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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책리뷰] 김훈 - 하얼빈[문학동네 I 안중근 I 이토 히로부미 I 동양평화론 I 평화론 I 역사소설]

by 카리안zz 202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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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하면 그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 역사를 그다지 잘 알지 못하는지라 이토 히로부미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의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저 일본이 모든 국가를 후드려 패고 있는 것만. 왜 그토록 일본은 폭력을 펼치지만 평화를 운운했을까?

 

“조선 유림의 사표로 일컬어지는 최익현의 고루함을 보라. 그가 이 세계의 물성에 관하여 무엇을 아는가. 그가 역사의 층위와 발전 원리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시대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그가 힘의 작동 원리를 아는가. 그가 웅장하고 허망한 언사를 설파함으로써 약동하는 세계의 풍운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무리에게 시운을 기탁한다면 조선은 스스로 보전할 수 없다. 스스로 독립할 힘이 없는 자는 적대하는 여러 방면의 힘을 끌어들여서 그 완충의 자리에서 홀로 설 수 없다. 여러 힘들이 조선 반도에서 부딪치면 평화는 기약할 수 없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길은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독립이고 동양의 평화이다.”(83)

 

“열복은 기뻐서 스스로 따른다는 뜻이다 이제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동양의 평화를 실현하려면 열복이 필요하다. 열복은 일본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것이다. 열복은 문명개화의 입구이고 동양 평화와 조선 독립의 기초이다.”(84)

 

이것이 이토로 상징되는 동양평화론이자, 문명개화론이다. 더 큰 화를 피하고 완전한 나라를 이루기 위해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그 어쩔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쟁이고 누군가의 파멸이다. 오히려 그 희생되는 것이 없다면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일본은 동양의 구원자를 자처한다. 고마워 하라는 것이 바로 열복이라는 단어에 의미인 것 같다.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이라고 해야 하나. 국가의 가스라이팅이 이토록 큰 비극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것은 동아시아에 팽배했던 당시의 분위기였다. 아무도 거스리기가 쉽지 않은 그런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의병들이 일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도.

 

그중에 안중근이 있었다. 그는 포수 출신으로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의병대 참모중장 계급이었다. 한 번은 전투에서 승리를 했는데 포로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이자들을 죽여 없애는 것이 국권회복에 도움이 되는 지를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 생각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포로들 중 선임병이 말했다.

-총기 없이 돌아가면 군법으로 처형입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안중근은 포로들의 소총을 돌려주었다.

-가져가라. 가서, 발설하지 마라.

포로들은 돌아갔다.

장교들이 안중근에게 항의했다 장교들은 일본군이 생포한 의병들을 학살한 사례를 들며 분노했다.

-우리는 적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오!

-포로를 죽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너희들은 여러 말을 하지 마라.

석방된 일본군 포로는 부대로 돌아가서 안중근 부대의 위치와 병력 규모를 보고했다.”(92-3)

 

 

그의 기대와는 달리 포로들은 발설했고, 그 일로 안중근은 난처해졌다. 그러나 이 일로 그의 목표는 분명해진 것 같다. 그는 돌고 도는 악의 사슬의 길과는 달리 간다. 후에 동학군과 관군의 악의 사슬과는(179) 분명 다른 길이었다. 이토를 저격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은 여러 세계가 만나는 하얼빈에서 이뤄졌다.

 

안중근은 이토를 죽이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런 세계에 일본의 평화가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의 평화는 제국의 폭력으로 세계가 재편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대가 말하는 동양 평화란 어떤 의미인가?

-동양의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는 것이다.

-그중 한 나라만이라도 자주독립하지 못하면 동양 평화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218)

 

 

안중근의 총알이 이토에게 향했다면 안중근의 말은 일본 제국을 향해 닿았다. 안중근과 공범 우덕순은 포수, 무직, 담배팔이였다. 그래서 일본은 무식한 자들의 무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몰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지의 말이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총알이었다. 그토록 엘리트였고, 강성한 자들이 실은 무지했고, 틀렸던 것이다. 어떻게 31살 젊은 청년이, 그리고 엘리트도 아닌 이들이 이런 일을 벌렸을까? 안중근은 하나라도 어긋났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267).

 

이외에도 교회의 평화도 나온다.

 

“개인들의 영성이 꽃처럼 피어나면 그 꽃들이 모여서 문명을 이루고 하느님의 나라가 그 위에 세워지는 평화의 구도를 뮈텔은 아직도 이 황잡한 세상에 펼 수가 없었다. 적개심에 가득찬 자에게 평화를 말할 수는 없었다. 총으로 쏘아 죽이는 방식으로 증오를 표출한 천주교인의 죄악에 뮈텔은 상심했다. 백 년이 넘는 박해의 세월을 견디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순교의 피 위에 세속의 거점을 겨우 확보한 조선 교회가 또다시 세속 권력과 충돌한다면 교회의 틀이 위대로워질 것을 뮈텔은 걱정했다. 뮈텔은 자신의 걱정을 신부와 신도들에게 말할 수가 없았다.”(185)

 

당시 천주교인의 이런 일로 인해 천주교는 난감했다. 당시 정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목회자로서 빌렘 신부님께 많이 감정 이입이 되었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 성도가 이런 일을 일으켰다면 나는 무어라 말할까? 빌렘은 뮈텔의 지시를 무시하고 안중근에게 가서 그에게 고해성사까지 해주었다. 그장면에서 참 울컥했다.

 

그 외에도 이런 일을 벌인다면 분명 자신의 가족들이 힘들어질 것을 안중근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들의 삶은 힘들었다. 작가 김훈의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그의 아내 김아려의 목소리가 이 책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점이 부족했다고 저자는 말했는데 공감한다. 좀더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파친코에서도 그렇고 옳은 일을 행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비참한 삶을 이어간다. 신원에 대한 말이 왜 제2성전기 시기에 강조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실로 하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완성된 그 나라에서는 이들은 신원될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그런 것이 아니던가.

 

후기에서 김아려의 자녀들은 자신의 아버지의 행적을 부정하는 일들에 손을 잡는다. 안중근의 형제들이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한 것과는 전혀 다른 행적이다. 안중근의 막내 동생인 안공근은 김구의 오른팔이 되기까지 했는데 김구는 자신의 아버지의 행적을 부정한 안중생을 체포하고 구금해줄 것을 장제스에게 요구했다. 심지어 교수형에 처해달라고까지 했다. 이 자녀들은 왜 그런 일들을 했을까.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을까. 아니면 일본의 힘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일본에게 동의해서 그런 것일까. 협박 때문에 그런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책을 읽고나니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간 여정을 나도 따라가보고 싶어진다. 훗날 남북평화체제가 이뤄진다면 한 번 버킷리스트로 해봄직하지 않을까. 안중근의 시선을 따라가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좀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진도가 훅훅 나가지 않았다. 한자어가 많아서 사전을 찾아보면서 읽었다. 내 문해력이 얼마나 엉망인지 잘 알게 되었다. 문해력을 늘리고 싶으면 문학책을 많이 읽으면 되겠다. 물론, 문장력 있는 작가의 글을 읽어야겠지만. 여러 생각을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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