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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계시록

[설교문] 요한계시록 3장 1-6절(계 3:1-6, 계 3:1~6)[사데교회에게 보내는 편지]

by 카리안zz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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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1-6

 

오늘 말씀은 사데교회에게 전달되어집니다. 사데는 살아있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 이름과는 반대로 죽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라는 이 표현은 여태까지 편지들 중에 가장 혹독한 비판입니다. 사데라는 도시 역시도 한 때 찬란했던 도시였습니다. 대제국 페르시아의 중심도시였습니다. 금이 이곳에서 채취되었고 금과 은으로 된 주화를 처음 찍어낸 도시가 사데였습니다. 울 섬유를 염색하는 기술을 처음 발견해 낸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셀류키드 왕조로 편입되었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A.D. 17년에는 끔찍한 지진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0여년 뒤 제국의 신전 유치를 위해 사데 교회가 뛰어들었지만 결국 져서 서머나 도시에 제국의 신전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죽어가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사데교회는 이 사데라는 도시의 처지와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2절에 깨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는 주의하라가 맞습니다. 사데교회 사람들은 주의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특히나 긴장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데라는 도시가 두 번씩이나 경계를 소홀히 하여 적들에게 함락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원전 218년 라고라스가 사데를 점령했는데 단지 15명의 군사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데가 방심한 틈을 타서 라고라스는 15명이 침입해 성문을 열어 버린 것입니다.

지금 사데의 상황도 이와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사데 교회는 외부의 박해나 불신 유대인들의 도전이 있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데 교회가 죽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외부 환경과 동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데라는 도시가 방심을 틈타 함락되었듯이 사데교회 역시 경계를 소홀히 한 틈을 타서 함락이 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완전히 다 죽은 자가 아닙니다. 4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절입니다.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4절에 더럽혀지지 아니한 옷을 언급했는데 사데교회 사람들은 확실히 와닿았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언급했듯이 이 도시는 최초로 울 섬유를 염색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더럽혀지지 않은 옷을 입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 자들은 이제 흰 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은 가죽옷을 입혀 보내셨습니다(3:21). 이제는 예수님이 흰 옷을 입혀주십니다. 마치 승리한 날에 흰 옷을 입던 로마의 관습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깊게는 어린 양의 피로 씻김 받아 회개 되었기에 흰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비판할 때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비판을 참 많이 합니다. 그 점을 확실히 포착한 책 제목이 있습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라는 책 제목입니다. 이미 11년 전에 나온 책 제목인데 여전히 몇 대목은 낯설지가 않습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세상 속에 있기는 하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공동체가, 어느새 철저히 세속화하여 '교회 속에'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들어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속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 속의 세상'이 되어 버린 세속화된 교회는 날로 그 힘을 축적하여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적 발언까지 시작합니다. 물론 기독교의 모든 정치적 발언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속화된 교회들이 보여 주는 정치적 발언이나 침묵은 언제나 '가진 사람의 편'으로 귀결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16-17)

 

어제는 "당장 교회 주차장부터 구입하라"고 말씀하셨다던 하나님이 오늘은 "세계 선교관이 우선이니 그 헌금부터 하라"고 말씀하시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깁니다. 그분들이 믿는 하나님은 왜 그렇게 부동산 투기에 목말라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23-24)

 

11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극우적인 목소리를 내며 가진 자의 편을 듭니다. 고신 교단에서 전광훈 씨에 대한 이단성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전광훈 씨를 이단이라고 하면 많은 한국 교회가 이단이 되기에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이만희가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광훈 씨가 했을 때 우리는 침묵합니다. 신앙보다 이념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부동산 투기는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에 나온 교회와 신도시라는 뉴스 기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도시 종교부지에 교회들이 뛰어들어 어떤 곳은 땅값만으로 100억원 이상을 쓴 교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기쁨이 땅값이 오르고 내리는데 있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얼마 전 나온 한국갤럽에서 종교인구 조사를 했는데 인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50% 이상이 관심이 없어서였습니다. 특히나 젊은 층들이 더 높습니다. 자살율은 늘어가고 젊은 고독사도 늘어가고 있는 이 외로운 사람들이 이제 처다보질 않습니다. 희망을 우리가 주지 못한다는 것이겠죠.

 

세상과 동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처럼 보이지만 되려 이제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은 한국교회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말씀을 읽겠습니다.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방법은 성령으로 다시 영적 생기를 얻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고 회개하며 우리의 복음을 어떻게 듣게 되었고 무엇인지 생각하여야 합니다. 세상이 우릴 외면한다고 세상의 방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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