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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성경신학

[책리뷰] 제임스 던 외 4인 - 역사적 예수 논쟁

by 카리안zz 2020.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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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 점

 이책 너무나 강력 추천한다. 역사적 예수 논쟁에 관심 있는 사람은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 읽어보는 것도 좋지만 이책의 서론(11-75)은 꼭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아마도 대략적인 역사적 예수 논쟁의 역사를 요약해 놓았다. 나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신대원에서 언어를 배우는 기간에 이 책을 읽었었다. 정말 꿀잼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후에 불트만 관련해서 읽는다고 김동건의 <현대신학의 흐름>을 읽었는데 거기서 정리해주는 것도 참 좋았다. 김동건의 책은 한국인이 쓴 책이기에 더 쉽고 간명했고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이 책은 그렇게 수월한 책은 아니다. 김동건이야 역사적 예수에서 불트만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거기에 맞춰 서술을 했지만 이 책은 전반적인 역사적 예수의 역사를 이야기 해주기에 방대하고 약간의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언제 한 번 역사적 예수 논쟁을 조금 정리해볼 시간을 가지면 좋겠지만 일단은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넘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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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탐구: 라이마루스에서 슈바이쳐까지(1778-1906)

 

 라이마루스는 유대교의 묵시 사상을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확충한 점에서 그의 이신론적 선구자들을 넘어섰다. 라이마루스는 역사상의 실제 예수와 복음서가 묘사하는 예수를 명확히 구분할 것을 주장했다. 라이마루스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또 유대인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라이마루스가 사용한 방법론은 후대에 여러 단계에서 전제가 되었다. 첫째, 라이마루스가 역사상의 예수와 복음서의 그리스도 사이에 확고하게 그어놓은 선은, 역사적 예수 탐구가 이루어지던 모든 시기에 걸쳐 많은 학자들에게 의문의 여지가 없는 전제로 남아 있다. 둘째, 라이마루사가 제기한 질문은 오늘날에도 열띤 논의를 일으키고 있다: 즉 "예수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가 기독교 신앙의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이다.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이론을 선임자들의 이론과 비교하면서, "신화적 관점"의 유익성은 "내러티브의 실체가 공격받지 않도록 남겨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세사한 부분들을 설명하는 모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내러티브를 전체적으로 수용하되 참된 역사로서가 아니라 신성한 전설로 수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신화적 과점이 주는 유익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신화적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과감하고 일관되게 이 방식을 적용한 사람이다. 그러니 슈트라우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다양한 구약성서의 이야기와 개념에 기초하여 상상력을 발휘해서 예수에 대한 자료를 꾸며냈다고 결론 지었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스트라우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예수에 대한 꾸밈없는 사실이라는 보잘 것 없는 핵뿐이었다. 

 윌리엄 브레데는 그의 논문에서 당시의 자유주의적인 학자들 간의 합의에 반하는 결론을 내렸다. 마가복음이 예수의 생에 대해 전반적으로 신뢰할 만한 연대기를 제공하지 않는단 것이다. 수많은 19세기의 탐구자들이 그 이론에 의존했음에도 브레데는 오히려 마가복음의 구도와 복음서의 세세한 많은 내용들이 예수에 대한 믿을 만한 전승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부활 이후 초기 교회의 신학적 성찰을 통해 도출된 창작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은 편집비평적 사조를 예견하는 움직임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쳐는 예수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정황은 유대교의 묵시문학적 종말론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한 정황에서 예수는 단지 (자유주의적인) 사회 개혁가와 사랑의 교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고난이 이 세상의 묵시적 절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열렬히 믿었던 종말 시대의 열광주의자로 보았다. 그의 예수는 궁극적으로 실패한 묵시적 예언자였다. 

 

무 탐구: 슈바이처에서 케제만까지(1906~1953)

 

 그 당므 시기를 흔히 "무 탐구"(no quest) 시기라고 지칭했다. 무 탐구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거의 반세기 동안 탐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시기에 예수에 대한 많은 연구서가 발간되었다. 그럼에도 독일의 어떤 그룹 내에서 역사적 예수 탐구가 심각한 방해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그 영역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발전 때문이었다. 

 슈미튼, 마르틴 디벨리우스, 루돌프 불트만은 양식비평을 주장했다. 그들은 양식비평에서 복음서 이전의 구전 예수 전승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한편, 역샂거 자료로서 복음서의 신빙성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더욱 증대시킨 여러 방법론적 전제들을 도입햇다. 그러한 전제 중 하나는 복음서가 역사에 기초한 전승들과 부활 이후 신앙이 반영된 초기 기독교 신화의 혼합이었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이 양식비평으로 인해 역사에서 살았던 예수를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새 탐구(1953-1970)

 케제만으로부터 시작된 새 탐구는 옛 연구가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에 표현된 그리스도 사이를 갈라놓았지만 그들 사이의 연속성을 다시 입증해 보이려는 시도였다. 

 새 탐구 시기에 복음서 연구에 많은 발전이 일어났다. 첫째, 1950년 편집비평이 발흥했다. 복음서 저자들이 초기 전승을 단순히 수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의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경향에 따라서 복음서 본문을 형성했다는 확신으로 말미암아 편집비평적 접근법을 수용한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둘째, 이 시기에 Q문서가 새로운 중요성을 띄게 된다. Q문서를 그 자체로서 독립된 문서의 권리를 갖는 만개된 "복음서"로 바라보게 되었다. 마지막, 복음서 자료의 역사적 진정성을 결정하려고 고안된 기준들이 공식적으로 평가되고 사용된 것이 바로 이 새 탐구의 시기였다. 이들 진정성 기준 가운데 가장 악명이 높은 것은 "(이중의) 비유사성" 기준이다. 이는 고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간에 유사하지 않는 모습이 있다는 그 모습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제 3의 탐구(1980-현재)

 "제 3의 탐구"라는 용어는 N. T. 라이트가 처음 만들어냈다. 그는 본래 이 용어를 공시적 방식으로 연대기적 시기를 표하고자 한 게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의 유입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라이트의 독창적인 정의를 거절하고 대신 1970년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포괄적인 단계를 지칭하는 통시적 의미로 사용한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서 진행된 제3의 탐구에서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학문적 재구성을 했다. 예수를 종말론적 예언자, 갈릴리의 성자, 주술사, 혁신적 랍비, 황홀경을 일으키는 심리치료사, 유대 현자, 정치적 혁명가, 에세네 일파, 순회 축귀사, 역사화 된 신화, 원조 해방신학자, 시골 목수, 토라를 준수하는 바리새인, 견유철학자, 자칭 종말론적 대리인, 사회경제적 개혁가, 역설적인 메시아 주창자, 야웨-하나님의 화신으로 각자가 재구성했다. 제3의 탐구에 속한 많은 이들의 견해는 하나의 단색적인 모델로는 역사의 예수를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심성들이 적어도 어느 한 사람에게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개연성 있는 재구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제 3의 탐구의 내용은 방법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너무 길기에 직접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여기까지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간략한 정리이다. 이를 공부해 간다면 비평학(편집비평, 양식비평 등)이 왜 등장했는지 역시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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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튼, 이 책은 5명의 학자가 하나의 의견을 내면 나머지 4명이 논평하는 방식이다. 제임스 던이 프라이스와 크로산에게 폭격을 가하는데 가히 볼만하다. 

 

 

 


 

 

 

 

메모

"모든 신자가 믿기 위해 비판적인 역사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모든 신자에게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여구는 중요한 문제다. 이것은 마치 모든 부류의 시민이 과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가 하는 일을 이해하거나 알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일들이 시민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49)

- 좋은 비유!

 

 

 

역사기술 철학과 역사적 방법 (51)

- 어떤 방법(도구)을 쓰는게 가장 역사적 예수를 재현시키는데 좋을까? 

 

 

 

p99에서 105까지 프라이스가 예수는 구약을 그냥 창작했다는 주장에 대해

-프라이스는 정반대로 성경의 구절로 예수를 창작했다고 믿고 나는 예수가 행동을 했고 그건 구약의 성취였다고 믿고

 

 

 

이처럼 기독교의 주요 사건에 대한 최초의 기사가 역사적 기억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문맥을 벗어난 성서 구절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106)

-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누군가에겐 창작의 근거.(반대로 창작의 근거가 누구가의 신앙고백인지도)

 

 

 

헤롯의 잔혹 행위에 관한 기사를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으로 여겨진다. (114)

- 과연?!

 

 

 

역사가는 단지 일어났을 가능성만 있는 사건들에 근거해 역사를 재구성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를 1세기의 맥락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매우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15)

- 여기선 N. T. 라이트를 불러야...?

 

 

 

성서문학협회(SBL) (196)

- 문학? 성서학회도 아니고. 왜 문학이라는 단어를 썼을가? 문헌도 아니고. 성서문헌협회면 좀 이해가 되긴 하지만...

 

 

 

헤롯의 야망과 관련된 1세기 역사와 사회학으로부터 수립된 거대한 상부구조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성서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198)

- 잉? 이럴 땐 성서의 본문의 증언을 신뢰하는가?

 

 

 

본래 성경의 내러티브 내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인류에 대한 사탄의 통치와 대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3)

- 크로산(하나님의 나라 vs 로마제국), 티모시 존슨(하나님의 나라 vs 사탄의 나라)

 

 

 

요약하자면 크로산은 N. T.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인물로 하여금 오늘날의 역사가들만 알 수 있고 명명할 수 있는 실재들에 의해 행동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역사적 오류를 계속 범하고 있다. (204)

- 라이트도?

 

 

 

그가 제시하는 대조는 과도할 뿐만 아니라, 가버나움과 갈릴리 해변에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에게 나아온 사실을 거의 반영하지 않는 생뚱맞은 표현들을 사용한다. 왜 이런 식으로 대비를 그려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211)

- 이데올로기!

 

 

 

크로산이 20세기나 21세기 현실 정치의 맥락에 더 잘 들어맞을 예수상을 제시하는 것이나, 그가 전승과는 무관한 배경을 설정하고 실제로 잘 들어맞는 전승은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고려할 때, 마이엉[ㅔ 대한 크로산의 비판은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격이다. (212)

-하하하하하하하

 

 

 

예수의 탄생 기사가 모세를 죽이려 한 파라오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과 헤롯 대왕을 결부시켜서 만든 신화라면, 그 이야기는 역사적인 출발점도 없고 근거도 없는 것이다. 예수는 바알,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혹은 아티스의 계열을 따라 묘사된 야웨에 대한 고대 해석의 곁가지다. (261)

- 아니, 이런건 역사적 사실로 잘 받아드리면서 네러티에 진술은 왜? 그것은 프라이스의 믿음이 눈을 너무 가려서 그런건 아닐까? 

 

 

 

아마도 존슨은 그런 강렬한 캐릭터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인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264)

- 잉? 나는 그렇게 안 느꼈는데. 

 

 

 

이 시점에서 존슨 교수는 복음서 "이야기"가 고고학적으로 사실처럼 보이기 떄문에 아마도 기본적으로 역사적일 것이라는 변호적인 입장을 취한다. (264)

- 그게 아니라 사실을 알기 어려우니깐 복음서의 내러티브를 신뢰해보자는 말이잖아!

 

 

 

"최초의" 전승만이 "진정성 있는" 전승이라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280) 

- 던이 더 보수적인듯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기록된 복음서와 구별되는 수행 구두 전승과 기록된 복음서 내부의 구전적 감성을 혼동하지 않을 때에, 그리고 수행 구두 전승과 구전적 감성을 신학적으로 동기부여 된 반대 혹은 우리가 가진 복음서들의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립적 변이들과 혼동하지 않을 때에 파악될 수 있다. (345)

- 이게 가능한가?

 

 

 

 

 


 

 

 

책 맛보기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와 로마 제국 사이의 중대한 차이는 예수의 비폭력과 빌라도의 폭력이다. 빌라도여, 그대의 군사가 나를 잡았소. 그러나 나의 동료들은 심지어 나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라도 그대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오. 빌라도여, 그대의 로마 제국은 폭력적 불의를 기반으로 하지만 나의 신적인 나라는 비폭력적 정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오. (193)

마찬가지로 사복음서는 나사렛 예수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들에 있어서 서로 간에 많은 불일치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성품에 관한 그들의 증언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일치를 보인다. (252)

내게 있어서 그리스도를 알아가느 과정은 이성과 계시, 역사와 신앙 간의 대화다. 그리고 그런 상호적용 속에서 아느 한 편이 절대적 주도권을 주장할 수 없다. (274) - 크로산

복음주의자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성경에 대해 과격한 우익이나 보수주의 또는 근본주의적 태도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지금과 같은 때에는, 책임 있는 복음주의 학자들이 그런 비평적이고 역사적인 탐구를 방어하는 동시에 그들의 작업을 통해 비평적 탐구의 긍정적인 결과물과 유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비평할 줄 아는 성숙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1) 탐구 영역에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 회색지대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며("우리는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본다/희미한 잔상"), (2) 정말 중요한 문제와 보다 덜 중요한 문제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3) "진리를 구하고 심오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소유했거나 그런 신앙을 존쟁할 줄 아는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그리스도인들(특히 복음주의자들)이 세상의 귀감이 되어서, 모든 진실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을 존중하고 스승으로 삼기를 원하는 날이 찾아올 것을 고대할 수 있을 것이다. (442-3) - 제임스 던

 

 

 

 


 

 

 

 

목차

역사적 예수 탐구: 서론

 

1. 소실점에 선 예수(로버트 M. 프라이스)

 

2. 예수와 공동 종말론의 도전(존 도미닉 크로산)

 

3. 인간 예수 배우기-역사비평과 문학비평(루크 티모시 존슨)

 

4. 예수를 기억하며-어떻게 역사적 예수 탐구가 길을 잃었는가?(제임스 D. G. 던)

 

5. 역사적 예수-복음주의 관점(대럴 L.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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