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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앙서적

[책리뷰] [사순절, 고난 주간 추천 도서]닉 페이지 - 가장 길었던 한 주

by 카리안zz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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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점

예전에 기독교 출판에 거의 50%정도 저작권을 담당하시는 분이 추천한 책이었다. 그 추천으로 이 책을 읽고 닉 페이지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바보들의 나라>를 구입하기도 했었다. <바보들의 나라>는 사도행전을 차분히 공부할 때 한 번 보려고 킵해둔 책이긴 하다. 군데 군데 사도행전 설교할 때 종종 참고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지는 않았다. 

 

일단 이 책 가장 길었던 한 주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까지 1주일의 시간을 추척해 나간다. 뒤에 미주만 봐도 무시무시하다. 394-419까지 미주다. 참고문헌은 420-427까지이다. 학자의 책이 아니여서 참고문헌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인용한 책들을 훑어보면 내 나름에 판단했을 때 괜찮은 책들을 많다. 물론, 신약을 전공한 사람이 봤을 땐 어떨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설교에 인용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나 예전 새벽기도할 때 메시아가 나귀타고 입성한다는 스가랴 9:9을 설교한 적이 있었다. 이때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과 연결을 시켜서 설교를 했었는데 그때 이 책을 참조했다. 이 책에선 105-106페이지에 있는 내용인데 예수님이 남쪽에서 나귀를 타고 초라하게 입성하였다면 북쪽에선 로마의 군인을 위시한 총독이 내려왔었다. 이 대비를 이 책에서 잘 설명해주어서 설교때 종종 인용하기도 한다. 

 

많은 정보들이 있는 책이다. 당시 예수님의 행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사회, 문화, 종교적인 전반적인 내용들을 추척해 나간다(밑에 메모에 그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설교자들에게 추천하면서 비전공자들에게도 추천한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위에 사진과 같이 여러 당시의 그림이 있어서 참 좋다.)

 


메모

그저 갈릴리 출신 소란꾼이에요. 또 하나의 자칭 메시아지요. 로마제국 정치사에 한 줄이나 기록될까요? 제국 변방에서는 늘 일어나는 처형이니까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입니다. (9)
-보라! 이 대단한 역설을.

로마는 부유한 귀족층 지도자들이 성전의 종교 지도자들과 결탁하면 자동으로 존경을 받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로마 지도자가 되려면 좋은 집안 출신이거나 좋은 배경을 갖고 있거나 무엇보다도 부자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유대 사회에서는 동일한 조건이 적용되지 않았다. 지도자를 선정하는 유대의 표준은 까다로웠다. 가정사나 양육 환경을 어느 정도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이 지혜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유대 사회의 진정한 지도자들은 유대 종교의 순정함을 지키려는 열정이 있는 현자들이었다.
이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공직에 있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유대 백성들이 볼 때, 혐오스러운 헤롯 왕조는 로마제국에 굽실거린 대가로 자리를 얻은 것에 불과했다. 백성들은 종교지도자들도 경멸했다. 로마의 직접 통치를 따른 최초의 대제사장들은 인기가 너무 없어서 해임되고 말았다. 로마 지도자들은 그들을 대신할 사람으로 무명의 인물을 발탁했는데, 그가 복음서에 나오는 셋의 아들 안나스이다. 매우 영리한 모사꾼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그의 가족은 향후 60년간 대제사장직을 독차지했다. 교활한 정치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존경받고 힘 있는 엘리트는 아니었다. 성전 엘리트들은 권력은 있었지만 결코 존경을 받지 못했다. (35)
-당시의 상황을(context) 잘 묘사한다. 좋은 정보를 준다. 대제사장에 대해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그 특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을 빌라도에게 계속 댈 형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그 만큼 부유한 사람들이 항상 있었을 테니, 가야바가 대제사장직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했고, 빌라도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빌라도가 로마로 소환되었을 때가 가야바가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나기 몇 개월 전이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역사 속에서 가야바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가 자기 직임을 잘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 성전을 큰 교회쯤으로 생각들 하는데, 사실은 훨씬 더 엄청난 구너력 기구였다. 예루살렘 경제 권력의 본산지였고, 도시의 지도층 고용주들에게는 가장 큰 사업장이었다. 성전에는 건축 일감이 끊이지 않았다. 동물들을 도축할 일손도 필요했다. 일꾼들은 성전의 기능을 관장할 필요가 있었다. 노예와 종들은 성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잘 운영해야 했다. 희생 제물로는 곡물과 나무와 소와 양과 새와 감람유와 과일과 향유가 필요했다. 이 모든 것이 공급되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성전은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게다가 그리스-로마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인에게서 해마다 기부를 받았고, 유대와 다른 곳에 있는 백성들에게서 농산물의 십분의 일을 거둬들였다. (54-55)
-가야바와 성전

예수님과 제자들은 여리고에서 삭개오라는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세리가 될 사람들은 매년 총 세액을 올려내겠다고 당국에 약속하는 계약을 맺게 되어 있었다. 총액 이상은 그들이 가져도 되는 몫이었다. 따라서 많이 걷으면 걷을수록 수익이 커졌다.
그리스-로마 세계 어디서나 세리들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유대에서만큼은 욕을 먹었다. 그들이 출세한 것이 토라에 대한 지식 때문이 아니라 로마 당국자들에게 협력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간극이 점점 커지는 사회에서 세리들은 부당하게 재산을 증식한 탓에 오늘날 도시 투자자들만큼이나 조롱을 받았다. 세리들은 로마에 협력하여 부를 쌓았다... 사람들은 세리가 제의적으로 불결하다고 여겼다. <미쉬나>는 "세리가 집에 들어가면 집[과 그 안에 있는 모든건]이 부정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리는 불결한 자들이었고 경제적 나병환자였다. 예수님이 이런 자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하나님나라에 초대하고 이들과 함께 밥을 먹은 행동은 정결에 관한 유대인의 금기를 깨는 행위였다. (67-68)
-세리에 대해서

이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제자가 한 명 있다.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갈 자유가 있는 사람으로 대문을 지키는 여종을 잘 알았을 인물이다. 확실히 위협적이지 않았을 사람, 바로 가룟 유다이다. (265)
-그런데 꼭 예수의 제자라고 알려야 할까? 그냥 다른 이유로 대제사장의 집에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다른 의도를 가진 척 안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1세기 후반의 신뢰할 만한 자료로서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265-6)
-닉 페이지가 부러운 게 1세기 저작이나 초대교회 때의 자료를 영어로 읽는다는 점이다. 우리말로 이런 자료들을 보고 재구성하는 그날은 올까? 

그가 입을 열기만 하면 갈릴리 억양 때문에 신분이 탈로 날 참이었다. (267)
-오호!

 


책 맛보기

예루살렘에서도 분명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매일 빵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고, 일거리도 없고, 마지막 남은 땅뙈기마저 저당 잡혀 부자의 손에 넘어가고, 가진 것라곤 옷 몇 벌이 고작이라면, 과연 언덕 위에서 웅장한 위용을 뽐내는 성전을 보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아침 제사를 알리는 새벽 나팔소리가 도시 전역에 퍼져나갈 때 당신 심장은 기쁨으로 고동칠까? 그러기는커녕 오늘 하루는 또 뭘 먹고 사나 걱정하지 않을까? 제사에 앞서 목욕재계를 하려고 줄을 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 깨뜻해질 수 있기는 한 걸까? 이것이 예루살렘이다. (101)

사실상 율법은 가난한 사람들이 의를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의를 강조하는 것도, 율법을 해석하려는 시도도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입장에서 나온 해석은 중상류층만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민중의 생존을 더 힘겹게 하는 해석이었다. (112)

부유한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랐던 것이다. 그들은 의로움은 정결함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정결함은 부의 기능이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유대인의 법을 무시하거나 순종하지 않으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주님이 예루살렘에 나타나신 것 자체가 율법의 주요 교리를 따르는 증거였다. 주님이 보신 건 성 안의 의로부터 차단된 허다한 사람들이었다. (112)

예수님이 당시 정결 규례에 계속해서 저항하셨다는 전승을 표현함에는 틀림이 없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통제 불능이셨다. 주님이 무슨 일을 하실지 누가 알겠는가? (119)

즉 예수님의 성전 시위는 성전에 대한 물리적 위협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의도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상을 뒤엎음으로써 경제적 착취가 성전을 작동하는 원동력이 돼버린 시대상을 공격하신 것이다. 이것은 당시 성전을 다스리고 있던 가문에 대한 도전이었다. 안나스 가문은 그런 비난을 선선히 들어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했다. 이것이 가야바가 그렇게 확고히 예수님의 처벌을 주장한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또한 여러 해가 지난 후까지 안나스 가문이 그리스도의 가문과 제자들에게 원한을 품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개인적인 원한이었다. (159)

설교자들도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신 만큼 세금을 내라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이것은 초점이 빗나간 설명이다. 핵심은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에 있다. 예수님에게 질문한 이들은 나라의 개념을 잘못 받아들였다. 예수님은 로마제국과 이스라엘 왕국의 충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두 나라 모두 세금을 받지 않는가. 하나님나라와 세상 나라 간의 충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점은 예수님의 다른 교훈과 연결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로마에 재물을 바쳐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는 명제와 비교하면 하찮은 문제에 불과하다. (174)

어떤 경우든, 예수님이 그의 집에서 식사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당시의 사회, 종교적 경계를 얼마나 쉽게 허무셨는지 입증한다. 그분은 나병환자에게 다가가셨고 그를 만지셨다. 그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쫓겨난 자들을 품으시려고 당대 금기에 어느 정도까지 도전하셨는지 보여준다...
고대 세계에서 음식은 오늘날보다 훨씬 큰 상징을 갖고 있다. 누군가와 식탁을 나눈다는 것은 상대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서로 막역한 사이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201)

아마도 이 사람은 체포조 중 하나였고 희미하게나마 베드로가 도망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베드로의 억양이다. 갈릴리 사람의 특유의 아람어 방언은 세련된 예루살렘 사람들의 농담거리였다. 갈릴리 사람들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갈릴리 출신의 한 남자가 예루살렘 시장에서 '아마르'라는 물건을 사려고 진땀을 빼는 우화가 있다. 시장 상인들은 그가 사려는 물건이 당나귀인지, 포도주인지, 양모 옷인지, 아니면 희생제물이 될 양인지 모르겠다며 그를 잔인하게 조롱한다.
이 때문에라도 예루살렘의 교양 있는 엘리트들은 갈릴리 출신의 메시아를 믿을 수 없었다(요 7:41, 52). 그들에게 갈릴리 사람은 토라에 무지한 멍청이들이었다. (267-268)

무슨 일이 있어났기에 군중이 돌아섰을까? 왜 그들은 갑자기 예수님께 등을 돌렸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303)

그분을 그렇게 멀리까지 따라갔던 여인들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예수님은 왜 죽어야 했을까?
사람들이 그분을 죽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거짓된 사람들을 공격하셨다. 성전의 경제 정책과 관련해 특정 인물을 공격하셨다. 성전 귀족층을 강도로, 서기관들을 사기꾼으로 고발하셨다. 성전 몰락을 예언해 그들의 지위를 흔드셨고, 죽은 자를 다시 살려 그들의 믿음을 공격하셨다. 당신에게 거룩한 장소에 접근하게 허락할 권한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갑자기 그 거룩한 장소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언젠가 그곳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성전 지도층에게 예수님은 거슬리는 존재였다. 그는 규율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통제 불능이었다. 그는 문제를 일으키고 선동을 야기하는 골칫덩어리였다. 그래서 로마 당국에 어렵지 않게 고발할 수 있었다. (355)

목차

들어가는 말

진동:32년 겨울-33년 봄

수전절

나사로의 부활

 

전날밤 3월 28일 토요일

베다니에 계신 예수님: 토요일 저녁

 

첫째 날: 입성 3월 29일 일요일

승리의 입성: 예루살렘, 아침

성전을 둘러보시다: 성전, 오전

헬라인들과 이야기하다: 예루살렘, 오전

 

둘째 날: 성전 3월 30일 월요일

무화과 나무를 저자함: 감람 산, 아침

성전 시위: 성전 산, 아침

 

셋째 날: 종말 3월 31일 화요일

무화과나무 두 번째 이야기: 감람 산, 이른 아침

네 가지 질문: 성전, 아침

성전에 관한 예언: 성전 밖, 낮

장래에 관한 예언: 감람 산, 저녁

 

넷째날: 음모와 향유 4월 1일 수요일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다: 성전, 아침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다: 베다니, 초저녁

유다가 대제사장들을 만나러 가다: 성전, 늦은 밤

 

다섯째 날: 체포 4월 2일 목요일

식사준비: 예루살렘, 아침

최후의 만찬: 예루살렘 다락방, 저녁

체포: 겟세마네 동산 늦은 밤부터 이른 아침까지

 

여섯째 날: 처형 4월 3일 금요일

안나스의 심문: 가야바의 집, 이른 새벽

야간 재파니 가야바의 집, 이른 새벽

뜰에서 지켜보는 베드로: 가야바의 집, 이른 새벽

산헤드린 공회 아침 모임: 가야바의 집, 오전 6시

빌라도의 첫 번째 재판: 헤롯 궁, 오전 7시

헤롯 안디바의 심문: 하스몬 궁, 오전 7시 30분

유다의 죽음: 성전고, 오전 8시

채찍에 맞음: 헤롯 궁, 오전 8시 15분

십자가 처형: 골고다, 오전 9시

사방이 어두워짐: 골고다, 정오

죽음: 골고다, 오후 3시

장사지냄: 골고다 근처 무덤, 오후 4시

 

일곱째 날: 침묵 4월 4일 토요일

경비병이 무덤을 지킴: 헤롯 궁, 아침 8시

 

여덟째 날: 귀환 4월 5일 일요일

빈 무덤: 무덤, 오전 5시

엠마오로 가는 길: 엠마오 길, 오후

다락방: 다락방, 저녁

 

여진 33년 이후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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