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성경신학

[책리뷰] 크레이그 에반스 - 만들어진 예수

by 카리안zz 2020. 1. 23.
반응형


 

 

 

 

 

느낀 점

 예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기독교인이기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예수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 예전 엄마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대학을 막 올라갔을 때이다. 그때 지적희열이랄까? C.S. 루이스니 프란시스 쉐퍼니 막 그런 사람들을 알게 되어 지식적으로 자극을 많이 받았을 때이다. 엄마에게 어거스틴, 키에르케고르, C.S. 루이스, 프란시스 쉐퍼 등 그런 사람들 알기도 벅차다가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더니 엄마가 '나는 예수도 잘 모르겠는데' 그런 말을 했다. 그때 기억이 많이 자주 생각이 난다. 나는 과연 예수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내 신앙은 현장 중심이었다. 노동의 현장을 좀 더 알고 싶어서 공장에서 1년 정도 일을 하였다. 그 전엔 군대에서 2년간 교회를 평생 다녀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랑 같이 지낸 기간이 나에겐 참 소중하다. 평생 교회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나에게 그 교회를 평생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고등학교 이후 있겠는가? 지금 강도사가 되었기에, 더더욱 주변 사람들이 사역자들로 채워져 있기에 그 간극은 더 멀어진다. 그렇게 나는 현장 중심에 예수님이라면 당연히 이러실 것이라는 명분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지 정말 내가 생각하는 예수가 그 예수인가? 하는 물음이 나왔다. 예수님은 누구실까? 현장에 있다지만 그 현장에 있는 것으로 내가 예수를 제대로 아는 것일까? 그러한 질문에 나는 엄마와의 대화가 종종 생각났고 신학과로 편입한 후로는 예수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와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역사적 예수라는 분야와 마주하게 되었다. 박규태 목사님 번역처럼 역사적이란 말보단 역사 '속' 예수가 훨씬 원뜻을 잘 전달하는 것 같다. 실제로 역사 속에 있었던 예수를 그려내기 위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 연구는 18세기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흔히 신학계에선

 

옛탐구 - 무탐구 - 새탐구 - 제3탐구

 

이렇게 나눈다. 나중에 <역사적 예수 논쟁>을 리뷰할 때 그러한 구분을 잠깐 언급할 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그러한 부분을 상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이 책은 예수 세미나와 바트 어만이 강조하는 것처럼 도마복음같은 외경이 초기문서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물론 물리적 증거를 내놓기 보단 내용적으로 접근한다. 개연성을 들어서 설명한다. '당신의 주장이 그렇다면 이 문서는 왜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가'하는 반론이 있다. 그런 문서비평적 작업이기에 도마복음과 같은 외경을 공부한 사람에겐 중후반부의 작업이 유익할 듯하다. 여러 입장들의 주장들을 잘 요약했고 거기에 대한 반론을 잘 저자는 잘 제시한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물론 재미있기에 추천한다. 복음주의적이며 학문적인 퀄리티도 놓치지 않기에 추천한다. 그러니깐 영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뒷 부분은 예수가 무슨 막달라 마리아와 연인이었더라 하는 음모론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허튼 소리라도 그것을 반론하려면 많음 품이 든다. 저자는 그걸 해주었다.)

 

예전에 이 책을 읽고 페북에 썼던 글을 잠깐 옮기겠다. 

------------------

제목: 목사와 근본주의자들의 급격한 우회전에 좌편향된 가나안 성도들

 

"버스 운전수의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들을 좌편향시킨다."

 

오달수 씨가 인터뷰에서 황지우 시인의 구절을 빌려와 했던 말이다.

비단 정치성향만 그럴까? 

크레이그 에반스의 <만들어진 예수>의 1장이 사실 이 내용이다.

 

"예수에 대한 더 급진적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책들이 신약 복음서의 역사성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잘못된

신앙'과 '엉뚱한 의심'에 의해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여기서 '잘못된 신앙'이란, 경직되고 특이한 기준들에 의해 성경 사본이 절대적으로 무오해야 하며 신약의 네 복음서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신념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개념들에 의존해 있다면 그 신앙은 곧 붕괴되고 말 것이다." (30)

 

대표적으로 네 사람을 언급하며 이들의 한때 보수적이었던 흔적들을 보여 준다.

 

구학파의 '로버트 펑크', '제임스 로빈슨'

신학파의 '로버트 프라이스', '바트 어만'

 

로버트 펑크는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창세기 1, 2장의 문자적 해석을 견지하며 십대 전도자였단다.

제임스 로빈슨은 구약을 문자적으로 가르쳤었던 사람이었다.

로버트 프라이스는 저 보수적 복음주의의 고든-콘웰 신학교 출신으로 근본주의적 침례 교회에 속했고 IVF리더까지 했던 사람이다.

바트 어만은 시카고에 있는 무디 성경학교에서 공부했던 사람이었다.

 

 에반스는 구학파 두 사람에 비해 신학파 두 사람을 가차없이 말한다. '엉뚱한 회심' 역시 근본주의 신앙과 등차시키는데 아마 신학파 두 사람이 이에 더 부합한 거 같다. 이렇게 에반스는 기독교의 진리는 성경의 무오성이나 네 개의 복음서를 완벽하게 조화시킬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에 근거해 있다(42) 말한다. 그리고 마무리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체험과 증언에 힘을 쓰라며 보컴의 책이 각주로 달려 있다. 라이트의 논지와 좀 유사한 것 같다. 비평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것도 말이 되지 않는가라고 하는 점이 그렇다. 

 

 에반스는 논리로 방어한다. 덩연히 상대가 이렇게 치고 들어와서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좀더 폭넓은 태도를 취해야 하 것 같다. 저 가나안 성도들을 보며 - 대형교회에 밀물처럼 몰려 예배가 끝난 뒤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성도들을 보며 - 

 

 언젠가 새신자 교육을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담당 목회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 다 교회를 옮겨 다니신 거 같은데 완전한 교회 같은 건 없습니다." 졸지에 사람들은 완전한 교회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되었다. 왜 이들이 교회를 떠났을까. 나고 자랐던 곳을, 그토록 불태웠던 곳을, 저 비루한 상상력에 나는 구김없이 신앙생활한 사람들이 또 흔히 교회에서 신앙 좋다고 평가븓는 이들을 역시나 신뢰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대답을 찾는다.

 

부디 나간 이들에게 믿음 없다며 심판하지 말고, 그네들끼리 우리도 조심해야 한다며 수근대지 말자. 급격한 우회전이 승객들을 좌편향 시키니깐. 

 

-------------------------

 

 

 

 

 


 

 

 

 

메모

 적지 않은 신약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런 학문적 역량의 부족은 1985년 로버트 펑크가 설립한 예수 세미나가 보여준 기괴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이 세미나의 회원 다수는 그리스 문학과 그레코-로만 문화와 관습에는 익숙하지만 예수의 셈적(유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 중 소수만이 고고학을 진지하게 연구해 이스라엘 지리에 익숙해 있을 뿐 랍비 문학과 성경의 아람어 석의본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이런 불완전한 학문을 바탕으로 진행된 예수 세미나가 그처럼 요상하고 의문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19)

- 예수세미나 디스!하하하하

 

 

여기서 '잘못된 신앙'이란, 경직되고 특이한 기준들에 의해 성경 사본이 절대적으로 무오해야 하며 신약의 네 복음서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신념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개념들에 의존해 있다면 그 신앙은 곧 붕괴되고 말것이다. (30)

- 근본주의

 

 

일부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가 천국 또는 죽어서 가는 나라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58)

- 일부? (물론 5년 전 읽은 글이기에 요즘은 다를 수도...)

 

 

 

 

 

 

 


 

 

 

 

책 맛보기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하고 분명한 설명은, 특정 성경 구절들이 교회에 중요해졌으며 또 그것이 특별한 방식으로 이해되었던 이유는 그 구절이 예수가 가르쳤던 것이고 제자들이 배웠으며 다른 신자들에게 전달되었던 구절이기 때문이다. 즉 초기 기독교 배후에는 무명의 천재 몇 명이 존재한 게 아니라 예수 자신이 있었을 뿐이다. (56)

우리는 원래 본문이 무엇을 말했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마리아복음과 빌립복음의 이 구절들로부터 예수와 마리아가 연인이었다고 가정할 만한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 (129)

예수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사탄의 나라의 붕괴를 의미했고 사탄의 나라(통치)의 붕괴는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자가 치유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90)

결정적인 차이는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주는 데 반해, 알비누스는 예수 벤 아나냐를 미치광이로 생각해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236)

 

 

 

 


 

 

 

 

목차

역사적 사실

서문

서론

 

1. 잘못된 신앙과 엉뚱한 의심

2. 출발과 접근 방법에서의 오류

3. 기이한 문서들(1)

4. 기이한 문서들 (2)

5. 생경한 문맥

6. 뼈대만 남은 어록

7. 축소된 기적 행위

8. 요세푸스를 오용함

9. 시대착오적이며 과장된 주장들

10. 날조된 역사와 거짓된 발견

11. 진정한 예수의 초상화

부록1. 아그라파

부록2. 유다복음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휘해설

약어

추천도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