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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역사

[책리뷰] 알리스터 맥그래스 - 장 칼뱅의 생애와 사상[비아토르 I 서구 문화 형성에 칼뱅이 미친 영향 I 자본주의 I 칼뱅주의]

by 카리안zz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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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는 신학적 장식을 뺀 천부인권 개념을 칼뱅 시대의 제네바 공화제와 혼합했다. 루소는 16세기 제네바야말로 공화국의 모범 사례라면서 18세기 프랑스 상황과도 관련성이 깊고 흡수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하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칼뱅 시대의 제네바는 활기차고 강력한 이상이 되었고, 혁명 이전 프랑스는 그 이상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다면 1789년 프랑스혁명은 1535년 제네바 혁명이 낳은 자식일까?(326)

 

얼마 전 정승훈 교수님의 공공신학 강의를 들었다. 거기에서 루소가 가장 존경한 사람이 칼뱅이라 한다. 입법자로서 칼뱅의 구상한 민주주의가 루소의 사회계약론 속에 듬뿍 들어가 있다고. 이 루소를 가지고 정치신학을 한 사람이 바로 칼 바르트다. 그래서 루소와 칼뱅을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눈에 띄는 기사가 보인다. 유시민 씨의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 속에서 칼뱅주의를 전체주의자라 말하고, 공포정치를 일삼았고, 광신자였으며, 사이코패스였으며 그 공포정치를 루소가 200년 뒤에야 끝냈다는 게 유시민 씨의 의견이다. 이 분은 역사책도 내시는 분인데 왜 공부를 안 하고 이런 거짓된 정보로 가공된 내용을 책에 썼을까? 말은 참 잘하시는 분이시지만 언제나 내공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일단 루소는 칼뱅을 이렇게 생각했다.

 

칼뱅을 그저 신학자로만 생각하는 이들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들이다. 칼뱅은 우리의 훌륭한 법을 편집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이것은 그의 「기독교강요」만큼이나 인정받을 만한 일이다. … 우리에게 국가와 자유에 대한 사랑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위대한 이를 계속 경의하며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칼뱅이 제네바에서 공포정치를 했다고?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인간희극>에서 1541년에 칼뱅이 제네바에 돌아보자마자 “처형이 시작되었고, 칼뱅은 종교적 공포정치를 준비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발자크는 ‘시적 자유’를 남용하다가 칼뱅과 로베스피에르를 혼동했는지 모른다. 여하튼, 제네바에 공포정치는 없었고, 칼뱅은 제네바시를 통제하거나 지배하는 것은 고사하고 공포정치를 선동할 만한 자리에 오른 적도 없다. 칼뱅이 돌아온 직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네바에서 종교 범죄로 처형된 사례는 단 한 번뿐이다... 칼뱅의 평판을 떨어뜨리려는 시도는 좀 더 최근에도 있었다. 올더스 헉슬리는 아무런 증거 자료도 제시하지 않은 채 “칼뱅이 제네바에서 신정 통치를 하는 동안 자기 부모를 때리려 했다는 이유로 한 아이가 공개 참수형을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우선, 제네바 기록보관소에는 그런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범위를 최대한 넓혀서 찾아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둘째, 제네바 형법이나 민법에는 그런 가혹한 처벌은 고사하고 그런 기소조차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 셋째, 제네바 민·형법의 내용 및 집행은 칼뱅과 아무 상관이 없다. 칼뱅이 법률가로서 제네바 법률 입안에 가끔 관여한 것은 맞다. 예를 들어, 1543년 칼뱅은 도시 파수꾼 등의 문제에 관한 법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글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칼뱅의 법률이 아니라 제네바시의 법률이었다.(195-6)

 

제네바 시의회에서는 외국인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 프랑스인이었던 칼뱅은 제네바 도시의 시민이 되지 못했다. 명령할 권한도 가지고 있지 못한 이 양반이 어찌 제네바에서 공포정치를 할 수 있겠냐. 슈테판 츠바이크는 칼뱅을 제네바의 운 나쁜 주민들을 혹독하게 다스리는 권위적인 지도자로 묘사했으니 이는 16세기 제네바가 아니라 그가 매달렸던 반 권위주의 의제에서 비롯”(202)되었다.

특히 칼뱅이 있었을 때 일어난 사형의 딱 한 사례, 세르베투스 사건이 일어난 1553년이야 말로 칼뱅이 가장 제네바에서 입지가 안 좋을 때였다. 제네바에서 반 칼뱅 연합이 주요 관직을 장악했고, 그의 지지자들이 선거권을 잃어버린 판국이었다. 그로 인해 칼뱅의 종교적인 권한도 위태했을 때였다. 결국 그 해 1553년 칼뱅은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한다(203-4). 이 책에서도 자세히 적혀있고, 브루스 고든의 <칼뱅>에서도 이 부분은 잘 나타난다. 칼뱅을 공포정치를 일삼은 독재자로 보는 것은 아쉽지만 깊게 공부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생산자(학자)가 아닌 지식소매상이기에 유시민 씨는 슈테판 츠바이크나 그 후의 근거 없는 기록들의 나열 한 걸 보고 그런 말을 한 것같다. 이는 유시민 씨만이 아니라 소매상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각심을 준다. 어찌보면 이런 걸 잘하는 게 목사들 아닌가. 소매상을 지향하는 나이기에 당연히 조심해야 겠다.

 

여튼, 자본주의에 대해, 기독교 강요에 대해, 노동에 대해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30년 전 1990년에 나왔기에 지금은 훨씬 많은 자료들이 나왔으리라. 맥그래스가 제시한 주장과 근거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그 간극을 살펴 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C. S. 루이스 전기에서도 느꼈지만 이 책 역시도 왜 이리 재미있나! 맥그래스의 전기는 믿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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