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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책리뷰] 고요한 -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나무옆의자 I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I 세계문학상 I 문학 I 소설 I 고민하는 청춘]

by 카리안zz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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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걷는다는 이야기가 끌렸다. 고등학교 시절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이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내용도 가물하지만 참 좋았던 느낌만 남아있다. 밤에 하루종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학교의 전통 속에서 오해들이 풀려가던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여튼, 그 내용이 참 좋아서 <꿀벌과 천둥>도 읽었다.

 

이 책 역시도 밤에 걷는다. 오토바이를 타며 누빈다. 장례식 알바를 하는 두 청년들이 일이 끝나면 깊은 밤이기에 가장 깊은 서울의 밤을 누빈다. 책의 타이틀 소개처럼

 

서울의 밤을 환상처럼 꿈처럼 떠도는 두 청춘

삶과 죽음을 껴안는 아름다운 애도와 성장의 서사

 

를 이야기한다.

 

마침 누비는 장소가 광화문 근방이어서 다행이었다. 몇 년 전 딱 이 거리를 가본 적이 있었다. 아직도 인사동 거리가 참 기억에 남는다. 나중 서울에 놀러갈 일이 생기면 인사동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여튼, 책에서 인사동 거리는 가지 않지만 광화문, 덕수궁, 새문안교회, 서울역사박물관 등이 나왔을 땐 참 반가웠다. 특히 새문안교회와 서울역사박물관은 정확히 내가 걸었던 코스여서 더 반가웠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새문안교회 강의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새문안교회를 너무 일찍 도착해서 그 근방들을 책에 나온 코스대로 걸었다. 서울을 별로 가본 적도 없었는데 모르는 장소가 나왔다면 책이 안 읽혔을 것 같다. 제법 근방을 누비는 내용들이 많아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 곧 살아가는 이야기에서는 정규직을 향한 그들의 관심이 자주 나온다.

 

“마우러 할머니는 정규직일 거야. 그래서 고통을 다 참아 냈을 거야. 정규직만 된다면 난 그런 고통쯤은 참을 수 있어.”(76)

 

죽음을 목도한 한 가족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드리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보였다.

 

“엄마도 ...죽음을 잊기 위해 가이드 일을 하면서 잠시 이곳을 떠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을 쐬고 오면 엄마의 마음에 고여 있던 슬픔도 날아가는 것이라고. 내가 오토바이를 타면서 슬픔을 날리는 것처럼 엄마는 비행기를 타면서 슬픔을 날리는 것이라고. 어쩌면 엄마는 여행지에서 목 놓아 올고 오는지도 몰랐다.”(151)

 

주인공 재호는 가족에 대한 고민을 한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다 가족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만둔다. 그러나, 같이 알바를 하는 마리에게는 거침없이 전화를 건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함께 마음을 나누는 이가 더욱 가족같이 보인다.

 

“우리의 밤은 죽은 자들이 있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되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창밖 풍경, 상주들의 울음소리와 시끄럽게 떠들며 술을 마시던 조문객들. 그 사이로 피어오르던 육개장 냄새와 국화 냄새와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타오르던 향 냄새. 그런 냄새 속에 우리의 밤이 있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 장례식장을 나서면 진짜 우리의 밤이 시작되었다. 맥도날드를 찾아 서대문에서부터 광화문과 종로 일대까지 걸었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다....다른 사람을 보내 주는 일을 하면서 나 역시 위로를 받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오래 한 이유일지도 몰랐다.”(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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