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 14절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최근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습니다. 전반기 최고의 화제 드라마로도 꼽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공감을 표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도 나오고, 과잉 노동으로부터 해방도 나오며 마지막에는 용서와 환대가 나오며 원수로부터 해방이 나옵니다. <나의 아저씨>의 작가로 유명한 이해영 작가가 그리스도인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기독교적인 메시지가 제법 담겨 있는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화제를 이끈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에서도 여전히 해방을 원하는 걸로 보입니다.
당연히 기독교에서도 해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를 보는 렌즈로 해방, 곧 떠남을 기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봅시다. 창세기 15장에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곳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 땅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거기에서 기근으로 인해 애굽, 곧 이집트로 갑니다. 이집트에서 위기에 처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집트를 떠나게 됩니다. 마치 출애굽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가 보내다라는 표현이 동일하게 나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창세기 15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똑똑히 알고 있거라. 너의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종이 되어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창 15:13)
생략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도 우리는 대표적인 해방의 때인 출애굽의 이야기에서 떠올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애굽 땅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소돔을 돌아보면서 소금 기둥으로 변합니다. 이때 뒤를 돌아본 것은 단순히 호기심에 뒤를 돌아본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의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그리워해서입니다. 만약 심판 장면을 본 것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면 아브라함 역시 소금 기둥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에서 우리는 유추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에서 애굽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상됩니다.]
야곱의 이야기에서도 탈출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환영도 못받고 거의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창세기 31장 20-21절에 야곱이 식구들을 이끌고 그곳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라반이 뒤쫓는 장면을 보면 마치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야곱이 떠난 이유는 창세기 31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낯선 땅으로 갔다면, 야곱은 낯선 땅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40장 14절에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자신을 ‘이 집에서 건져’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요셉은 감옥을 ‘이 집’이라고 표현했는데 출애굽기 20장 2절이 떠오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이 집에서’ 요셉을 ‘건져 내는 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저 내는 것’에 대응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건져 내 주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마지막 가장 위기의 순간은 홍해 앞에선 순간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다조차도 어둠의 세력을 무찌르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강대한 세력인 이집트를 무너트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바벨론에 포로된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세상을 모든 세력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탈출시켜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어느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그 근원에서부터 해방을 시키기를 보이십니다.
어둠의 가장 진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막혔던 담이 사라지고 화해를 이룹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다시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바다가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살아 갑니다. 바다, 곧 어둠의 세력들이 완전히 없어진 그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만 있을 뿐입니다. 바다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세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계 21:4)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나라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바로 여기에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해방해주셨고, 우리를 그날에 완전히 해방시켜주실 것입니다. 그 신실하심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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