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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계시록

[설교문] 요한계시록 5장 1-14절(계 5:1-14, 계 5:1~14)[두루마기, 어린양, 구약의 중요성]

by 카리안zz 202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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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51-14

 

성경을 어느 배경으로 두고 읽어야 할까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에게 있기보다는 신학을 전공한 분들이 하는 고민입니다. 어느 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구약을 전공한 분이셨는데 전공을 옮겨서 신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학회를 참석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대다수 신약학자들이 구약을 포함한 유대 배경에 대해서는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예수 세미나라는 곳이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괴상한 주장을 하니깐 언론이 많이 받아써줬다고 합니다. 여튼, 이분들은 그리스 문학과 그레코-로만 문화에 대한 지식은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유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세미나 학자들 중에 소수만이 고고학을 진지하게 연구해 이스라엘 지리에 익숙했고 랍비 문학과 성경의 아람어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런 불완전한 학문을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니 요상하고 의문스러운 결론이 이르는 건 당연한 것이죠.

물론, 당연히 성경이 그리스-로마 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복음이라는 이 유앙겔리온도 그 시대의 사용되었는 의미를 차용한 것이죠. , 계시록에서도 당시 로마의 문화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뼈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들 익숙하기에 디모데후서 316절 말씀을 알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때 모든 성경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경과는 모습이 조금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경으로 가지게 된 성경은 한참 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성경은 구약의 이야기와 전승되어 내려오던 예수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을 다 민족과 종족 사람들에게도 교육해야 된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의 배경이 신약의 큰 기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에서 그 이유가 분명히 나옵니다. 1절에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갑자기 등장하는 이 두루마리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두루마리를 알려면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에스겔과 다니엘에게 이 두루마리가 나옵니다. 장로 요한은 이 두루마리를 이어서 언급한 것입니다. 에스겔 29-10절입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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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의 두루마리도 안팎에 글이 써져있다고 합니다. 후에 심판의 내용이 선포되는데 에스겔의 두루마리랑 이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다니엘서의 배경도 있습니다. 다니엘 819, 26, 124,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마지막날까지 대한 이 글이 다니엘때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마지막날에는 봉인된 두루마리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에 써진 중심 내용이 무엇일까요? 계시록을 보다보면 자세히 나오지만 다니엘서에서 그 두루마리의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다니엘서 244절입니다.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하나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시는데 그 영원한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두루마리가 보이고 이 인을 떼면 그 나라가 보여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봉함된 인을 떼기에 적합자가 누구이냐라고 천상의 회의장에서 천사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장로 요한도 그 말에 온 세상을 봤지만 이 두루마리의 인을 뗄 자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습니다. 웁니다. 그냥 운 것도 아니고 크게 울었습니다. 장로 요한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당시 사람들의 고통에 울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처절한 현실에 마지막 해결자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없다는 것에서 절망감에 슬픔이 몰아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반가운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 본문 5절입니다.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그 인을 뗄 수 있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승리를 하셔서 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분의 정체는 유대 지파의 사자이자 다윗읠 뿌리였던 분이셨습니다. 유다지파의 상징은 사자입니다. 야곱이 유다를 축복해줄 때 사자를 언급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에 다윗의 혈통에서 이상적인 왕이 나온다는 언급을 했습니다.

그리고 인을 떼시는 분이 등장합니다. 사자일줄 알았는데 어린양이십니다. 이 어린양은 남을 죽임으로 이기신 분이 아니라 죽임을 당함으로 이기신 분이셨습니다. 이 어린양에는 출애굽기가 배경이 됩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죠.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듯이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노래를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을 통해 체결된 언약은 새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 본문 10절에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고 땅에서 왕 노릇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능력은 우리의 능력과는 다릅니다. 남을 압도하야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대가 가진 힘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엄청난 군사력과 문화의 힘에 참으로 세상을 호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힘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에게 힘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능력있다는 말을 어떨 때 많이 쓰십니까? 돈을 잘 벌면 능력있다고 합니다. 가족을 부양할 힘이 있다는 것이고,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제약이 많기에 능력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능력은 다릅니다. 힘없어 보이게 죽임을 당한 어린양. 그 어린양이 실은 죽음을 이겼습니다. 한낱 이 땅에서 군사의 힘이나 연봉의 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영원할 것같은 죽음의 세력을 죽음으로 이기신 어린 양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능력과는 분명 다릅니다. 돈과 군사의 힘으로 죽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황제도 지금 죽었고, 당대의 부자들도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셨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도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있으시다고 고백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지 않고 계속 선포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말입니다. 참으로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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