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고난주간에 맞춰 2주 전에 다 읽을 예정이었다. 무려 나의 게으름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지금 다 읽었다. 이틀 동안 부스터 모드였는데 2주 전에 그랬다면 이미 다 읽었을 텐데ㅠ 내년에는 플레밍 러틀리지의 책 아니면 보컴의 책을 읽고 싶은데 그때는 이런 게으름이 없도록 간절히 바래본다!
고난주간에 맞춰서 읽은 책이었지만 책의 내용이 내가 준비하고 있는 설교에 아주 적합한 내용이었기에 아주 흡족하게 읽었다. 자기중심적 사랑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하는, 자기만 아는(물론, 옆의 사람의 형편을 생각해 줄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하는,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게 있냐고 먼저 묻는다. 정유정의 진단처럼 나 또한 그런 세상의 기류를 느낀다. 욜로가 거슬렸던 이유가 이런 거라면 조금 오버일까. 이미 우리는 학교라는 곳에서 그런 정신을 배워서 나온다. 더더욱 수시비율이 70%가 되었기에 10번의 시험을 통해 옆자리 친구들 경쟁자로 명확하게 보이게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수능이 주를 이룰 때는 가상의 경쟁자가 이제는 눈 앞에 옆자리 친구로 정확히 보인다(물론, 이렇다고 수능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제 옆자리 친구도 밟아야 하는 대상이 된다. 가뜩이나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옆사람에게 뒤처지기 않기 위해 경쟁하는 세상인데 올라오는 젊은이들은 얼마나 더욱 절실할까. IMF와 금융위기를 거친 뒤 우리는 당연히 자신의 생존이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남의 형편을 생각해주라는 말이 얼마나 너무한 말인가. 기독교는 그걸 넘어서 남을 위해 희생하라고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반 세상적인 가르침 아닐까. 마이클 고먼은 이 십자가를 외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 말한다.
빌립보서 2장 6-11절 말씀은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그리스도 찬송시로 알려져 있다. 고먼은 이 시를 요약을 해서
[~인 지위]인데도, [이기심]을 부리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낮춤/종이 됨]
으로 요약을 한다. 바울은 이 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는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쓸 때 그랬다. 자신은 사도의 권리로 충분히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했다. 스스로 일을 했는데 그 일이 바로 천막 만드는 일이다. 보통은 노예들이나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자유인이 하던 일이었다(300). 천한 일이다. 바울은 스스로 낮췄다. 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자 그랬다. 이게 바로 고전 9장의 내용이다. 빌레몬에게 대할 때도 이런 태도였다.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이 겪은 비참한 체험들을 말할 때가 있다. “세계의 구경거리”, “끄트머리”, “죽이기로 작정된 자”,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말을 한다. 만물의 찌꺼기. 세상의 쓰레기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고전 4장 15절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고후 5장 15) 때문이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충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겹쳐서 살았다. 바울은 공동체에게도 십자가를 본받을 것을 말한다. 성찬의 문제에서도, 제사음식의 문제에서도, 은사 사용의 문제에서 등등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이기심을 버리며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한다.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에 맞춰서 살아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도(갈 2:20), 몸을 산 제물로(롬 12:1) 드리라는 말도 이 그리스도 이야기에 겹쳐서 이야기한 것이다.
바울의 시대에 비록 오늘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히 지극히 높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힘과 있어보임직한 것을 추종했기에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고 낮아진다는 것이 말도 안 되었다. 십자가라는 혐오스럽고, 공포의 사형도구를 강조하면서까지 외쳤는데 오늘 우리라고 세상이 반대하는 메시지를 외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부목사님께서 박사학위를 하고 계신데 영어를 잘하셔서 굽타의 팟캐스트를 듣는다고 하셨다. 그때 굽타가 이 책을 굉장한 역작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특히 5장에 바울의 십자가의 이야기를 말할 때 내러티브 패턴들을 정리하고, 이 패턴들이 믿음, 사랑, 능력, 소망을 이야기한다고 분석을 해주는데 굉장히 명쾌했다. 그리고 네 가지로 심층적으로 각 챕터를 써나갔다. 믿음 부분에 피스티스 크리스투 논쟁을 말하고 본인은 주격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빌 2:8에서 죽기까지 ‘복종’했다는 걸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연결시키던데 글쎄다. 왜 다른 단어를 썼는지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냥 넘어가더라.
여튼, 피스티스 논쟁이나, 4장에 삼위일체 이야기나 각 장들에서 참으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설교각을 보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많이 얻게 되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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