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하다는 현실을 여러 자료들로 알려준 좋은 책. 그러나 그 원인을 한 정치적 세력에 후드려 치려는 면에선 동의하지 않는다. 386(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이었던, 지금은 586, 50대인 민주화 운동권들. <추월의 시대>에서도 지적했지만 586에 대한 정의가 어설프다.
“바야흐로 386의 시대라고들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왜 386세대가 권력의 중추에 진입했는데 언론·학계·관계·재계가 덩달아 들썩이는가? 그것은 그들의 ‘동년배’가, 그들의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쥐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권력도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33)
50대 기득권이나 권력층이라고 하면 이해를 하겠지만 586이라는 민주화 운동권들을 끌어들인 주장에는 근거가 많이 빈약해 보인다. 본인이 586세대이니 같은 세대에게 우리 민주화 운동을 했을 때 주장했던 것처럼 힘을 가진 지금 그 주장을 실현해보자는 자기 비판적이며 설득하려는 말로 나는 읽었다. 하지만 586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 젊은 사람들에겐 이 책은 586을 후드려 패는 책이 되고 만다. KBS에서 이 책을 중점으로 다큐를 만들었는데 그 댓글을 보라. 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게 586때문이라는 만물 586설이 된다. 그 논의는 ‘어! 지금 정권이 586 정권인데 이놈의 정권 때문에 세상이 이 모양 이꼴’이라는 세계관이 형성된다.
이 책에서는 불평등의 원인으로 ‘연공제’를 꼽는데 대기업을 다니는 집사님께 ‘연공제’에 대해 물어봤다. 요즘도 기업에서 연공제를 하냐고. 요즘은 연공제를 안 한단다. 단지 지금의 60년대생이 연공제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사님은 60년대생 분들 역시도 존중을 하더라. 후드려 패면 속은 시원하겠지. 기대수명이 늘었기에 은퇴 후의 삶을 그들 역시 걱정하지 않겠나. 먹여 살릴 가족도 있고.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살피자는 집사님의 주장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서로의 입장들이 있는데 한쪽을 악마화하며 후드려 패는 건 정말 동의하지 못한다. 물론, 이 책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고, 이 책을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586이라는 정치집단의 용어를 버리고 60년대생 기득권 세력이라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586은 너무 눈에 들어오거든. 이 범위면 나경원 전의원도 포함되는 것 아닌가?
최근 KBS에서 청년세대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이 조사도 20대들을 패기에 좋은 자료였다. 하지만 몇 부분들은 정말이지 오해할 소지가 있는데 후드려 패는데 집중해서 ‘요즘 20대들이 문제야’로 이야기하더라. 물론, 튀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후드려 팬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서로 패기 좋은 자료들이 등장할 때면 공격과 또 공격이 이어지지 않을까.
여튼, 그럼에도 이 책에서 배운 것은 많다. 노동시장에서 상층-중층-하층을 나누는 기준을 1) 기업 조직이 대규모인가 아닌가, 2) 고용 지위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3) 노조가 존재하는가 여부를 결정한단다. 하층은 46%, 중층은 30%정도, 상층은 20%정도로 본다. 대기업 공채 이야기는 실상 상위 20%의 이야기고 나머지 80%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왜 20%의 이야기가 이렇게 집중되는걸까? 대다수 80%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
농업 중심에서 유교 사상이 먹혔고, 산업화 세대는 그 세계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이 농업 시스템을 산업으로 이양되었다는 이철승의 주장은 흥미로웠다. 어른이 중요했던 이유는 과학적인 데이터가 없었기에 어른들의 경험이 가장 중요했다. 농사를 지어야 하니. 이 동아시아 벼농사는 협업 속에서 경쟁 시스템이 작동한다. 비교와 질시 문화가 여기에서 탄생한다. “함께 일했건만 나의 수확량이 더 적은 것을 확인할 때 부아가 치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이 상호 의존적인 경쟁과 질시의 문화를 벗어날 출구가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다음 해가 되면 ... 협업은 다시 시작되고, 협업 속의 경쟁 사이클은 또 돌아간다. 당연히 경쟁은 격화될 것이다.”(153-4)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을 산업화 세대에 잘 스며든 이유를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본다. 가장 세대 내 불평등이 심한 이 세대에서 경쟁을 내면화 했기에 큰 말이 나오지 않는 것 아닐까. 노인 자살률이 어마한 대한민국에서 별 불만없이, 아니 그럴 힘도 없으시겠지, 죽어가는 것은 이런 자기 실패의 내면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산업화 세대가 뿌려놓은 불평등의 씨앗이 586세대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더욱 불평등하게. IMF로 산업화 세대가 잘려나간 자리에 586세대가 자리 잡고 오래 해먹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특히 피해받는 세대가 청년과 여성이다. 그 교집합인 청년 여성이 가장 힘든 세대일 것이다. 앞서 책들에서도 계속 말한 것이지만 ‘좁아진 진입로와 격화된 경쟁’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청년들의 삶은 고단하다. 거기에다가 30대가 되면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의 삶이 있기에 20대 여성들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결혼과 육아 후 돌아오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이다. 저출산 재앙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청년 남성들은 왜 청년 여성들과 싸우고 있나? 제발 같은 처지이니 함께 힘을 내서 싸웠으면.
“미래학자 토플러는 이러한 한국의 교육제도를 보고 기겁을 했다. 다시는 써먹지 못할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을 보는 데 하루 열다섯 시간씩 16년을 낭비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그는 꽤 정확하게 동양의 앎의 체계를 꿰뚫어 봤지만, 동양 관료제의 깊은 구조까지는 보지 못했다. 16년의 세월은 낭비가 이날, 이후 40년의 신분과 수입을 보장하고, 가문의 영광 그리고 관료제 권력으로 진입하기 위해 한 가족과 가문 전체가 (젊은) 세대를 동원하고 준비시켜 건 ‘판돈’이다.”(289-90)
그럼에도 요즘 임금 피크제, 직무제니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좋은 시그널인 것 같다. 정치인들은 이 꼬여있는 문제를 푸는 사람들인데 부디 지혜로운 해법을 이뤄내길 바란다. 이런 발버둥없이 한쪽 세력을 혐오로 이끌어 내려는 정치인들과 집단은 어서 빨리 내려오길 바란다. 특히 모 정치인의 열풍이 걱정되는 이유는 이런 혐오의 정서를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나오는 혐오(?)인데 그걸 니가 해결해야지 덩달아 혐오해서 힘을 받으면 좋냐. 그럼에도 더 나쁜 놈들이 모여 있는 그곳에 그정도의 사람이 있어 그정도로 정리해주면 차라리 나을까 기대하는 나도 참 요상 요즘이다.
이 책과 세트로 <추월의 시대>를 함께 보면 참 좋을 것이다. 이 책이 제기한 문제를 <추월의 시대>에서는 나름의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불평등의 세대>를 먼저 보고 <추월의 시대>를 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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