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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성경신학

[책리뷰] 제임스 던 - 예수, 바울, 복음[새물결플러스 I 예수의 선포로부터 바울의 복음까지 I 복음서 I 바울서신]

by 카리안zz 202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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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학계의 거장 제임스 던. 작년에 돌아가셨다. 영미권 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약학계에 탑 티어 저널로 JSNT, NovT, NTS, ZNW를 곱는다. 국내에 신진학자 중에 한 분은 저 네 저널에 다 기고를 했고, 또 한 분은 저 중 두 저널에 기고를 하셨다. 나는 몇 년 전 두 저널에 기고하신 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여러 대화 중에 자신은 20세기 최고의 신약학자로 헹엘과 제임스 던을 꼽더라. 제임스 던은 S급 학자라고. 나는 보컴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A급이라고 하셨다. 라이트는? ... 메인스트림에서도 그렇게... 김세윤 교수님도... 근데 이 말들을 탑 티어 네 곳에 기고한 분도 강의 중에 똑같이 말씀하시더라. 독일에서 신학 공부하고 계신 분과 연락을 하는데 천하의 독일에서도 던은 인정한다고 했다. 독일식 방법론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연구결과를 낸다고 했던가. 근데 어쨌든, 한국에서 월드클래스 학자는 김세윤 말고는 없다. 인용수를 보라. 물론, 박사학위가 빵 터졌고, 그 뒤로 빵빵 터트리면 학자의 티어가 높아지는 거 같은데 그 뒤로는 없으시단다. 그건 바로 총신에서 10년 있었기 때문이지! 10년의 세월을 총신이라는 곳에서 낭비하지 않으셨다면...? 모르겠다ㅎㅎ. 아마도 WBC의 데살로니가전후서 주석은 쓰셨겠지ㅋㅋ. 몇 년째 안나오고 있습니까?!

 

잡설은 여기까지하고. 천하의 던의 주저 시리즈는 아니지만 괜찮은 연구서적을 읽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19페이지부터 개인적 소개를 한다. 던은 10대때부터 성경 덕질을 하여서 이런 대학자가 되었구나 싶..?ㅋㅋ 농담이고, 여태까지 자신의 연구들의 간략한 소개를 한 것이다. 샌더스, , 라이트 바울의 새관점 학파로 이름을 날리고(소개에 이런 내용은 없음ㅋ) 어떤 연구를 했는지 책과 내용을 잘 소개해준다. (하나 잡설을 더하면 나는 갈라디아서의 율법의 행위가 던이 말한 할례, 안식일, 정결법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겠다. 나중에 갈라디아서 공부하면서 잘 정리해보려 한다.)

 

책 제목에서부터 신학을 전공하신 분들은 감을 잡을 것다. 목차를 보면 더 그렇다. “복음서는 과연 신뢰할 만할까?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40년 정도의 연대 차이가 나는데 신뢰할만 하다고?”, “네 복음서의 내용 중에 같은 사건을 왜 이렇게 다르게 말할까?”, “요한복음은 내용이 너무 다른데 이건 어떻게?” 던은 구슬전승의 형태를 말하며 오늘날 같은 문자 중심의 세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위의 질문들의 대답은 넘 길어서 나중에 블로그에 정리를 할까 싶다.

 

바울이 기독교를 창시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울의 글과 예수님의 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했는데 바울은 예수님을 설파한다. 이 간극을 두고 누구는 바울이 예수교를 창시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던은 어떻게 볼까? 던은 예수님의 말과 바울의 말이 이어진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의 사역 안에서 그리고 그 사역을 통해 활동하는 하나님의 왕적 통치라는 예수의 기쁜 소식은 지금 여기에 있는 죄인들을 위한 은혜라는 바울의 메시지의 가까운 선례였다. 이스라엘의 죄인들을 위한 예수의 기쁜 소식은 이방의 죄인들을 향한 바울의 복음을 위한 직접적 선례요 영감이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예수의 기쁜 소식은 바울이 그의 교회들로 하여금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동일하게 우선시하도록 하는 데 반영되었다.

따라서 바울이 구원의 과정 속에 있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불편한 긴장을 유지하는 것도 예수가 유지한 하나님 나라의 긴장을 상당히 선명하게 반영한다. 곧 현재 활동하는 하나님 나라와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 사이의 긴장이다. 그리고 성령을 성취된 희망의 신호로서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더 풍요로운 유산의 보증으로서 이해하는 바울의 생각은 예수의 주장, 곧 자신의 사역을 위해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주장을 덜 선명하다 할지라도 동일하게 반영한다.

그리고 특히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제일 규범으로서 율법에 대한 예수의 차별적 태도 및 사랑의 계명을 택한 예수의 선택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유사한 태도와, 율법 전체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가장 잘 요약되고 성취된다는 바울의 주장을 위한 명확한 선례다.”(227-228)

 

던의 제5장 결론인데 이 내용을 풍성히 전개하는데 번뜩이는 통찰을 느꼈다.

 

이외에도 바울에 대한 설명에서도 특히, “9장 교회-바울의 삼위일체론적 교회론이 특히 와닿았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전체주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옛날에 종종하던 생각이었다. 교회가 하나되어야 한다고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러나 던의 이 챕터를 읽자 큰 질문이 해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의 모임인 교회다. “하나님과 인류 사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인종들과 문화들 사이의 화해가 발생하는 곳으로서의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기독교의 실패는 분명히 너무 오랫동안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현존을 무력하게 했고 불구로 만들었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교제가 있는 곳이다. “카리스마 공동체로서 성령이 수여한 은혜를 통해 기능하는 몸으로서 작용해야 한다.”(340)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의 모인 자들. 곧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몸의 사람들이 신체의 장기들처럼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배운게 참 많은 책이었다! 신학생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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