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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신학

[책리뷰]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 하나님의 정의[복있는사람 I 정의 I 기독교의 정의란]

by 카리안zz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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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도덕적 의미에 대한 이렇듯 놀라운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암브로우시우스, 바실리우스, 그리고 다른 교부들이 그것을 발명했을까? 아니면, 그들이 이교적인 그리스·로마 유산에서 가져온 것일까?

아니다, 요하네스가 지적하듯이, 그것은 성경에서 온 것이다. 권리의 계보학은 우리를 계몽주의 정치 사상가들에서 초기 칼뱅주의 신학자들에게, 초기 칼뱅주의 신학자들에서 종교개혁 이전의 스페인 신학자들에게, 종교개혁 이전의 스페인 신학자들에서 12세기 교회법학자들에게, 12세기 교회법학자들에서 교부들에게, 그리고 교부들에서 기독교 성경으로 이끈다
.(115)

 

설교에 읽을 내용들을 거의 다 추린 뒤 성경 구절들을 발췌하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 <3부 성경의 정의>에서 그걸 볼 수 있을거란 기대에. 기대는 충족했고, 위의 문장을 발견했다. 사실, 내가 준비해온 설교는 저기 위의 주장을 반대로 나열한 것이었다. ‘성경 교부 중세 교회법학자 칼뱅주의자 스크랜턴, 전덕기, 안창호말 그대로 겨자씨 같이 작은 씨앗이 심겨 나무를 이루는 모습을 나는 그리스도인들의 발자취에서 그걸 발견했다. 우리의 제도에서, 이 땅에 역사에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 이뤄진 그분의 뜻을 말이다.

 

(1, 2부는 몇 년 전에 읽었고) 3부까지 다 읽으니 절반 이상 읽었더라.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다 읽어버리자 싶어서 오늘 다 읽었다. 역시 철학자의 글은 어렵다. 권리에 대한 논의는 진득히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존 롤스부터해서 기초적인 배경 지식이 없으니 월터스토프의 논의를 따라가기가 벅찼던 것같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책을 쓰게 된 계기는 기억에 남는다.

 

내가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도록,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면서 정의에 대해 생각하도록 자극했던 것은 바로 내가 사회적 불의의 희생자들(처음에는 남아공에서 유색인들, 약간 뒤에는 팔레스타인들, 한참 뒤에는 온두라스인들)과 직접 대면한 일이었다. 논의의 초반부에서, 나는 학대받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의에 대한 나의 사유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했다.(347-8)

 

직접 그들의 얼굴을 대면했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정의에 대해 참여했고, 글을 썼다. 나도 그런 그의 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제목,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에서 만났다. 그곳에서도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 있었다. 이 책에선 그때의 현장을 말한다. 칼뱅주의 전통의 최고 수치. 하나님께서 각 종류대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각 종류대로 인종을 나누는 정책. 사는 구역, 일하는 곳 등등 대대적인 차별이 일어났다. 이 차별을 앞장섰던 이들이 네덜란드에서 이주해온 아프리카너들이었다.

 

이것에 저항해온 인물이 넬슨 만델라이며, 성공회 데즈먼드 투투 주교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세계개혁교회동맹의 수장이었던 앨런 부삭이 있다. 칼뱅주의자들이 억압했지만 그 반격도 없이 칼뱅주의 신학으로 반격이 일어난다. 그가 법정에서 한 말이 참 와닿는다.

 

“나는 나의 정치활동이 목사로서의 나의 소명에 추가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개혁주의 전통 출신입니다. 그 전통에서는 정치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속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서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앨런은 이 순간에 그 관리의 얼굴에서 미소가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후에 우리는 그가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장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 청문회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삭에게 유리하게 끝났다. 판사는 논란이 된 단서들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면, 그가 부삭에게 동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217-221)

 

<도미니언>에서 성경으로 억압하면서 성경으로 반격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말했다. 이 사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진화론으로 우생학을 만들어 학살에 도움을 준 과학, 나치에게 영향을 준 니체철학이라도 그것 자체에 혐의를 씌우지 않겠다. 어디까지나 과학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인격의 문제였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그가 잘못 사용한 것이다. 그의 인격의 문제다. 기독교의 안좋은 모습으로 구분하기 참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과학도, 철학도, 역으로 그런 식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

 

기독교의 정의를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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