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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학

[책리뷰] 스캇 맥나이트 - 성서학자가 신학자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IVP I 신학 I 조직신학 I 성서학 I 성경신학 I 성경 I 성서]

by 카리안zz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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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나이트의 <예수 신경>은 당시 정말 별로여서 앞으로 만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예수, 왕의 복음>을 읽곤 우와!!!’했다. 이렇게 정리를 잘 하다니. 줄줄 외워도 좋을 정도였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려 이 책을 찾으려 했는데 없어졌... 누굴 빌려줬는지,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곤 무한 신뢰 맥나이트가 되었다. 당장 <거꾸로 읽는 로마서>를 사서 읽고 싶을 정도로! 5장에 그 책에 대한 소개를 조금 하는데 로마서에 대한 막연한 내 추측에 그림을 잘 그려주더라! , 마이클 고먼의 <삶으로 담아내는 십자가>를 읽어서 그런지 더 이해가 잘 되었다. 나도 십자가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으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 책에 메모를 해놨지 싶은데 맥나이트가 똭 그렇게 써놔서(241) 완전 반갑.

 

전체적으로 이 책이 너무 좋다. 이 책은 한스 부어스마의 책보다 균형점이 더 잡혀 있다고 본다. 본인의 동료들인 성서학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조직신학자들에게도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엔 신앙있는 자들에게 지식과 삶의 통합까지 말한다. 서비스로 조직신학자와 성서학자들 간 서로의 연구를 교류하자는 그의 제안에서 진정성도 느껴졌다.

 

2장에서 제일 놀랐다. 이 책에서 가장 궁금한 점이 과연 전통으로 읽어왔던 우리의 방법을 성서학자들은 어떻게 보는가였다. 그걸 맥나이트는 정면으로 대답한다. 그는 웨슬리 힐, 매튜 베이츠, 매디슨 피어스의 연구를 말하며 삼위일체 신학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시대착오적 해석이 아님을 논증한다(이때, , 허타도, 보컴의 기독론 요약은 진짜 꿀이었다). 물론, , 허타도, 보컴은 그 후배들의 이 결과를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지만 두 분은 돌아가셨으니 보컴만 반응을 할지 모르겠다.

 

성경 시대 이후의 삼위일체적 사고에 비추어 교부들의 주해를 깊이 숙고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을 역사비평 방법론에 제한하고 성경 이후 시대의 사고를 생략한 채로 연구하는 것보다 실제로 예수와 사도들의 신학과 해석학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베이츠는 보여 주고자 했다. 아마 이러한 후대의 사고는 신약성경 자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듯하다.(123-4)

 

. 메인스트림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 저 주장에 반응을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인용은 제법 되어 지켜봐야 될 것같다.

 

여기까지만 딱 썼다면 조직신학자들이 흐뭇하겠지만 3, 4장에서 본격적인 성서학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새관점 이후 바울 학계에 흔든 저작이라 평가받는 존 바클레이의 <바울과 선물>을 가지고 새로운 기반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맥락에서 은혜의 의미를 조율하는 신약학에서 은혜는, 조직신학자들 가운데서 만들어진 은혜 신학의 몇몇 장벽에 금이 가게 한다. 그리고 이 은혜는 조직신학을 새롭게 창조할 만한 새로운 생명력으로 여겨질 가치가 있다.(156)

 

성서학자로서 맥나이트는 바클레이 연구 이후 전과 같이 은혜를 바라볼 수 없다고 과감히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전통을 강조하는 조직신학자들이 불편해할 지점일 같다. 특히, 종교개혁 당시의 신학에 매여있는 신학자들이라면 말이다.

 

4장 서서에 대한 강조는 내가 조직신학 책을 읽을 때 느꼈던 불편함을 글로 잘 표현해줬다.

 

성서학 교수로서 조직신학 연구들을 읽고 나서, 나는 이런 질문을 종종 던진다. 이스라엘은 어디에 있는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신학적 진술들을 제안하는 이들 말고, 예언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을 위해 구원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활동 배경이 되는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출애굽 사건은 어디에 있는가? 바빌론 유수 사건은? 그 땅과 그 도성은? 그 플롯은 무엇인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플롯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와 그 왕국은 어디에 있는가? 내 생각에는 생각과 표현이 아무리 숭고하다 해도, 세 항목으로 만들어진 틀에는 플롯 같은 것이 없고, 주제에 따라 만들어진 틀은 개인 구원에 관한 구성일 뿐이다.(174)

 

서사 신학에 대해선 맥나이트도 깊게 연구한 것이 아니라 깊게는 말하지 않는 듯하다. 담임목사님이 이 분야 전문가이신데 거기서 박사학위 하는 분들이 연구를 잘하고 계신다. 지도 교수가 스탠리 포터라는 것만 유명하시지 심사 교수가 데이비드 로즈였다는 건 많이 모르실 것. <이야기 마가>의 데이비드 로즈는 서사 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 같더라. 성경에 하나의 서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맥나이트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 이 서사가 성경을 읽는데 가장 도움이 된다는 것에 나는 강하게 동의한다.

 

성경의 신학은 이야기다. 이야기의 틀로 구성된 신학이 없다면 우리는 성경 자체가 가진 틀, 곧 구심점을 잃어버린다.(196)

 

초반부 맥나이트도 언급하는 앤서니 티슬턴이 조직신학과 성서를 연결시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다 소화는 못했지만 <기독교 교리와 해석학>에서 화용론으로 이 둘을 연결시켰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조직신학>도 쓰지 않았나. 나는 티슬턴의 본문 활용이 너무 좋았다. , 이 책에서도 종종 언급하는 케빈 벤후저의 <교리의 드라마>도 네러티브를 확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선 그런 평가는 없지만.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 프랜시스 영의 <신경의 형성>도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녀가 말하는 역사에 참 공감이 되었다. 역사를 어떻게 보고 신경의 형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풀어주는 그녀의 작업은 조직신학과 성서학에 대한 좋은 작업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 전공도 그렇고. 책 마지막 로완 윌리엄스가 그녀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 대목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스 부어스마의 글을 메인스트림에 있는 성서학자들이 읽어본다면 어떤 반응 보일까? 진짜 싸움각을 보려면 그들에게 부어스마의 글을 읽히고 나오는 반응이 궁금하다. 누가 김선용 박사님께 책 리뷰를 부탁 좀...ㅋㅋ

 

여튼, 맥나이트의 박식함과 태도에 깊은 박수를 보낸다. 신학을 전공한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려크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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