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콜린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였고, 지금은 미국 국립보건원 총책임자다. 상당히 높은 직책이라고 한다. 리처드 도킨스야 무신론자로 유명하고 학자로서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건 부정 못 한다고 한다. 단지 그 지독한 환원주의가 문제라고 무신론자들도 비판한다. 우리 유신론 쪽에서는 도킨스의 대적자로 알리스터 맥그라스를 뽑는다.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특히 그렇다. 또 옥스퍼드대학 수석 졸업자라고 알고 있다. 신학은 명예박사로 알고 있다. 정확한 건 이재근 교수님 글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글 확인을 못하겠다. 어쨌든, 도킨스 상대로 이야기는 되겠지만 전공으로 따지면 한참 비교가 안 된다. 물론, 싸움은 전공인 생물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나 과학철학쪽의 싸움이라서 맥그라스가 전혀 밀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굳이 전공에서 매치를 하자면 프랜시스 콜린스는 급이 맞을 듯 싶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라는 아주 인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맞은 인물이니까!(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라는 걸 모르더라. 내 초-중학교때는 막 예능에서도 유행이었는데...)
앞서 읽은 <무신론자들의 망상>이나 <신을 옹호하다>는 대표적 무신론자인 도킨스와 히친스류의 공격에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과학에 관한 기독교인 과학자들의 솔직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밖에 분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기독교계는 창조과학이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신대원 설교학 시간에 창세기 창조이야기의 본문을 같은 반 동생이 설교를 했었다. 본문에 맞게 아주 잘했다. 그런데 교수님의 왈. 왜 창조과학을 이야기하지 않냐고 했다. 거기에서 나는 뜨악했다! 어쩌면 지금도 교회를 오래 다닌 기독교인들에게 창조과학은 영향력을 끼치는 듯 싶다.
기독교계에서 질문하기 까다로운 것을 알려준다. 목록이 이걸 잘 말해준다.
1장 진화를 꼭 믿어야 할까?
2장 지구가 수십억 년 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3장 과학과 종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4장 과학의 진리와 성경의 진리는 조화될 수 있을까?
5장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6장 왜 다윈의 이론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가?
7장 우주의 미세조정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가리킬 수 있을까?
8장 진화와 인간
9장 장엄한 창조의 이야기
진화에 대해서 길게 설명을 해주는데
“여기서는 단지 대다수 진화론자들이 생명의 기원 문제가 생물학적 진화의 영역 밖에 위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만 언급하려 한다. 진화론이란 생명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관한 이론이지, 어떻게 생명이 처음으로 출현했는지에 관한 이론이 아니다”(49)
대략 이렇게 과학과 형이상학의 영역을 그어준다. 또, 자연선택이 무엇인지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 왜 진화론적으로 틀렸는지 (진화론에서는 공통조상을 말한다) 평생 문과생인 나에게 과학상식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러 상식을 배웠다. 우주에 대해, 지구의 나이에 대해, 엔트로피의 정확한 설명 등등. 성경 해석이야 뭐 아주 기본적인 언급을 해서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께 딱 적당한 설명이 아닐까 싶었다. 놀랐던건 어거스틴이 이미 ‘틈새의 신’에 대한 개념을 말했구나 싶었다. 여윽시 어거스틴...! 또, 위의 여러 상식을 왜 설명을 하냐면 기독교 안에서 그런 공격들이 있어서다.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믿지 못하고, 우주에 관해서도 그렇고, 엔트로피를 잘못 이해를 해서 진화를 공격하는 것 등 그런 기초적인 과학 지식도 없이 공격을 하니 기독교인 과학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러니 하나 하나 차근히 일러준다.
프랜스시 콜린스가 만든 단체가 바이오로고스인데 이 단체는 이신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견 비판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자연법칙으로 모든 걸 설명을 해버리면 하나님의 행동은? 제약받는 것 아닌가. 여기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이렇다.
“부모와 관련된 유용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의 관점은 마치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운동장에 놀이 기구들을 만들어놓은 다음 그들을 계속 감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도록 허락한 것과 같다. 그러나 그렇게 허락했다고 해서 부모가 “희미한 기억”이 되어버렸다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와 유사하게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진 자율적 존재들을 만드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관심을 잃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러 가셨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여전히 피조물들에 관해 원하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역사하실 수 있다.
이신론의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전통적 기독교가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단지 “태초”의 기원을 시작하는 역할에만 제한되실 수 없다는 일반적 관심사를 공유한다. 그런데 미세조정 이론은 전부 기원에 관련된다. 현재의 논의에 도입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 중심 문제는 “하나님의 행동”이다. 우리는 이 문제가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보다 바이오로고스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269-270)
과학에 대한 기독교인의 입장을 살펴 보려면 이 책을 보시라.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논의에 별 관심이 없더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런 논쟁을 말하니 그게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냐 묻는다. 신이 있든 없던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이 스트레스 받는 학업에서 나는 불행하다고. 아뿔사. 이것도 내 또래의 관심사였구나. 이제 다음은 세대에 대한 공부를 해보려 한다. 우리 시대 사회의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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