만지고 아내가 밥이나 빨래 하듯 사람들의 꿈을 글로 써 팔아야 아내와 도란거리는 진정한 삶을 구매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정한은 여태껏 자신이 글을 통해 추구해온 삶 자체에 대하여도 별로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428-429,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목차

Cover

속표지

작가의 말: 나와 소설 쓰기

 

생명연습

건(乾)

역사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무진기행

싸게 사들이기

차나 한잔

서울 1964년 겨울

들놀이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

그와 나

서울의 달빛 0장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

 

내가 읽은 김승옥: 스무 살에 만난 빛-신경숙(소설가)

작가 연보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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