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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설교와 목회자

[책리뷰] 디트리히 본회퍼, 카를 바르트, 헬무트 골비처, 게르하르트 에벨링, 루돌프 불트만/딘 G. 스트라우드 편집 -「역사의 그늘에 서서 - 히틀러 치하의 독일 신학자들의 설교」[감은사 I ..

by 카리안zz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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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잘 안 듣지만 좋은 설교문은 찾아서 읽기도 한다. 프레드릭 비크너의 <어둠 속의 비밀>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읽다가 안 읽다가 그렇게 몇 년이 넘었지만 설교문인지라 손이 갈 때마다 읽곤 한다. 그러다 최근 감은사에서 이 책이 출판된다는 걸 봤다. 바로 구입ㄱㄱ.

남의 설교를 잘 듣질 않는다. 담임 목사님 설교와 부목사님 설교 말고는 거의 안 듣는다. , 담임 목사님 설교가 전국구급 설교인 면도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전에 사역했던 교회 담임 목사님들이 설교를 했을 때도 남의 설교를 안 들었다. , 그땐 사역했던 교회 설교도 잘 안 들었...ㅜ 신학을 전공한 후로는 목사님들 설교를 거의 안 듣는 것 같았다.

가끔 들을 때도 있다. 내가 준비한 본문과 겹칠 때다. 저분은 어떻게 설교를 준비했을까? 기대감으로 듣는다. 신대원 채플 때 남아공에서 오신 목사님의 설교가 참 벅찼다. 당시 나도 탕자를 주제로 설교를 했었는데 남아공 목사님도 그 본문이었다. ‘! 저렇게 설교를 하다니 남아공의 상황에 맞춰 울린 설교여서 참으로 은혜되는 설교였다.

 

본회퍼, 바르트, 불트만, 골비처, 에벨링의 설교라니!(사실 뒤에 두 분은 이름만 들었..) 히틀러가 다스리던 때에 과연 이들은 어떤 설교를 했을까?

 

책에는 설교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나치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 히틀러 통치 상황을 말해준다. 책의 절반이 여기에 대한 내용이다.

 

“히틀러를 구세주이자 새로운 그리스도로 믿는 확고한 믿음뿐 아니라 일종의 성경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 새로운 독일의 거룩한 성경이었다. ... 나치즘을 새로운 신앙으로 언급하는 수많은 사례가 나온다.”(38-9)

 

“그러므로 교회를 떠났거나 혹은 전혀 속하지 않았던 독일인이라 할지라도 믿음을 요구하는 종교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이 신념 체계에서 나치즘은 기독교의 훌륭한 장점들을 우수한 나치의 자질들로 대체했다: 약함보다 강함, 겸손보다 지배, 사랑보다 혐오, 그리스도를 의존하기보다 히틀러 의존함, 영원에 대한 감각이나 성례보다 혈통, 인종, 나라를 언급함 등등. 기독교는 고대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라디오, 신문, 극장, 학교, 대학, 남자, 여자, 어린이 할 것 없이 제국 전역에 매일 히틀러가 도래했다는 복음이 선포됐다. 이 새로운 복음은 현대적이고 과학적이었으며 호소력이 짙었다.”(40)

 

“나치의 핵심 사유는 ‘폴크’(Volk)라는 단어에 있다. ... 나치 언어에서 ‘폴크’는 인종에 뿌리를 두내리고 있으며 국가들, 사회들, 집단들을 식별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 즉, 나치는 세계를 인종적으로만 보았다.”(44)

 

“당연하게도 그러한 인종적 견해를 가진 세계는 기독교를 약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었고, 심지어 나치의 원칙과 목적에 적대적인 것처럼 보이게 했으며, 기독교는 나치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방해하는 것, 친밀하기보다는 의심스러운 것, 게르만보다는 이방에 가까운 것이 됐다.”(45)

 

“히틀러의 생각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이야기해 줄 유대인 친구를 가진 독일인은 사실상 극소수였다. ... 유대인 인구는 독일 인구의 1%도 되지 않았기에, 개인적으로 유대인에 대하여 아는 독일인은 거의 없었다. 인종 혐오는 왜곡과 고정관념에 먹이를 주었다.”(53)

 

“나치의 유대인, 약자, 정신질환자에 대한 살해는 결코 나치가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나치즘이 기독교의 미덕들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기독교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됐다. ... 이와 같이 기독교의 미덕들에 대한 공감이 없었던 분위기에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미덕들을 옹호하는 모든 설교는 그 자체로 나치의 존재 방식에 대한 도전이었다.”(61-2)

 

“그러나 비록 대다수 독일인이 급진적인 변화를 알아차리거나 반대하는 데 실패했지만, 몇몇 기독교인들은 이를 알아차리고 반대했다. 이러한 불복은 곧 고백 교회의 것으로 알려지게 된다.”(75)

 

“즉,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라 나치의 인종차별적인 법률이 독일에서 복음을 설교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81)

 

“신자들의 공동체를 정의했던 것은, 역사, 인종, 민족성이 아니라 바로 신약 성경이었다.”(84)

 

이러한 배경에서 고백교회가 등장한다. 그리스도가 참된 총통으로 말하는 설교자들이었다. 이것은 은연중에 히틀러가 총통이 아니라는 전복적인 선포였다(111). 히틀러가 총통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총통이라는 말은 감옥에 가겠다는 말이다. 나는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렇게 설교를 할 수 있었을까? 다행히 오늘날은 그리스도가 통치자라고 말해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이를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메시지 역시도 그저 지나가는 소리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할까? 시대가 담겨 있는 설교문을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본회퍼가 말했듯 설교는 보이는 성례라는 말이 가슴에 담긴다. 나 역시 설교보단 성찬에 강조점을 두었던 이유가 어쩌면 패배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설교가 성례라는 본회퍼의 말에 정신이 확 든다. 패잔병이 다시 총을 잡듯이.

 

인간, 혹은 인간의 성취나 승리로 시작하여 하나님에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이 계시로 우리에게 도달하신다.”(86) 바르트의 위로부터의 설교가 이런 상황에서 등장했던 걸까. 바르트로 인해 나치로 점령당한 독일 교회에 대항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것이 정통주의와 무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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