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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계시록

[설교문] 요한계시록 21장 9-27절(계 21:9-27, 계 21:9~27)

by 카리안zz 2022.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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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새번역

9   
일곱 천사가 마지막 때에 일곱 재난이 가득 담긴 일곱 대접을 가졌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리로 오너라.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10   나를 성령으로 휩싸서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에 싸였고,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이 있고, 거기에는 열두 대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열두 대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고,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3   그 대문은 동쪽에 셋, 북쪽에 셋, 남쪽에 셋, 서쪽에 셋이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주춧돌이 열두 개가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15   나에게 말하던 그 천사는, 그 도성과 그 문들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으로 된 자막대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6   그 도성은 네 모가 반듯하여, 가로와 세로가 같았습니다. 그가 자막대기로 그 도성을 재어 보니,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서로 똑같이 만 이천 스타디온이었습니다.

17   또 그가 성벽을 재어 보니, 사람의 치수로 백사십사 규빗이었는데, 그것은 천사의 치수이기도 합니다.

18   그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도성은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19   그 성벽의 주춧돌들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첫째 주춧돌은 벽옥이요, 둘째는 사파이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비취옥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황보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었습니다.

21   또 열두 대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는데, 그 대문들이 각각 진주 한 개로 되어 있었습니다. 도시의 넓은 거리는 맑은 수정과 같은 순금이었습니다.

22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24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5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그 도성으로 들여올 것입니다.

27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9-27

요한계시록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끊임 비판을 했습니다. 그 대상은 제국의 우상 숭배, 불의, 로마의 우상숭배와 불의입니다. 제국은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첫째, 정치 지배, 둘째, 정치 질서와 신의 질서를 동일시 하는 종교, 셋째, 지배층을 우대하고 인간 착취를 허용하는 경제 네트워크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 요소에 전부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비판은 로마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계시록에서 사용한 바벨론은 로마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로마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 이것은 요한계시록이 1세기에만 의미있는 책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신약학자 보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벨론의 모자가 들어맞는 사회는 그 어느 사회나 그 모자를 써야 한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은 역사를 관통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로마가 행한 것과 유사한 일체의 모든 우상 숭배와 불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이클 고먼이라는 신약학자는 오늘날 우상을 자신의 나라인 미국, 즉 국가주의가 그 모습과 유사한 것은 아닌가 진단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우상은 무엇인가 계시록을 보면서 늘 추적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이 우상과는 대조의 모습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는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산에 올라 아름답고 화려한 성막과 그것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지시를 받았을 때가 생각나게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권태롭고 인내심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우상을 만듭니다. 금귀고리를 주었고,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지만 모세가 중간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 씨름하여 결국 하나님께서는 큰 은총과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며 마침내 성막이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성막이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는 구름과 불과 영광 가운데 오셔서 그 안에 사십니다. 이것이 출애굽기의 과정인데 요한계시록도 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이집트의 재앙과 비슷한 엄청난 재앙을 말해주었습니다. 바다 옆에 서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구속받은 백성을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기만, 거대한 우상 체제, 금과 은과 보석으로 둘렀지만 그 속에는 더럽고 불결하고 가증한 억압과 욕망, 폭력, 굴종으로 가득찬 큰 매춘부 바벨론을 보았습니다. 금송아지는 패러디였고 성막이 실재였던 것처럼, 바벨론은 패러디고 신부가 실재입니다. 이제 마침내 성막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십니다.” 바벨론이 걸친 보석은 아론의 송아지를 만드는 데 사용한 금귀고리처럼, 도성의 기초를 장식하고 있는 보석에 비해 저속하고 가치가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크기가 특이합니다. 16절에 명확히 밝히듯이 각 방향으로 2400킬로미터인데 대략 로마 제국과 동일한 정방형 크기입니다. 높이도 2400킬로미터입니다. 사실 이건 건물의 디자인이 아니라 상징적 우주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 도성은 거대하고 완벽한 정육면체일 것입니다. 옛 예루살렘 성전 중앙에 있던 지성소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도성 전체가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23절에 더 이상 필요없는 것이 성전만이 아니라는 것 알 수 있습니다. 해와 달, 곧 첫 번째 창조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또 많은 성경 본문에서 많은 언급이 되었던 가장 큰 빛, 해와 달까지 없습니다. 해와 달도 하나님의 표지판이었습니다. 사실은, 창조 세계 자체가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해 만들어 내고자 하셨던 세상을 가리키는 커다란 표지판이었습니다.

이 새 창조는 창조된 세상을 넘어섭니다. 어린 양의 인격 안에서 길고 눈물 어리고 피가 흥건한 길, 가장 중요한 하나님 자신의 눈물과 피를 거쳐, 하나님의 최종 설계에 도달해야 했습니다. 출애굽의 결론처럼 계시록에서도 이 최종 설계는 순전히 자비와 은총의 권능에 의해 달성됩니다. 그 자비와 은총을 통해 창조 세계는 폐기되지 않고 성취되며, 버려지거나 대체되지 않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새로워집니다.

이 신비는 여태 적대적이었던 열방과 왕들이 도성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합니다. 열방이 와서 경배하고 경의를 표하며 도성은 움직임이 가득한 북적대는 공동체입니다.

 

제국의 야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계시록의 이 환상들이 예배를 통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제국에 비하면 정말로 보잘것없던 작은 공동체가 지금까지도 살아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새 창조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사이 무수히 많은 제국들과 우상들이 거쳐 갔습니다. 지금 우리 삶 속에, 세상 속에 신을 자처하는 우상들 역시도 마찬가지로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 말씀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우리의 예배 속에서 새 창조를 그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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