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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학

[책리뷰] 데이비드 칼훈 - 칼뱅을 읽다[죠이북스 I 기독교 강요로 배우는 칼뱅 신학 사상 I 칼뱅 I 기독교 강요]

by 카리안zz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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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를 읽으면서 같이 읽을만한 해설서가 없을까 고민차에 이 책을 선택했다. 이 분야에 아는 지식이 거의 없다보니 출판사와 저자를 신뢰하고 선택을 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내가 읽는 건 로버트 화이트가 영어로 번역한 1541년 프랑스어 초판인데 이 책은 1559년 맥닐-배틀즈판을 기준으로 삼았단다. 아뿔사. 맞춰서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26장으로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주제에 맞춰서 해설해준 괜찮은 책이었다.

 

이 책은 칼뱅의 <기독교 강요>만이 아니라 칼뱅의 주석이나 설교를 언급하며 더욱 폭넓게 이해시켜 준다.

 

칼뱅은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했는가? 16세기에는 이 단어가 성경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편 119편 139절 주석에서 칼뱅은 우리 삶을 규제할 수 있는 “확실하고 오류 없는 잣대”로 성경을 설명한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우 정확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한 경외심을 성경에도 돌려야 한다. 성경의 유일한 출처는 그분이며, 그 출처에는 인간적 기원이 전혀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주석_딤후 3:16).(50)

 

이렇게 칼뱅이 했던 주해들이나 때론 설교들을 언급하며 더 풍성히 해준다. 그런데 위의 칼뱅의 말들은 확실히 비평학 이전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단어가 쓰이지 않았다는 건 말하면서 시대적인 한계는 인식하지 못하고 칼뱅이 축자 영감이나 성경의 무오성을 모두 견지했다는 걸 강조한다. 칼뱅이 그걸 어떻게 이해했는가보단 그냥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의 근거로 사용한다. 근대 전의 인물에게 왜 그런 걸 찾으려고 하는지 참 웃기긴 하다. 딱 이부분에서는 저자에게 의아했다.

 

<기독교 강요>를 읽으면서 느낀 건 하나님 중심에 대해서 이런 건가 싶었다. 칼뱅은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칼뱅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구원의 창시자시라고 주장한다.(116)

 

칼뱅은 구원 과정 전체가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을 다시 설명한다.(249)

 

참된 기도는 우리 자신의 영광과 가치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선택교리(하나님의 큰 은혜와, 그분 앞에서 우리를 완전히 비우는 일)도 그 주제를 계속 이어 간다.(286-7)

 

대표적으로 메모한 부분들이 이렇지 읽다 보면 칼뱅은 하나님이 늘 중심이 된다.

 

이외에도 삼위일체를 말하는데 왜 성경에도 없는 철학 용어로 말하는지에 대한 칼뱅의 대답(69), 전적타락이란 인간이 극단적으로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타락을 말한다는 것(110), 사회적 지위, 문화, 인종,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으로 봐야 한다는 것(223), 인간 소명에 대한 보수적, 진보적 태도(234), 기도란 우리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시키는 것(262), 삶의 태도에 대해(327), 목사는 성직자로 불리지 않길 바랐던 이유(354)들이 대표적으로 인상에 남았다. 2회차때는 다른 부분들이 인상에 남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칼뱅이 주일 예배를 끝마치며 드린 감사 기도를 옮겨 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가련한 죄인인 우리에게 그토록 큰 은혜를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인도하심에 영원한 찬송과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우리를 위해 죽음에 넘겨주신 분이요, 당신이 우리에게 영생의 고기와 음료로 주신 분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다른 은혜도 주시옵소서. 우리로 이런 것들을 결코 잊지 않게 하시고 우리 마음에 새기셔서 날마다 우리 믿음이 자라 온갖 선생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높이고 우리 이웃에게 덕을 세우게 하소서. 성령의 하나 됨 안에서 영원히 하나님 당신과 함께 살고 또 다스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멘
(430)

 

대표적으로 메모한 부분들이 이렇지 읽다 보면 칼뱅은 하나님이 늘 중심이 된다. 개혁파 신학이 어쩌면 이게 핵심이지 않을까 싶었다. 바르트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위로부터의 계시를 강조하는 바르트적인 설교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개혁파의 중심이지 않을까 싶은. 바르트 역시 칼뱅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니. 그게 이 부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고로 나는 개혁파 설교를 하는 장로교 목사(?)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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