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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교문] 5분 설교 - 잠언 3장 18절, 잠 3:18

by 카리안zz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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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18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어릴 적 중학생 때였던 것같습니다. 당시 공부를 잘하려면 성경에 잠언을 읽으면 된다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만 유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어머니께서도 잠언을 읽으면 머리가 똑똑해진다는 말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잠언서의 지혜가 우리가 공부를 잘해서 시험 문제를 잘 푸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잠언의 지혜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지혜를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선악과 이야기로 들어가야 합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이 뱀은 간교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원어를 본다면 이 간교하다는 단어의 뿌리는 지혜의 뿌리와 같습니다. 예수님도 뱀 같이 지혜로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지혜와 창세기의 지혜를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시작부터 지혜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야기의 진행은 다들 아는 것처럼 하와는 뱀처럼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은 말을 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대응합니다.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지만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의 생각을 추구한 것이죠.

뱀은 하와에게 다시 대답합니다. 선악과를 먹게 되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앎에 있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성숙하지 않게 성급히 그 지혜를 얻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언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짐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이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을 닮기 원합니다.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소유하신 지식을 갖기까지 성장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말합니다. 잠언 전체는 어리석은 젊은이인 아들이 지혜의 음성을 따르기를 배움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식을 얻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를 행함으로 생명을 얻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잠언 어디에서나 충동을 억제하고 교훈에 귀 기울이는 것이 생명의 근원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리석은 충동에 굴복했고, 아버지가 아닌 간교한 뱀의 목소리에 귀 기우렸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실패한 것입니다.

 

잠언 916-18절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6 "어수룩한 사람은 누구나 이리로 발길을 돌려라" 하고 소리친다. 지각이 모자라는 사람에게도 이르기를

17 "훔쳐서 마시는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더 맛있다"하고 말한다.

18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죽음의 그늘이 바로 그 곳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 여자를 찾아온 사람마다 이미 스올의 깊은 곳에 가 있다는 것을, 그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창세기 31절에 뱀이 하와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냐되묻는 것같습니다. 마치 뱀의 말이 죽음으로 이끌었듯이 미련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오직 죽음의 스올로 인도할 뿐입니다.

 

지혜와 미련함의 외침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잠언은 아담과 하와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때 확실해 보였습니다. 아담이 실패했듯이 이스라엘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이 지혜를 보이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30절은 말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라고 말했습니다. 아담과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이 지혜를 진정으로 보이셨습니다.

 

창세기의 선악과는 우리가 지혜와 미련함 중 누구를 따를 것인가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아닌가 묻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가 아닌가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예배 시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매일의 기도시간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고백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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