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세대는 청년기에 빈곤과 전쟁, 산업화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586세대는 민주화라는 과제로 싸웠으며 40대들은 문화적 풍요를 누렸으나 사회에 갓 진출했을 때 IMF 사태를 맞았다. 이명박정부에서 희망버스를 탔던 30대들은 보수 정권 아래에서 심해지는 불평등을 겪으며 혐오와 체념에 지친 세대가 되었다. 오늘의 20대들은 어떤가. 그들은 IMF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쟁 시스템 속에서 자랐다. 동시에 촛불혁명이라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험을 한 세대들이다.”(15)
20대 젊은 친구들이 분노하고 있다. 공정하지 않다!고. 특히 남성 청년들은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데 정부가 북한문제에 몰두하고 페미니즘에 편향적인 정책만 내놓는다고 생각하고 반응한다(17). 즉, 정작 중요한 일은 하지 않는다고 분노한다. 물론, 여성 입장에선 이 정부가 페미니즘 편향적인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면 또 다른 분노를 쏟을 것이다. 부동산은 확실히 실패를 했고 여성을 위한 정책에는 여성들의 지지를 못받고 젊은 남성들은 여성을 위한 정책을 낸다고 비판한다. 이 사태에 대해선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봐야겠다. 북한 문제는 근 미래를 보고 하는 일이데 만약 나중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왜 진작에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물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 하기 위하거나 이익을 위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무언가 해야 한다. 그게 복잡한 북한문제다. 그러나 이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젊은 이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정부와 여당은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민족주의에 입각해서 밀어부쳤다. 그게 남북단일화 팀에서 불거져 나왔다고 본다. 단일화 팀이 되면서 밀려난 선수들은 어떻게 되냐고? 공정하지 않다고 말이다.
저자들은 20대 청년들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라고 말한다(이 내용은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에서 더 깊게 논의하는데 그때 이야기를 해보겠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출에 허덕이며 취업준비를 하는 세대. 이건 30대인 우리 세대도 비슷하지만 그 차이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불평등의 세대> 리뷰할 때 내용이 나올 것 같다. 여튼, 지금의 20대는 어떤 세계를 살아내고 있는가?
이들은 IMF이후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시절에 성장기를 보냈다. 두 금융위기가 우리 사회에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한국 사회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평생직장보다 상시해고가 일상이 된 모습,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는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야 하고, 끝없이 긴 경쟁의 줄에 서야”(27)한다는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경쟁을 아비투스한 이들에겐 불안 당연한 열매다. 그러니 믿을 건 나밖에 없다. 그래서 ‘업적주의’가 등장한단다. 시간과 돈을 들여 너무나 소중한 내 노력과 남의 노력 사이에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에서 그렇다. 업적주의란 신분, 출신, 가문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지위나 임금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이다. 이게 위배되었을 때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임승차를 극혐한다. 서울교통공사나 인천국 사태가 그렇다. 물론, 사실관계로 들어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처음에는 사실관계 파악을 하지 않고 분노하는 이들에게 돌을 던졌지만 이내 생각을 고치고 왜 이들은 사실 중요와 상관없이 분노할까로 나아갔다. 남이 지금 어떤 처지이든 이해해줄 여유가 이 세대에는 없다고 결론을 냈다.
“20대의 공정함을 바라볼 때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과거의 사회적 통념으로 이들의 행동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를 개인이 희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들 세대에는 거의 없다. 그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봐온 사회란 각 개인에게 ‘삶은 네가 알아서 챙겨라’고 말해왔다. 각 개인을 경쟁으로 내몰기만 할 뿐,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보호받는 경험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강제적으로 군복무까지 해야 한다면 더 분노할 수밖에 없다”(43)
이런 와중에 조부모와 부모의 재력에 따라 대학도, 직장도 결정되는 것을 보는데(더욱 자세한 건 <불평등의 세대>에서) 조국사태가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다(나는 조국사태를 검찰권 남용과 구조적 세습을 따로 본다. 후자에선 본인이 사과를 했듯이 한국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도 없이 개혁적인 말을 내뱉은 이에게 화살이 돌아온 것). 내로남불이다. 과거 부동산에 집작하던 이들을 보수로 규정하고 비판했던 진보인사들이 정작 그렇게 많은 대출로 강남아파트를 사서 건물주가 되려 한 모습에서 더욱더 내로남불은 커진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이들에게 이명박근혜 때의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역사의식이 없다는 비판을 한다면 20대 남자들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분노한 이들에게 기름을 끼얹는 것이다.
자, 이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집을 사기가 너무 어려워진 이 세대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지금 열심히 노력해서 안정적인 게 불확실하다면 당장에 ‘지금’에 눈을 돌릴 것이다. 욜로와 소확행의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이 부분은 임명묵의 <K-를 생각하다>가 더 깊게 설명한다). 비합리적인 소비이지만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볼 때는 순간의 쾌락을 지향하는 소비주의적 생활 풍조가 더 합리적이다. 결혼, 집, 출산과 같은 장기 계획은 빚더미의 지름길이니깐.
이쯤에서 젠더갈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젠더갈등은 불평등 사회라는 배경에서 탄생했고, 20대들을 중심으로 과열되었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 담론들이 한국 사회, 특히 20대들이 겪고 있는 불공정과 불평등에 집중하지 못하고, 성평등의 문제를 ‘남성이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는 방식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잃어버린 20대 남성에게 “남자로서 더 많은 자원을 갖고 있고, 여성을 차별하고 착취한다고” 말하면, 이들은 쉽게 동의할 리 없다. ... 무엇보다 20대들은 왜 사회적 책임을 ‘개인 윤리’에 묻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돈 있고 힘 있는 놈들은 내버려두고, 만만한 자신들만 두들겨 패는 것 같아 억울하기만 하다.”(73) 젠더갈등의 이면에는 20대 남자들의 억울함이 있다.
20대 남자들은 남아선호사상이 해체되던 시기에 태어났다. 30대 중반인 나는 그래도 여성이 우리보다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시각이 있는 세대다.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정서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들은 매우 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세대다. 당장에 봐도 2018년 ‘가사분담을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20대 남자들이 80%나 동의했다. 여성은 83%. 10년 전 2008년도 20대 남자들은 44%였고 여성은 61%인걸 봤을 때 평등의식이 가장 높은 세대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데 “엉덩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남자아이들에게 유독 가혹했던 체벌, 체육시간 전 옷 갈아입을 장소가 부족하면 남학생들만 더러운 화장실이나 창고에서 체육복을 갈아입게 했던 일,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후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고민할 때 남자가 ‘그깟 걸 가지고 징징댄다’며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 등등. 결정적으로 작가는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2년가량 짊어져야 했던 병역의무를 지적한다. 이는 젊은 남자 세대에게 심각하게 느껴지는 문제이지만, 정작 기성사회는 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폄하한다.”(93). 이걸 이중구속 상태라고 하는데 사회는 여전히 남자라는 것에 책임감을 주는데 교육을 받을 때 남자나 여자나 평등하단 교육을 받으니 20대 남자들의 내면에 분노가 채워지는 건 당연한 듯 보인다.
여기에서 불을 붙이는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2018년 혜화역 시위다. “워마드에서는 여성 몰카를 찍는 남성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남성 몰카를 찍은 여성에게만 가혹하다며 혜화역에서 몰카 사건의 범인을 두둔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에 대해 여성계와 기성언론이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자,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발이 일었다. 몰카 범인이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죄를 옹호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원칙으로 삼아온 페미니즘이 그 원칙을 저버리고 ‘여성 이기주의’를 드러냈을 때, 왜 이에 대해서 기성세대나 주류사회는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느냐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으 젠더 담론이 왜 젊은 여성의 ‘젠더 감수성’에마 초점을 맞추느냐는 항의이기도 했다. 물론 가부장제와 성차별을 반대하는 데 여성들의 주장을 더 많이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다. 하지만 성평등 사회에서 절반의 몫을 담당할 미래세대인 남성들을 담론에서 소외시키고, 잠정적 가해자로만 취급하는 것은 문제다.”(81-82)
미러링이라는 명목으로 남성혐오 단어를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성차별이라는 것이 젊은 남성들의 주장이다. 누구보다도 예민한 젠더 감수성을 가진 이 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일베가 아닌 일반 남성들에게까지 남성비하적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메갈리아과 워마드를 두둔하는 여성운동가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83)이다. (기독교는 전광훈과 거리를 둬야 하듯이 페미니즘도 그들과 거리를 둬야하는 것 아닐까?) 이러니 젊은 남성들의 눈에 지금의 페미니즘 담론은 가부장제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젊은 남성들에게 죄의식과 잠재적 가해자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 드는 대표적인 불공정 담론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확실한건 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청년과 여성이다. 그 교집합인 젊은 여성이 가장 큰 피해자다. 그러니 지금 가장 큰 피해자와 그 다음 피해자가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20대 남성들이 울분에 차서 이 세상이 내가 만든게 아니라 기성세대 당신들이 만든 문젠데 왜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느냐고 항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좀더 확실히 계속해서 기성세대에거 쏟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남녀를 갈라치기 하더라도 그 말에 속지 말도록.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에서 확실히 기성세대의 문제를 집어 낸다. 그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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