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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계시록

[설교문] 요한계시록 8장 6-13절(계 8:6-13, 계 8:6~13)[나팔 소리]

by 카리안zz 202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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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8장 6-13절

 

오늘 본문 6절부터는 나팔 심판이 시작됩니다. 앞서 인 심판이 신자들이 통과해야 하는 환난을 말했다면 오늘 나팔 심판은 비신자들이 겪어야 하는 심판을 말합니다.

첫째 심판이 이제 시작되는데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 진다고 합니다. 이번 심판은 출애굽기에서 애굽에게 쏟아진 심판을 연상시킵니다. 열 가지 재앙에서 일곱 번째 재앙이 생각납니다. 모세가 자기 지팡이를 하늘로 내밀자, 하나님께서 우레와 우박을 보내셨고, 번개를 땅에 달리게 하셨”(9:23)습니다. 피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요엘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에서 온 걸로 보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 영향은 인류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끼칩니다.

두 번째 나팔을 부니 불붙은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 진다고 했습니다. 이 심판의 배후에는 예레미야의 환상이 이어져 있습니다. 예레미야 5125절에 바벨론을 불에 탈 멸망의 산으로 언급했고, 계속해서 5163-64절에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바벨론을 강 속에 던져 넣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불 붙는 큰 산은 바벨론, 곧 악한 세상 전체 구조를 지배하는 큰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9절에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는 말에서 세상 전역에 미친 부분적인 경제적 타격을 말합니다.

세 번째 재앙은 하늘에서 육지의 강들로 떨어지는 불타는 별들러 이루어 집니다. 이로 인해 강이 쓰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이 재앙에서는 물이 변하여 피가 된 애굽의 첫째 재앙을 기억나게 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타는 별은 신적 오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앞서 피처럼 붉은 폭풍과 불타는 산 역시도 신적 오심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 움직이고 계시며, 인간은 반드시 회개하거나, 아니면 다가올 진노의 맹렬함을 그대로 견뎌 내야 합니다.

별이 떨어지자 물의 맛이 써졌다고 합니다. 이 쓴 맛은 죽음을 나타냅니다. 육지의 물 일부분이 하나님의 장엄한 행위로 인해 오염되었고, 많은 사람이 그 물을 마신 뒤에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나팔을 부니 어둠이 몰려 옵니다. 이 어둠은 구약 전체에 걸쳐서 등장합니다. 주로 심판의 상징으로 등장하죠. 아모스 선지자는 주의 날을 빛이 아닌 어둠의 날이라고 말했습니다(5:18). 요엘은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2:2).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서를 언급하시며 주의 날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24). 넷째 나팔 재앙은 예언의 성취입니다.

13절에서는 장로 요한은 다시 한 번 그의 환상 속에서 그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있다는 점을 알립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을 회개하게 하기 위해 자연에 네 가지 재앙과 뒤어 등장할 재앙들을 내립니다. 이전의 재앙들이 천사들에 의해 시작된 반면, 이어지는 재앙들은 아주 적절하게도 공중을 나는 독수리가 선언합니다.

 

나팔 재앙은 하나님에 대해 지독한 적개심을 가진 세상에 임합니다. 심판의 강도가 세질수록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맹렬함도 강해집니다. 그러나 나팔 심판은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 땅의 상당한 부분이 피해를 입지만 땅 전체를 파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심판 때마다 1/3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 심판의 목적은 징벌하는데 있다기보다는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에스겔 33장에 나오는 파수꾼과 그의 나팔처럼, 나팔은 사람들에게 임박한 위험을 경고합니다.

 

최근 이슈가 되는 드라마 두 편이 있습니다. 탈영병을 잡는 헌병대 이야기인 <D. P><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D. P>는 죄와 악이 무엇인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죄된 이 세상이라는 표현을 이 드라마는 아주 잘 표현해 냅니다. 특히 남자분들이라면 군대를 가셨기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자신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 군대 안에 있다면 제법 양심적인 사람으로 남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그 시스템 안에서 악한 구조의 일부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D. P>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게 군대만의 이야기냐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아니냐고 사람들은 많이 이야기합니다.

<오징어 게임> 역시도 세상이 어떤 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드래곤 모터스 자동차 회사에서 해고당한 사람입니다. 드래곤 모터스, 쌍용차를 말하는 것이죠. 해직노동자 데모를 강하게 하는 걸 봐서 쌍용차 사태의 당사자입니다. 감독도 그렇게 말했고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 설정을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결국, 직장을 잃고, 이혼하고, 도박하는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지만 선함을 잃어버리는 않는 사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로가 죽고 죽이는 것을 말하는 오징어 게임에서 기독교가 살벌하게 묘사됩니다. 줄다리기 게임에 승리를 하고 나서 광신처럼 보이는 기독교 신자가 나옵니다. 그는 경기에 이겨 살게 된 걸 하나님에게 감사기도를 드린다. 그랬더니 지영이라는 고등학교 소녀가 한 마디 합니다. 당신이 지금 살게 된 것은 저기 할아버지의 작전과 잔머리 굴린 옆에 아저씨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렇게 광적일 만큼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섬뜩한 말을 합니다. ‘약한 쪽을 골라서 우리가 먼저 사람들을 치자고 말한다. 약한 쪽을 먼저 죽이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더니 아까 그 고등학생 소녀가 주님 모시는 분이 더 살벌하다는 말을 남깁니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말로 대답을 합니다. 감독의 시선에선 이런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기독교인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되려 이 죄된 세상 속에서 더욱 죄 짓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비아냥 대듯이 이야기하는 고등학교 소녀는 사실 목사의 딸로 나옵니다. 엄청난 일을 겪은 이 소녀에게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마지막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그리스도인이 나옵니다. 죄된 이 세상에서 얼마나 허무한 구호가 보이는지 감독이 일부로 그렇게 보이게 끔 연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이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잘 없을 것입니다. 이미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그걸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가 어떻게 선포되고 있는 건지 돌아보게 됩니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자본을 신으로 만들고 섬기고 있는 이 세상에서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역시도 계시록의 가르침대로 어린양처럼 견디며 싸우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심판과 회개를 외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2).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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