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교회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고등학생 때 신앙이 약한 것(?) 같지만 마치 교회에 관한 것이라면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교회는 담임목사, 장로, 주일학교, 사역자들, 그리고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모인 시스템일 뿐이었다. 자신은 장로의 아들이고 담임 목사는 싫고 또, 교회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교회를 평생 다녔으니까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을 다 알면 교회에 대해서 다 아는 것일까?
교회란 어떤 무엇일까? 교회란 어떤 곳일까? 교회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인 장소일까? 아니 교회란 장소적인 개념일까?
교회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 그분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역동적인 창조 사역을 하신다는 것, 살아 계신 주님이 진실로 자신의 교회 안에서 말씀과 성례들을 통해 임재하시면서 창조와 재창조의 사역, 회심과 화목의 사역, 뿌리째 뽑고 무너뜨리는 사역, 세우고 심는 사역을 하신다는 것 등이다... 즉, 복음의 말씀과 성례의 사건이 발생하는 그때, 그 장소에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으로 인해 교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59)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오늘 신자들과 어떻게 함께하시는지를 물은 다음, 그분은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바른 시행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개신교 특유의 응답을 고찰했다. (73)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는 것이고, 그것은 믿음과 세례와 성만찬을 통해 자신을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동일시하며 사는 것이다(87). 뉴비긴은 신약성경에서 확실히 나오는 다섯 가지를 서술한다.
첫째, 육신의 몸을 입고 계시는 동안 주님이 세상에서 자신을 대표할 친교 모임을 선택하고 훈련하고 파송하는 일에 주력하셨다는 점.
둘째, 이는 한 백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성경 기록의 전반적 패턴과 맥을 같이하며 하나님이 사람들을 다루실 때 개인으로뿐만 아니라 집단으로도 다루신다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는 점.
셋째, 자연 세계에 대한 성경적 관점과 사람을 정신-신체적 통일체로 보는 성경적 견해에 근거한다는 점.
넷째, 복음 이야기에서 세례와 성만찬 중심적 위치를 부여하는 것도 이 가르침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
다섯째, 바울이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어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체 개념을 내포하되 본질적으로 분열되지 않은 가시적 친교 모임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이제 교회가 어떤 곳인지 대략적이지만 흐릿하게 보인다. 교회 존립의 필수 조건은 영속적인 구조를 지닌 가시적이고 조직적인 몸이여야 한다(88). 이 가시적 친교 모임 안에서의 삶, 모든 것을 바치라는 총체적 요구를 하는 삶이며, 그 목적을 이루려면 구성원 간에 가장 밀접하고 끈끈한 유대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89).
그렇다. 교회는 이런 곳이어야 한다. 교회건물이 교회가 될 수는 없다. 우리의 흔한 착각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이다. 건물은 단지 거들뿐이다. 그러나 단지 거들뿐인 건물이 교회를 대표하게 되었을 때의 폐혜를 보라. 한국교회가 씨름씨름 앓고 있는 것은 건물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깐. 건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건물도 중요하다. 건물을 잘 지어야 한다. 본질을 위해서다. 예배를 위해서 건물도 디자인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표현하기 위해 건물이 디자인 되어야 한다. 내가 재작년 다녀본 대형교회들은 이마트같은 대형 마트같이 느껴졌다. 건물들이 말이다.
<교회=건물>이란 생각을 벗어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 교회가 건물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건물을 가지는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장소에 갔다 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건물이라는 인식을 넘어서게 된다면 앞서 뉴비긴이 말했던 대로 총체적 삶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나가면서
레슬리 뉴비긴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며 교회가 해야할 선교적 사명을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교회란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곳이지 우리가 주인이 되는 곳이 아니다. 당연히 알고 있는 이 점을 우리가 현실 속에서도 잘 실천해 나가길 소망한다.
메모
여기서 진짜 쟁점이 되는 것은 행위냐 믿음이냐의 문제이고, 논쟁의 계기가 된 할례는 그에 따른 부수적인 사안일 뿐이다. (41)
- 글쎄... 그들의 맥락상 할례가 부수적일까?
책 맛보기
오직 성령만이 우리를 그 몸에 접붙이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 거하거나 그분의 은혜를 증언하는 일도 이 성령의 살아있는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성령이 없이 행한 모든 일은 교회의 모양은 있으나 그 생명이 없는 모조품, 곧 텅 빈 강정과 같다. 이런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공동체가 겉으로는 교회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바른 교회론을 전파하나, 실은 죽은 교회일 수 있다는 말이다. (116)
그리스도의 몸으로 영입되는 것이 종말론적 차원을 지녔음을 보여 주는 일이다. (133)
온 세상을 위해 행하신 일이 온 세상에 알려져, 온 세상이 복음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이루신 그 구원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170)
종말론적이고 선교적인 관점을 잃어버리면, 교회의 할 일은 각 사람을 이 악한 세대에서 구출하고 다가올 세상을 위해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팽배해지면 교회의 일차적 의무는 자기 교인을 돌보는 일이 되고, 바깥에 있는 자들에 대한 의무는 이차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교인 개개인을 그저 교회가 집행하는 은혜의 방편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로 보는 목회 개념이 자리잡게 된다. (178)
교회는 너무나 다양하고 대조적인 모든 인류가 그 심오하고 완전한 속죄 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됨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은 교회에서 그런 속죄의 표지를 도무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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