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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앙서적

[책리뷰] 스캇 맥나이트 - 예수 신경

by 카리안zz 2020.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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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점

 

저명한 성경신학자인 스캇 맥나이트의 글이다.

저자가 제임스 던의 제자라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학문적인 성취가 지금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던의 제자이며 나름의 좋은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성경신학적인 통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래서 좀 별로였다. 신학자가 에세이까지 잘 할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밋밋하다.

디자인도 괜찮고 제목도 괜찮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읽을 수록 별로였던 기억이 난다. 

 

이런 에세이 글들은 아무래도 목회자들의 글이 훨씬 낫다.

그런 면에서 약간의 위로랄까?

학자들이 모든 걸 잘 해버리면 목회자들이 비빌데가 없어지는데

목회자들의 체면을 조금 살리는 것 같다.

맥그라스가 판타지 소설을 썼다고 들었는데 혹평을 받았다고 들었다.

역시 정리지왕께서 판타지 소설까지 잘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학자가 에세이까지 잘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구분을 못했던 5년 전에 이 책을 읽고 맥나이트의 글을 계속 읽어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예수 왕의 복음>을 읽었는데 엄청 좋았다.

글이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여튼, 한 권정도 읽고 손 놓게 되는 저자들이 있지만

맥나이트의 책들은 계속 읽어도 괜찮다. 

앞으로 그의 글들을 계속 기대한다.

물론, 좀 무거운 책들을 써주시라!

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기대된다!

 

(근데 지금 책을 한번 훑어보는데 괜찮다. 성경신학적으로 좋은 글귀들이 많이 보인다.

당시 왜 내가 밋밋하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글이 잘 읽혀서 그랬는가? 아무튼 괜찮다.)

 

예수 신경이란?

그래도 제목에 대한 설명은 어느 정도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신실한 유대인은 매일 아침 일어날 때와 저녁 잠자리에 들 때마다 큰 소리로 신경을 암송한다. 이 신경은 성경, 그중에서도 모세오경의 하나인 신명기 6:4-9을 비롯하여 다른 두 본문에서 차용한 것이다(이것은 책 뒷부분 용어 해설에 모두 나와 있다). 유대교의 이 신앙고백은 쉐마라고 불린다. (28-29)

유대인들의 신경이 있다. 신명기 6:4-9인데 유명한 구절이다. 잘 알듯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가 바로 위의 구절 속에 있다. 그렇다면 예수 신경은 무엇일까? 저자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기까지는 좋다. 이것은 신명기 6:4-5 말씀과 동일하다. 하지만 그 다음 예수는 레위기 19:18 말씀을 덧붙인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0-31) 

예수님은 이웃 사랑까지 더욱 넓혀 버리신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신경, 곧 예수 신경이다. 

 


메모

몇몇 성경학자들은 본문의 행간에 숨어 있는 유대인의 관습에 주목한다. 한 아들이 범법 행위를 저질러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고, 부자 관계를 끊고 집을 나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면, 성읍의 장로들은 그 젊은이를 마을 중앙에 세운 다음 그의 발 앞에 그릇을 놓고 그것을 깨뜨렸다. 그릇을 깨뜨리는 것은 추방을 뜻하는 법적 행위였다. 또한 학자들은 이 비유에서 아바가 자기 아들을 맞으러 급히 달려간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들을 먼저 발견해 공동체에서 축출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아비는 종을 데리고서 아들에게로 급히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어서 서둘러라! 가장 좋은 옷을 가져오너라." (60)

- 성경신학자의 장점(2015년도에 이렇게 메모가 써져있었다. 이 의식은 베일리의 책에서 나오는데 케자자 의식이다. 이 책이 아쉬운 점은 각주가 없다는 것이다. 뒤에 아들이 추방될 것을 막기 위해 달렸다는 것도 누구의 주장인지 각주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예수와 제자들이 성공하지 못한 보잘것없는 이들이 사는 나인 성에 들어갔을 때 어느 장례 행렬을 만났다. 사람들은 한 여자의 죽은 아들을 관에 넣어 묘지로 가고 있었다. 유대교 관습에서 장례 행렬은 여자가 맨 앞에서 이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와가 먼저 범죄했음을 상기시키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서두를 여자가 장식하는 것이다. 예수가 만났던 장례 행렬 맨 앞에도 여자가 있었고 더욱이 그녀는 과부였다.
예수의 어머니 역시 과부였기 때문에 그는 과부가 된다는 것이 어던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비록 유대교에 과부를 보호하기 위한 율법이 있었지만, 과부는 곧바로 가난뱅이와 동의어가 된다. 불의한 재판장에게 찾아가 그가 공의를 베풀 때까지 간청한 과부의 비유는 당시에 그와 같은 무력하고 가난한 과부가 얼마나 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인 성의 과부는 오래전에 남편이 죽고, 이제는 '외아들'마저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로 인해 자기 수입원도 잃었을 것이다. 예수가 보았을 때 그녀는 슬피 울고 있었다. (165)
누가는 예수가 과부를 보고서 그를 '불쌍히 여겼다' 혹은 '측은히 여겼다'고 말한다. 그가 다음에 한 말은 아마 자기 어머니에게 수없이 한 말이었을 것이다. '울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정에 약한 예수의 모습을 본다. 어떤 사람에게 불쌍한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를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다. 예수는 그 여인에게 정서적인 공감대를 보였는데, 그 감정은 자기 어머니와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사랑과 긍휼은 흔히 말하는 것처럼 가정에서 시작한다. 예수는 과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집에서부터 알았다. 마리아가 과부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성경에 깊이 천착한 마리아는 토라에서 도움을 발견했다. 예수 역시 시편을 반복해서 들었기에 자기 아바가 불쌍한 이들을 도와주실 것을 알앗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버지가 없는 자녀들의 아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정에서의 경험과 그의 신학은 그에게 과부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과 공감을 촉발시켰다. (167)


- 이것 역시 성경신학자의 장점이다. 이 부분을 설교에 종종 인용한다. 근데 예수님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였는지 좀 설명해주는 각주를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 391페이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성경학자로서 정확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 그러나 그가 담아내는 메세지의 전달력(글빨?)은 글쎄...ㅠㅠ

 


책 맛보기

하나님 역시 자기 아들이 나쁜 명성을 가진 부모 - 간음한 여인 마리아와 수치를 당한 차티크 요셉 - 에게서 태어나도록 선택하셨을 때, 당신의 명성을 잃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명성을 잃는 것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독생자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선택하셨다. 역설적으로, 삶에서 예수 신경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하나님이 그분의 명성을 잃어가며 자기 아들이 죽임당한 장소에서 발견한다. 요셉은 가장 먼저 자기 이야기를 식탁에 내놓은 사람이다. (123)

누구도 베드로가 회심했다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순간이 언제 일어났는지, 즉 그가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언제 받았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회심의 신비가 있다. 회심은 하나의 사건 그 이상이다. 그것은 과정이다. 회심은 지혜와 마찬가지로 평생 걸리는 일이다. 회심은 평생 동안 계속되는 영혼의 부드러운(혹은 시끄러운) 끄덕임이다. 그들에게 언제 회심했는가라는 질문은, 그들이 지금 회심하고 있단느 사실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 (142-3)

만일 '하나님 나라'가 예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매우 간략하게 정의한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 신경이 삶을 변화시키는 사회다. 둘째, 그 사회를 형성하는 내용은 예수 신경이다. 셋째,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179-180)

예수 신경은 한 사람의 인격 전체 - 마음, 목숨, 뜻, 힘 - 를 요구하기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다. 전인격은 하룻밤 사이에 변화되지 않는다. 변화는 예수를 따르는 것을 생활 방식으로 만듦으로써 지속된다. (183-4)

토라가 모세와의 언약 아래 있는 이스라엘을 위한 생활방식인 것처럼, 인격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것, 즉 그를 따름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위한 생활방식이다. 예수가 천국에서 선언하는 변화는 사람이 예수를 따를 때 깊어진다. '예수 스타일'의 중심 요소는 예수 신경이다. (185)

예수는 정결을 전염시킨 첫 번째 사람이다. 예수는 우리를 위해 살았고, 우리를 위해 부정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를 만짐으로써 우리에게 자신의 정결을 '전염'시켰다. 우리는 앞에서 예수가 두 번의 부정한 접촉을 흡수한 일을 보았다. 자바와 메초라에게서 말이다. 그러나 예수의 가장 독특한 점은, 그가 부정한 접촉을 흡수하고 그것을 변화시켜 부정한 사람에게 자신의 정결함을 '전염'시켜준다는 것이다. 예수는 정결의 흐름을 돌려줌으로써 그 사람을 공동체 안으로 회복시키고 그 사람이 자신의 식탁에 앉도록 안내한다. (222-3)

 


목차

초대하는 글

머리말

10주년 출판기념 서문

 

1부 예수 신경

1장예수신경이란 무엇인가?

2장 예수 신경으로 기도하기

3장 예수 신경의 아바

4장 식탁으로서의 예수 신경

5장 거룩한 사랑의 신경

 

2부 예수 신경의 이야기들

7장 세례 요한: 새로운 시작에 관한 이야기

8장 요셉: 명성에 관한 이야기

9장 마리아: 소명에 관한 이야기

10장 베드로: 회심에 관한 이야기

11장 요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12장 여인들: 긍휼에 관한 이야기

 

3부 예수 신경의 공동체

13장 변화의 공동체

14장 겨자씨 공동체

15장 공의의 공동체

16장 회복의 공동체

17장 기쁨의 공동체

18장 영원의 공동체

 

4부 예수 신경으로 살아가기

19장 예수 믿기

20장 예수 안에 거하기

21장 예수에게 항복하기

22장 예수 안에서 회복하기

23장 예수 안에서 용서하기

24장 예수 안에서 전하기

 

5부 예수와 예수 신경

25장 요단 강에서 예수와 함께하기

26장 광야에서 예수와 함께하기

27장 산 위에서 예수와 함께하기

28장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와 함께하기

29장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하기

30장 무덤에서 예수와 함께하기

 

감사의 글

용어 해설

더 읽을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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