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좀 넘었을까?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었다. 당시 대표적 지성인의 회심이라는 거대한 타이틀로 홍보를 대대적으로 했다. 물론, 난 지금도 이어령 선생님이 시대의 지성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분도 아니시다. 나에겐 박학다식한 분이시다.
그때 이어령을 알게 되었고, 양화진 문화원이라는 곳에서 이어령 선생님의 강연이 이어졌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참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이 책에서도 그때 강연의 이야기들이 제법 나와서 많이 반가웠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이 나에겐 많이 다가왔다. 마지막이라니. 그러고보니 나이가 참 많으신데 나는 영상 속 정정했던 이어령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런데 최근의 사진을 보니 살이 훌쩍 빠지신 모습이더라. 아, 정말 마지막이겠구나. 그리고 올해 2월 26일 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화진 문화원에서 이어령의 강의가 참 좋았다. 유튜브도, 팟캐스트도 접하지 않았던 시기라서 더욱 그랬나 싶다. 그중에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강연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강의였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한 대목인 걸로 기억한다. 신부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무수히 많이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죄없는 아이들을 왜 죽이십니까라고. 그러더니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그럼 내 아들은 죄가 있어서 죽었냐?”
내 기억으론 이 대목으로 인해 “예수, 고통의 중심에 서다”라는 내 설교를 완성할 수 있었다. 선생도 고통의 중심에 서신 분이셨다. 전쟁 통에 죽어가던 사람들을 보며 신은 없다며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딸의 삶으로 인해 회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심하고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손자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딸이 이혼하며 타지에서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애지중지 키워낸 손자였다. 이제 곧 하버드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어릴 때는 집 나온 아이들을 자기 집에 재워주던 그런 손자였다. 그런 손자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이다. 그때 선생은 성경책을 덮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전쟁 속 침묵하던 신에게 돌았섰던 그때와는 다르게 그는 여전히 신의 곁에 머문다. 딸을 먼저 보냈음에도 선생은 끝끝내 신앙을 지키며 살다가셨다.
그 어렵다는 법대를 조기 졸업하고 외롭게 애 키울 때, 그날 그 바닷가에서처럼 ‘아버지!’하고 목이 쉬도록 울 때, 그때 나의 대역을 누군가 해줬어요. 그분이 하나님이야. 내가 못 해준 걸 신이 해줬으니 내가 갚아야겠다.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만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실명의 위기에서 눈이 떴을 때 내 눈도 함께 밝아진 거지.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쫓고 있어요(웃음)
“그날 선생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지력을 다해 신학과 시학을, 빵과 영혼을, 글씀과 말씀을 분멸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자신은 신학이 아니라 시학을 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는 이 땅에 빵이 아니라 영혼을 구하러 왔으며, 문자로 된 율법이 아니라 오직 말씀만이 생명을 낳았다는 이야기였다.”(321)
내 10대시절 가장 고통스러웠던 그때, 부도가 나서 압류딱지가 집안 곳곳 알록달록한 색으로 여러 장 붙어있었고, 교회는 여러 군데 옮겨 다녔으며, 엄마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첫사랑에게 차였을 때. 그게 제일 힘들었..ㅜㅋ)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그렇게 숨죽여 울었을 때,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 중심에 계셨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딸과 손자를 다 먼저 보내는 극한 고난을 겪었기 때문일세
적어도 나는 이어령의 강의를 통해 고통의 중심에 서신 예수님을 발견했다. 비록 선생의 강의와는 멀어졌을지라도 나는 더욱 예수를 알고 싶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겐 이어령 선생님을 추억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가 끝이 났다. 그분처럼 박학다식하게 말 잘하는 강사는 잘 없을 것이다. 늘 좋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때론, 신학을 전공했기에 틀에 박힌 내 사고를 휘젓기도 하셨다. 선생님의 성경 이야기가 그래서 참 좋았다. 다시 머리가 굳어질 때쯤 선생의 통찰과 이야기를 종종 꺼내먹어야겠다. 책은 늘 남아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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