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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교문] 5분 설교 - 빌립보서 2장 1-5절, 빌 2:1-5, 빌 2:1~5[시대의 징후 I 혐오 I 생각의 위기 I 상상의 위기 I 극단주의 I 청년 I 분노]

by 카리안zz 2022.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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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 느껴지는 징후가 있습니다. 전 세대에 걸친 징후라기보다는 젊은 층에서 주로 보입니다. 최근 중고등부 수련회를 가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걸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5분이면 해결될 문제를 1시간, 2시간 헤매는 걸보고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정에 대해서 서로 소통하는 문제가 전혀 안 되었습니다. 아직 중학생이라서 어리다고 하기에는 조금 지나치지 않나 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원인을 추적하다가 최첨단 시대가 만든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친구들에게 익숙한 건 주목 경제라는 것입니다. 주목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돈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쉽게 이해하는 용어인데 트롤링과 어그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깐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 걸 말합니다. 사회가 용인하는 선을 넘는 행동을 하면서 주목 받습니다. 주목된 이 유명세는 자신에게 돈이 됩니다. 선 넘는 행동을 욕하지만 돈을 추앙하는 이 세대에서는 용인되기도 합니다. 돈이 중요하기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부차적인게 됩니다. 돈이 된다면 온갖 행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최근 뉴스만 봐도 태풍 오는데 유튜브 라이브를 틀면서 주목을 받으려고 하고, 중국에서는 말벌 먹는 걸 실시간으로 송출해서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런 걸 어그로라고 합니다. 윤리가 무너지는 바탕이 됩니다. 특히나 엄숙한 분위기를 깨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에 선 넘는 행동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제 여기에서 공감하고자 하는 욕망이 등장합니다. 개인마다 스마트폰을 가지는 시대가 되었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함께 살아도 혼자 방 안에 있는 것이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가 궁금합니다. 특히나 개인이 홀로 미디어를 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도 유행 지난 드라마를 늦게 볼 때가 많은데 보고 나서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공감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유튜브 시대에 비평이라는 것이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사람들은 공감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데 갑자기 내용에 대해 비판을 하면 반발심, 그러니깐 감정이 먼저 올라옵니다. 반추라던가 되새겨보는 생각은 하기 힘들어 집니다. 이 반발심에 내 생각을 좀더 세련되고, 시원하며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걸 원하게 됩니다. ‘사이다같은 말이다 라는 표현이 유행한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작동하는 것이 알고리즘입니다. 알고리즘이 뭐냐면 내가 보고싶은 영상을 하나 보면 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자동으로 AI가 찾아서 추천영상으로 뜨게 하는 것입니다. 내 의견과 비슷한 것만 계속 노출됩니다. 이걸 필터 버블이라 합니다. 내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말들이 많아지며 극대화 됩니다. 이렇게 되는 현상을 에코 챔버라고 합니다. 반향효과죠. 세상이 자기가 생각하는 소리가 전부인 것이 되어버립니다. 확증편향의 현대적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오면 되돌아보기, 즉 비판의식이 사라집니다. 내가 공감하는 집단에 내 생각을 맡겨 버립니다. 내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포기하고 끝내 잃어버립니다. 사고의 외주화입니다. 내 집단의 생각이 어떤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이렇게 집단이 중요해지니 세상을 니편, 내편으로 나누게 됩니다. 내 집단에 대한 공감이 과잉되면 필시 다른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가지며 폄훼를 하게 됩니다. 혐오는 여기에서 자라납니다. 공감이 잘못되면 혐오로 나아갑니다.

 

주목 경제와 공감하려는 욕망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고를 외주화하면 그것을 이끄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가장 공감되게 전달하는 사람. 유튜버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죠. 이들은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주목경제의 원리입니다.

이들은 복잡한 논의를 잘 정리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잡한 논의를 단순 명료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원인과 해결책을 간단 명료하게 제시합니다. 한 두 가지 때문이라고 간단 명료하게 정리 후 과대포장합니다. 분노에 해 있는 남성들에게 한가지 던저 줍니다. 당신이 연애도 못하고 무시당하고 여자한테 차이고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페미니즘 때문이다라고 쉽게 원인과 결과를 말합니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당신이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이민자들 때문이다라고 쉽게 말해버립니다.

트럼프 당선까지 미국 커뮤니티에서는 끔찍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이버 불링하며 당사자의 주소를 웹상에 공유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 욕설을 합니다. 결국에는 총기난사 사건들까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렇게 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가 젊은 층에게 제법 나타납니다. 지난 대선때 어떤 후보측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여섯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려버립니다. 이 여섯 글자로 인해 20대 남성들이 열광을 합니다. 자기들의 분노의 원인, 세상의 불평등이 바로 이 여성가족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없어지면 자기들이 원하는 세상이 오는가 라는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없어지면 속이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감정이죠.

얼마 전, PD수첩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왔습니다. 한 청년이 여성가족부를 엄청 비난하면서 말도 안되는 정책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PD가 묻습니다. 그 말도 안되는 정책이 무엇이지요?라고. 그 청년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사유의 외주화로 일어난 현상이죠.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사람들이 저게 문제라고 하니깐 문제라고 말합니다.

, 청년들은 86세대 때문에 이 모양 이꼴이 되었어 이런 생각이 제법 있습니다. 어느 설문조사를 보니 만 34세 이하 청년들에게 ‘586세대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인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80%가 동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만 34세 이하 청년 중 44%586이라는 말 자체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유의 외주화 모습이 여기에도 등장합니다.

 

젊은 청년 층이 증오해 있다는 것입니다. 젊은 남성을 주로 예로 들었지만 젊은 여성들도 이건 피해가지 못합니다. 젊은 층들의 전형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분노하고 생각을 하지 않고 혐오의 감정을 마구 표출해냅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감정만 남아있습니다. 집단에 대한 분노, 혐오가 있습니다. 오늘 현대 최첨단 시대에 악은 이런 식을 기승을 부립니다.

 

유튜브를 접하는 연령들이 이제 더 낮아지고 있습니다. 생각의 위기, 정확히는 상상력의 위기입니다. 나 이외의 타인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내 집단 밖의 집단을 상상해내지 못합니다. 내 집단 밖은 적이며 분노의 대상,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불안한 시대, 불확실한 시대이기에 더욱 그렇게 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말씀 그 자체가 세상을 향한 우리의 메시지가 됩니다. 빌립보서 21-5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곘습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성경의 말씀을 읽는 그 자체가 세상을 대항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6장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30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33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34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과 같은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말씀일지라도 우리는 이 말씀을 읽어야 하며, 마음에 새겨야 하며, 세상을 향해 말해야 하고, 세상에 보여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먹읍시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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