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 1-7절
요한계시록 2장부터는 일곱 교회가 편지를 받게 되는데 오늘 1절에서 7절은 에베소 교회가 가장 첫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왜 가장 먼저 에베소 교회가 받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로마가 다스리는 지중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인구는 25만명 이상이었으며 로마, 알렉산드리아, 시리아 안디옥과 함께 에베소 도시가 꼽혔습니다. 로마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였죠. 소아시아 최대 도시였고, 소아시아의 꽃이라 불릴 만했습니다. 이 도시에는 지금도 유명한 건축물이 있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바로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무려 120년 동안 건축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길이 130m, 너비 70m, 높이가 18m나 된 건물입니다.
활발한 도시였다보니 교회 역시도 활발했습니다. 에베소는 초기 기독교의 주요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2세기 초까지 기독교 저술가들은 에베소를 기독교적 믿음과 삶의 훌륭한 본보기로 받아들였습니다. 몇백 년 동안 에베소는 탁월한 지위를 차지했고, 5세기 중요한 교회 공의회 중 하나가 에베소에서 열렸습니다. 이런 도시에 과연 주님께서는 어떤 내용을 말씀하셨을까요?
편지의 형식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방식과 유사합니다. 1절 마지막에 “이가 이르시되”라는 표현이 구약의 예언자들이 많이 쓰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로마 당시의 황제나 높은 관리가 명한 포고문의 형식과도 유사합니다. 특히나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다는 표현을 주목해 봅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동전에는 일곱 별이 등장했었는데 황제의 힘을 과시하시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일곱 별을 가진 로마 아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죠. 그러나 1장 13절에 “인자 같은 이”가 일곱 별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때 인자같은 이는 다니엘 7장 13절에 따르면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 인자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로마의 황제 아래가 아니라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왕이신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지금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곤 2, 3절은 칭찬, 4, 5절은 책망을 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칭찬 받고 책망 받은 이유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 보려면 먼저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 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단서를 잡아야 하는데 때마침 6절에 니골라 당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여기를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니골라 당은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언급되는데 일단 부정적으로 언급이 됩니다. 버가모 교회에서 언급될 때는 발람을 언급하며 니골라 당이 우상숭배를 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니골라당은 우상숭배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가담하고 그것을 조장할 뿐 아니라 그 행위를 신학적로 정당화하고 가르쳐 유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우상일까요? 니골라 당은 에베소와 버가모에서 활동했는데 이 두 도시의 공통점은 황제 숭배 신전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황제 숭배를 거절을 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니 황제를 어느 정도 숭배해도 된다는 혼합주의가 큰 유혹으로 다가왔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장사가 없듯이 신앙 역시도 흔들립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 부분에서 칭찬을 받습니다. 2절과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절과 6절입니다.
2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6절: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에베소 교회는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용납하지 않고 거짓을 드러낸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책망의 받게 됩니다.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4절입니다.
4절: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해가 됩니다. 거짓 가르침이 이곳저곳 있고 이 가르침은 먹고 사는 문제를 건드립니다. 조금만 편하게 살면 하나님도 섬기고 이웃들과도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가르침을 전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혹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메시지들을 막으려고 에베소 교회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쉽게 짐작이 갑니다. 아마도 눈에 쌍심지를 켜놨을 겁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감시와 의심으로 눈에 힘을 주며 봤을 겁니다. 그러니 사랑이 없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여행했던 것같고,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이 환대를 많이 요구했을 겁니다. 심지어 새로운 가르침을 경청하라고 요구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사람들은 전혀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사수한다고 목숨을 걸지만 잘못되면 나 빼고 다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는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희생하는 사랑을 그들은 버렸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사랑’이란 궁핍한 사람들.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굶주린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하고 실제 도움을 주며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이걸 다 차단해버린 겁니다. 회개하지 않고 이 처음에 했던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리신다고 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이 말을 들었을 때 섬뜩했을 겁니다. 항구 도시였던 에베소는 강이 침식되어 몰려드는 침적토에 이미 세 번이나 도시를 옮긴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7절에 이기라고 합니다. 이교도의 박해와 위협에서 이기라고 합니다. 실제 무력으로 반격하여 힘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는 고난을 통해 이겨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걸어가신 길이고, 그 길을 따르는게 당연히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복수극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넘어서 눈이 당하면 얼굴을 박살내 버리고 이가 부러지면 역시 얼굴을 다 박살내 버립니다. 최근 끝난 드라마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로마서의 말씀을 희한하게 해석을 하더라구요. 어쨌든 그 드라마의 주제는 복수였습니다. 복수를 하면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일까요? 복수를 함으로 똑같은 사람이 되지만 알고도 보복을 하려고 합니다. 이 복수는 대대로 내려져 원수가 되며 숱한 인류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이 피의 역사, 죄의 역사를 끊는 길은 오늘 계시록이 가르쳐준 것처럼 예수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십시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집시다.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보론 - 우리 교회는 그리 보수진영의 교회가 아니라서 강조하지 않았지만 진리 수호를 외치는 게 강한 교회라면 에베소 교회의 상황을 잘 설명하서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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