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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인문

[책리뷰] 천현우 - 쇳밥일지[문학동네 I 산문 I 청년공, 펜을 들다 I 비정규직 I 노동 I 노동자]

by 카리안zz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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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집을 옮겨다니는 동안 제대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왜소한 몸집과 입에 밴 서울 말씨 때문에 학교 폭력을 당하기 일쑤였으며, 가난 때문에 소풍이며 수학여행도 제대로 못 가 사진조차 거의 남기지 못했다. 게임에 빠진 이유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모니터 속의 세계에선 가난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다. 타인에게 거절당해도 상처가 남지 않았고, 혐오하는 이와 적대해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19)

 

초반부 천현우 작가의 생애를 읽고는 깜짝 놀랐다. 간혹 그의 칼럼과 글을 읽었을 땐 공부를 잘하지만 마에스터에 입학해 빨리 취업한 그런 사람인줄 알았다. 글을 참 잘 쓰니(내 기준에선) 당연히 나름의 엘리트일 줄 알았던 그였는데 세상에나. 그는 엄청난 이력을 지녔다. 그는 정말로 가난했다. 가난의 최하층에 위치할 정도로.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다 상도동 집 한 채를 통째로 날려먹었다. 어머니. 비록 생모는 아니나 가슴으로 날 낳고 기른 심여사는 이혼과 함께 어린 날 데리고 내려왔다. 그야말로 비참한 낙향. 여덟 살 당시... 심여사가 아픈 바람에 아버지 밑에서 회원초등학교 3학년을 보냈다. 심여사에게서 떨어져 살았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 끔찍했다. 아버지는 바람기를 주체 못해 이리저리 쏘다녔다. ... 기아 수준이었다. 한번은 영양실조로 쓰러졌고 운좋게 아버지가 그날 들렀던 탓에 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이 엄마라며 날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생모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32-3)

 

“방치되어 있었던 일 년보다 더 버티기 힘겨운 나날이었다... 생모는 정말 다양한 방식의 폭력을 구사했다. 하도 심하게 얻어맞은 날엔 학교도 못 갔다. 옆방의 정체불명의 두 남녀, 삼촌과 이모라 불렀던 그 사람들은 내가 보는 앞에서 ... 하는 괴상망측한 취향이 있었다. 거사가 끝나고는 꼭 소보로빵과 1000원을 내 손에 쥐여주곤 했다.”(33-4)

 

“만화방을 하는 친구네 집은 꿈동산 같았다. 친구는 모친을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불렀다. 어머니라고 안 불렀다고 효자손 갈퀴를 자식 입에 쑤셔넣던 생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는 만화책 몇 권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책장에 도로 꽂지 않고 내팽개쳐두었다. 청소 안 했다고 쓰레받기로 엉덩이와 종아리가 검게 변하도록 때린 생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는 나와 저녁을 함께 먹다 반찬 투정을 했다. 밥 남겼다고 그 자리에서 얼굴에 밥그릇을 집어던진 생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는 피시방에 놀러가겠다고 용돈을 달라고 했다. 게임하고 싶으니 1000원만 달라던 자식 배를 걷어찬 생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피시방으로 가는 동안 친구에게 물었다.

“니 왜 안 맞노
?””(34)

 

일반 보통의 가정도 아니었으며 그저 가난한 집에서 자란 청년이 아니라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난 청년이었다. 이런 궤적을 지나오기에 선택이 아니라 그저 공장으로 가는 것말고는 다른 선택은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런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책은 정말 너무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10여년 전 1년 정도 공장생활을 했기에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긴 했다. 물론, 나같은 단순 작업에 동원되기보다 용접 기술직이었기에 훨씬 위험한 현장에 있었다. <불평등의 세대>에서 노조원과 노조에 속해있지 않은 비정규직의 차별을 글로 봤다면 이 책에선 현장감 있게 잘 보여주었다. 하청 업체의 차별을 담담히 녹여낸다.

 

책에선 사람들의 시선들이 자주 나온다. 고졸이거나 전문대를 나왔거나 기술직에 대해, 공장에서 현장직에 일하는 것에 대해 멸시의 시선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시선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가치는 넘친다고 본다. 나는 멸시에 닿는 천현우의 시선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되치는 것도 아니라 극복해 낸다. 후반부 등장하는 그런 시선에 힘이 났다.

 

이 책, 강력 추천한다. 많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다시 만났을 땐 집, 차, 돈, 주식 따위 얘기밖에 남지 않은 멋없는 마흔 살이 되지 말자고. 충춘한 가로등 빛 아래, 첫 노등을 함께했던 동창의 등이 멀어져갔다.”(246)

 

그런데 천 작가님 혹시 모태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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