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과학자의 대화. 벌써 3년 전이다. 베리타스포럼을 고려대에서 했었다.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열린 포럼이 한국에서 최초 시작된 것이다. 첫날은 오스 기니스, 둘째날은 강영안 교수님과 우종학 교수님의 대담이 있었다. 학내 사태가 있어서 첫날, 둘째날 다 갈 수 있었는데 첫날 수업이 있는 교수님께서 무자비하게 출첵을 해 친구와 쫄아 못 갔다. 둘째날은 갈 수 있게 되어 바로 달렸다.
당시 많은 청년들이 왔었다. 강연은 사실 기억이 크게 나지 않았고 질의할 때 느낌만 기억에 남아 있다. 질문할 때 학교 이름을 밝히고 하던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이었다. 근데 질문은 역시나 전공을 하지 않으면 깊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가 명문이라고 내용의 깊이까지 담보하지 않는다. 여튼, 그때 그 기억도 있고 좀더 확장되고 정리된 글이기에 구입을 했다. 구입하고 좀 시간이 지나 이번 수련회 주제가 겹쳐 읽게 되었다.
강영안 교수님은 철학자이다. 기독교인 철학자. 내가 알기론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학위를 하셨다. 그리고 그분의 지도교수는 반 퍼슨으로 알고 있다. 도예베르트의 후계자로 알고 있다. 따로 학파를 형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 전 읽은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 9인>에서 얻은 내용이다. 손봉호 교수님도 마찬가지로 반 퍼슨의 제자로 알고 있다. 나는 강영안 교수님이 월터스토프의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의 해설을 큰 깨달음이 있었다. 칼뱅의 핵심은 예정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그 예정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설명이 된다고. 그렇게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과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를 읽으며 단순 우리의 신앙이 개인과 사적 영역을 넘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때가 내 신앙의 가장 큰 혁명(?)의 때였던 것 같다.
영역주권의 주장처럼 철학 분야에서는 그 영향력이 조금 드러나는 것 같다. 손봉호 교수님과 강영안 교수님은 기독교 안의 철학 분야에만이 아니라 한국철학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두 교수님 모두 기독교 대학 안에서 작업이 아니라 한 분은 서울대, 한 분은 서강대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다.
우종학 교수님은 단연 과학과 기독교 신앙 분야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유명하며 많은 도움을 주는 과학자이다. 또, 창조과학과의 싸움 역시 강렬히 해 짠하기도 하다. 어쨌던 우리 개신교에게 우종학이라는 분이 없었다면 참 힘들었겠다 싶다. 과학 분야에서도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 블랙홀 전문가 답게 전공 저널에 기고를 하고 인용도 많이 되는 분이다.
이런 두 분이 대담을 나눈다고 해서 기대가 많이 되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건 무신론자와 거친 토론을 기대했다. 예일과 하버드 베리타스포럼에서 톰 라이트와 셜리 케이건의 날선 논쟁처럼 한국에서도 그런 토론을 기대했다. 장대익 교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보니 그리 날카로운 분은 아닌듯하다. 그분도 독실한 신자였을 때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그 충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도킨스로 거듭났다. 그런 격철한 논쟁이 아니라 이번에는 두 그리스도인 철학자, 과학자가 존재와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용은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한 분들이라면 내용이 재미있을 듯하다. 정리도 잘 하셔서 이번 수련회 강의를 할 때 많이 참조할 듯하다. 뭐, 과학이 말할 수 있는 범위와 형이상학적 영역. 그리고 무신론보다 유신론이 훨씬 더 이 세상의 설명에 부합하다는 논증을 두 분이 한다. 과학자의 눈으로, 철학자의 눈으로 이 눈을 보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내가 대학생일 때에 비해 요즘은 유신론 vs 무신론 논쟁도 그리 관심이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기독교가 어떤 변증을 하는지 살펴보기 괜찮은 책이 아닐까 싶다.
“물질이 인간을 만들어 냈다면 그 물질은 누가 만들었는가? 무신론자들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합니다. 물질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했다는 답변은 신이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한다는 답변과 비교할 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최소한 과학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71-72)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우리의 언어 능력이나 문화를 창출해 내는 능력 자체를 만들어 내는 데에 기여한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무도 이런 능력을 소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적 능력을 발휘해서 그것들로부터 무엇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반실재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여전히 설명을 요구하는 것들이라 하겠습니다.”(113)
“그렇게 되면 우리 각자는 동일한 세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 살게 됩니다. 트럼프는 트럼프대로 자신의 관점과 자신의 세계를 가지게 될 것이고, 김정은은 김정은대로 자신의 관점과 자신의 세계를 가지게 될 것이며, 스티븐 호킹과 마더 테레사 역시 각자의 관점과 세계를 가지고 살 것입니다. 어떤 세계가 참된 세계이며 참된 것이 무엇인지 한 개인을 넘어 객관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사라집니다.”(1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