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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교회

[책리뷰] 박영돈 -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by 카리안zz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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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최근의 김덕영의 <에리식톤 콤플렉스>를 읽었다. 그 책에 박영돈 교수의 책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래서 참 반가웠고 내가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이란 게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다시 감상평을 쓰려고 책을 본다. 솔직히 책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인상평도 안 남는다. 한 번 훑어보면서 떠올려 봐야 겠다. 

 

 서두를 백주년기념교회 비평으로 시작한다. 끝에 훈훈하게 나름 말을 맺었는데 페북에 쓴 글과는 다르다. 이 책을 출판하고 난 뒤의 이야기라서 페북에 쓴 글이 더 맞는 것 같다. 그곳 담임 목사님께서 별로 안 좋아했다는 후문이. 최근에 백주년기념교회가 어떤지 모르겠다. 4인 목회를 하고 있다곤 하는데 조금의 잡음이 들리는 듯 하다. 재작년 예배를 드리고 갔을 때 참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본당이 작아서 예배드리려면 일찍 가야한다. 지하가 본당인데 참 조용하다. 그러다 보니 침묵을 유지하며 예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분위기에서 오는 엄숙함이라는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건축도 바로 이런 식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백주년기념교회는 사실 애교다. 재작년 이보다 더 심각한 경우를 보았다. 분당에 있는 우X들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다. 나는 본당에 앉아서 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찬양단이 찬양한 이후에 갑자기 스크린에서 담임 목사님이 등장하더라. '뭐지?' 싶었다. 보니깐 교회당 건물이 서울에 하나 분당에 하나 이렇게 있었다. 한주는 서울에서 한주는 분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더라. 스크린으로 예배를 드리는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신학적 고민은 전혀없고 이는 철저히 시장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행태라고 결론 지었다. 들어보니 여러 교회들 중에 이렇게 채인점식으로 교회당을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교회는 시장인가? 교회론은 없고 교회 성장론만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참 가슴 와닿게 느껴졌다. 사람만 많아지면 올바르고 큰 소리 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비판은 모조리 열등감으로 환원시켜 버릴 수 있다. 

 

 이런 현실을 이 책에서는 잘 드러내준다. 성령론을 전공한 조직신학 교수님답게 자신의 전공을 잘 살리면서 한국 교회를 과감하게 비평하지만 역시 따스한 눈길을 보내며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 교회 현실에 답답한 사람들은 읽어보시라 추천한다. 

 

아 그리고 중간부분부터 설교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뒤에 설교비평가 정용섭을 비평하는 내용이 꿀잼이었던 기억이 난다. 

 

 


 

 

 

메모

 

없음

 

 

 


 

 

 

책 맛보기

100주년기념교회 방문을 통해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은, 교회가 다른 면에 문제가 없을지라도 또 목사의 인격과 자질이 뛰어나고, 설교가 은혜로우며, 재정 관리가 투명하고 교회 운영이 민주적일지라도, 인격적인 교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교회 규모가 비대해지면 교제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실현되지 어렵다는 점이다. (18)

어쩌면 교회가 대형화되는 데 대한 찜찜함은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그것을 은근히 반기는 것이 모든 목사의 마음인지 모른다.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서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몰려와 대형 교회를 이루는 것이 자동 수순처럼 되어 버린 현실에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그러다 보면 처음의 순수함은 점점 퇴색하고 만다. (26)

수천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대부분의 교인은 담임 목사가 이름조차 모르는 '이름 없는' 군중이니 어찌 정상적인 목양이 가능하겠으며, 성령 안에서 교인들 간에 친밀한 교제와 섬김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성화와 영적인 성숙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겠는가? (30-31)

설교가 외적 성장의 도구가 되었을 때, 말슴은 왜곡되며 복음은 상품화되었다. 그러나 설교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뜻대로 그리스도의 몸과 그 형상을 이루어 가는 성장을 도모하는 방편이 될 때, 성경에 계시된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밝히 드러내는 복음의 진수를 담은 메시지가 된다. 결국 교회가 새로운 성장을 지향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될 것이다. (70)

만인제사장의 원리를 단순히 인간적인 중재 없이 개인이 직접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는 의미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만인제사장이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이자 작은 목자들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물론 목사도 큰 목자가 아니라 작은 목자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가 각자의 은사를 활용하여 서로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는 총체적인 목회 사역을 할 때 만인제사장의 원리가 실현된다. (108)

설교는 천국의 도래를 알리는 사역이며 (111)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말뿐 아니라 능력으로 우리 안에 실체화되게 한다. (111)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단순 구도 속에 축소시킨 메시지가 지난날 한국 교회 강단에 만연했을 뿐 아니라 아직도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외침은 기독교 신앙을 주로 죽은 후의 운명과 연결시킨 채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현실화된 하나님 나라의 부요한 내용들을 공중분해시켜 버린 심각한 복음의 파편화다. (112)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하기보다는 먼저 무엇이 되어야 한다. (114)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신학의 부재다. (128)

목사라는 직분이 세상 직업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기능 면에서 구별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131)

그것은 설교에 있어 성령의 역사하심을 추동하는 것은 설교의 문자적 내용만이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요소도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신학적인 혜택을 요즘같이 누리지 못하던 시절에 사역했던 목사들은 신학적으로 충실한 내용의 설교문을 작성할 만한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영성과 기도의 사람들이었기에 불완전하게나마 성령의 두구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210)

목사들의 문제가 설교를 목회 성공을 위해 도구화하는 것이라면, 신학자들의 문제는 신학적 업적과 탁월함을 뽐내 자신의 영광과 명성을 얻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222)

설교는 결코 목사 혼자가 아니라 온 교회가 동참해야 할 사역이다. 기도가 없으면 말씀이 효력이 없고 열매도 나타나지 않는다. 목사의 은사와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교인들의 기도 지원 없이 그의 설교에 성령의 큰 권능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244)

한국 교회에 그리스도 안에 풍성한 생명과 성령의 능력을 밝히 제시하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각색된 율법적인 메시지로 교인들을 닦달하며 고문하는 설교가 만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 목사처럼 성령의 은혜만을 배타적으로 앞세운 채 인간의 윤리적인 책임을 도외시하는 것 또한 다른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300)

조직신학적인 사고는 설교에 이썽서 필수불가결하다는 그의 지론은 백번 옳다. 그러나 모든 조직신학은 미완성품이며 성경의 빛 가운데 재조명해서 계속 보완해 가야 한다. 조직신학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통관하는 데 아낸서 역활을 하는 동시에, 우리의 성경 해석을 은밀하게 주관하는 전제와 선입견으로 작동함으로 말미암아 성경 진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313)

지금 한국 교회에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한 간극이 벌어져 있다. 보수주의자들 못지않게 진보주의자들도 외골수이며 고집불통이다. 서로가 보기에는 똑같이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하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까닭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을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다. 정 목사의 책에서도 이런 사실이 드러난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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