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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설교와 목회자

[책리뷰] 박윤만 - 그 틈에 서서(죠이북스)

by 카리안zz 2021.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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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2019년부터 하늘깊은샘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이제 3년차가 다 되어 간다. 여태 사역했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들은 제왕적 목회자셨다. 사실 이건 몇몇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다수 교회들이 그렇다. 그래서 혹자는 담임 목사님을 오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사역을 하다가 이 교회에서는 어색해지는 지점이 있다. 우리 교회에선 일을 할 땐 다 같이 한다. 물론 각자의 역할에 맞게 따로 일을 할 때가 있지만 공동적으로 일을 할 때면 그냥 다 같이 한다. 근데 문제는 몸쓰는 일을 담임 목사님이 제일 잘 한다는 게 좀 아쉽긴 하다. 특히나 현수막 달 때는 부역자들이 잘 못치기에 박목사님이 전담해서 치신다. 뭐 하여튼 교회에 작업할 것이 있으면 다같이 하는데 제일 잘하신다ㅋㅋ 일도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상호소통으로 의견교환이 이뤄진다. 나는 이제껏 2년 넘게 있으면서 권위주의라는 걸 느껴 보질 못했다. 오히려 예전 사역을 할 때 나와 그다지 나이가 차이가 안 나지만 그런 포스를 풍기는 분들은 더러 봤었다. 이런 걸 보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 좀 오버하자면 영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 분위기에 너무 익숙해지면 다음 교회에서 너무 힘들어 지는 거 아닌가 우스게 소리로 주변에 이야기하기도 한다. 
 담임 목사님의 주일 주 사역은 설교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다. 설교 후 오후에는 목장 모임을 하는데 아이들이 있어 목장 모임 진행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박목사님이 아이들을 우르르 이끌고 뒷산에 올라 놀아 준다. 들리는 말로 아이들이 담임 목사님과 산에 가서 놀고 내려와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교회를 너무너무 가고 싶어 한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지금 물이 다빠졌지만 유치부 사역 3년 정도했기에 아이들을 마음 얻는 것은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데 내가 박목사님은 못 이기겠다 느꼈다. 한때 유치부 아이들의 유재석이라고 불렸던 내가...ㅜ
 사역을 하다보니 담임 목사님이 학자보다는 목회자로 더 친근해졌다. 교인분들의 대소사가 있으면 가장 먼저 움직이신다. 홀로사시는 성도분이 몸이 아프셨는데 자가 치료를 하려 했다. 예전에 그렇게 해서 나은 적이 있어서다. 그런데 상태가 너무 안 좋았지만 고집이 쎄신 분이셔서 아무도 못 말리셨다. 그때 듣기론 밤에 경찰을 대동해 문을 뜯어서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셨다. 일을 마치니 새벽이었다고 얼핏 지나가다 들었다. 잘못했으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만큼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셨지만 참 다행이었다. 
 그외의 많은 일들에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비결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는 다니엘 기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혹 어떤 분들은 말한다. 박목사님은 스트레스를 기도로 푸신다고. 가까이서 보면 실로 그런 것같다. 그래서 우리교회 성도분들 모두 다니엘 기도에 집중하려하고 나 역시도 영성에 더욱 집중하려 한다. 

 

학자

 페친이신 분이 신약연구에 글을 기고했다는 걸 봤다. 관심있는 책을 서평한 것인데 보려고 다운받았다. 근데 낯익은 이름을 본다. 박.윤.만. '잉? 언제 또 논문을 기고하셨지?' 교회에서는 그런 얘기를 거의 안 하니깐 목회자로서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지. 이분은 학자이기도 하셨지. 목회로 바쁜데 논문까지 쓰시고 도대체 쉬는 날이 있으신가 싶었다ㅎㄷㄷ.  
 박윤만 목사님과는 학부에서 만났다. 2012년 편입을 했는데 신약학 교수님이셨다. 이때 참 많이 배웠다. 신약성경이 구술이 중심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이라는 것, 학부라서 깊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프레임 이론으로 유명한 레이코프(무려 9년 전인 2012년도이다!)와 언어학에 대해서, 예수의 생애, 지리학 등 많은 과목을 듣진 않았지만 그때의 수업이 나에겐 신학이 무엇인지, 특히 성경신학에 대해서 무엇인지 기초가 되었다. 당시 세계관이나 철학에 관심있었던 터에서 성경신학을 접하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에 집중하게 된 것같다. 그런 면에선 나는 합동측이 다른 어떤 교단보다 훨씬 강점이 있다고 본다. 

 학자로서의 박윤만 목사님 커리어는 무시하지 못한다. 스탠리 포터의 제자이며, 어렵다던 토론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그러나 내 생각엔 Brill에서 박사학위를 출판한게 가장 큰 영예가 아닐까 싶다. 신약학 대가의 제자, 명문학교에서 박사학위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거기에서 성경학자들은 자신의 박사 학위가 Brill이나 Mohr Siebeck에서 출판된다면 엄청난 영예이지 않을까 싶다. 해외학자들도 Brill, Mohr Siebeck, 옥스포드대학,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책이 출판되면 높은 업적이 된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Brill에서 나온 박윤만 목사님의 책은 제임스 던이 세계신약학회에 소개하기도 했다. 여튼, 해외도서관에 한국인 책이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티도 안 내시며 자신은 부족하다고 늘 겸손하신 모습을 보면 참 새삼스러워진다ㅜ

신약학 책을 읽다보면 사회학이나 역사적으로 분석을 많이 했지만 언어학을 방법론으로 삼는 건 잘 못봤다. 근래에 읽었던 조엘 그린의 <십자가와 구원의 문화적 이해>에서 은유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여기서 조지 레이코프가 각주에 인용되는데 이 책 뿐만 아니라 은유를 말할 때 조지 레이코프의 책을 인용하는 걸 대단히 많이 봤다. 그것말고는 언어학을 바탕으로 설명해주는 주석을 본 기억이 아직은 드물었다. 물론 내가 많이 읽어보질 못해서 그렇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그렇게 변화가 클까 싶다. 그래서 사회학과 역사학만큼 언어 역시도 단어의 뜻풀이를 넘어서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여튼, 앤서니 티슬턴이 철학적 방법론을 들고 작업을 하듯이 그의 제자인 스탠리 포터는 언어학을 방법론으로 두고 작업을 하는 듯하다. 그 연장선에 박윤만 목사님과 그 제자들이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 틈에 서서

정원사 하나님

 책 표지와 제목 모두 성도분들과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책은 설교들을(하나는 기고글) 엮어서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엮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처음 배웠던 것도 박목사님께였다. 연장선으로 톰 라이트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를 추천해주신 분도 박목사님이었다. 박목사님의 수업과 톰 라이트의 이야기들은 내 신앙의 기반을 완전히 바꿨다고 나는 자주 말하곤 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찬찬히 보려면 이 책을 보라고 나는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사역자들은 번뜩이는 챕터들이 군데군데 있을 것이다. 특히 나는 '정원사 하나님' 편이 가장 인상깊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인 표현'(은유) 중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정원사 하나님'이다. 첫 시작은 창세기 2장에 나온다. 하나님은 "동산"을 창설하신다(창 2:8).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셨지만, 2장에서는 정원을 만드신다. "천지"는 동산을 포함하는 개념인데도 하나님이 작은 동산을 만드신 분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왜일까?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천지를 정원 가꾸듯 손질하고 돌보실 것이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런 뜻은 창세기 1-2장에 두 번 등장하는 사람 창조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장에서 하나님 사람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려 주지만, 2장에서 다시 하나님은 '흙을 일구어 농사짓듯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다]"(창 2:7). 농부가 씨를 땅에 뿌려 생명을 일구듯 하나님은 생명을 땅에서 빚어내신 것이다.  (108)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씨로 비유되었고 출애굽때에도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에서 나는 놀라웠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출 15장 17절)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는 뿌린 씨가 열매 맺기를 기대하신다"(112). 포도밭 비유로 이걸 연결하였다. 

포도밭 비유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뿌리 뽑혀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땅에 심겨진 후 포도밭과 포도나무로 비유된 것은 하나님의 정원 수립 계획이 이제 구체적인 단계에 접어 들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스라엘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정원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열매를 맛보게 하려는 하나님의 숲 계획이 이제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112)

 

 이후의 결말은 직접 책을 읽어본다면 그 의미가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

 

 아브라함 카이퍼의 유명한 말이 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한 치도 없습니다"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지만 그것을 성경을 소스로 두어서 말을 잘 하진 않았다. 나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예시로 자주 들었지만 성경을 통해서 그것을 사유해 볼 생각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이 책에서 그것을 배운다. 

왕은 왕궁에, 제사장과 서기관은 성전에 머물면서 자신들에게 찾아오는 사람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그러하기에 예수께서 떠돌아다니는 삶의 방식을 택하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를 이해하기보다 오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분이 그러한 삶의 방식을 거부하지 않으신 것은 일정한 거주지 없는 삶의 방식을 거부하지 않으신 것은 일정한 거주지 없는 삶의 방식이야말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시는 방식에 일치한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떠돌이 삶을 통해 드러난 대로 하나님 나라는 특정 장소와 영역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곧 모든 곳에서 드러나고 경험될 수 있는 실체다. 적어도 예수를 통해 도래하게 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고 체험되는 영역은 높이 솟은 고립된 왕궁이나 세속과 분리된 성전이 아닌 일반 백성의 삶 한복판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하나님 나라 선포자가 한곳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영역과 공간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장소여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려면 어떤 특정 지역으로 와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께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바다, 해변, 산, 길, 들, 광야, 회당, 예루살렘 성전 등 모든 곳으로 돌아다니신 것은 모든 곳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곳임을 말해 주시기 위해서였다. (167)

 

 '하나님 나라의 담지자, 예수의 삶의 자리'의 편에서 이것을 배웠다. 

 

그외

 대표적인 것이 이 둘이지 이 외에도 깊이 우러내는 맛이 있다. 마가복음 4장에서 비유들을 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해서 본다든지(이건 저번 설교에서 한 번 들어서 새롭진 않았다ㅋ) "빛과 어둠의 만남"편이라던지 나는 대체적으로 2부가 가장 좋았다. 그러나 적용편인 3부 역시도 의미가 있다. 특히 출산을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신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은 신선했다. 즉, 출산은 생명인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미래 밥벌이라든가 경제적 구조라든가 그러한 틀로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이것도 설교로 한 번 해주셨기에 새로웠던 것은 아니었다ㅋ) 환경 역시도 우리 교회가 강조하는 지점이기에 3부를 읽으며 목회의 지향점을 다시금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가면서

 아쉬웠던 것은 2년 넘게 들었던 설교에서 기억에 남는 설교들이 없어서 였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등으로 한 본문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설교들 역시도 책으로 나중에 엮었으면 좋겠다.  당장에 오늘 설교 역시도 그렇다. 씨 뿌리는 비유를 보고 길가에 앉았던 바디메오를 연결하니 큰 배움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 밭들 속으로 들어가신 예수님. 비유가 이렇게 연결되다니. 매번 큰 가르침에 성경의 깊은 우물을 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올해 성경만을 주로 보려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있다. 반면교사의 배움이 아니라 더욱 행복한 이 시간을 만킥하며 끝을 생각하지 않고 이때를 즐기고 싶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목회자, 뛰어난 학자, 한 명의 신앙 선배이시자 예수의 길을 가는 것이 몸소 무엇인지 보여주셔서 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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