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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공부흔적

소예언서 - (8) 호세아 8장 1-14절(호 8:1-14, 호 8:1~14)

by 카리안zz 202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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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가 주로 활동한 장소는 북왕국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호세아는 북왕국의 죄악을 고발했는데 오늘 본문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오늘은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의 어떤 면들을 비판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면 나팔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나팔을 입에 대는 것, 나팔을 분다는 말입니다. 나팔을 분다는 건 준비 중인 무언가를 움직인다는 겁니다. 대기하고 있는 군사들을 위한 이동 신호일 수도 있고, 공격해오는 적군을 본 파수꾼의 경고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쟁이 곧 임박했다는 거죠. 그 뒤에 독수리라는 단어를 호세아가 언급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독수리는 빠르고 강하며 높이 나는 새로 그려집니다. 예레미야에서도 독수리가 언급되었는데 그때는 앗수르의 군대에 독수리를 비유했습니다. 독수리는 또 시체 위를 날아다니곤 하는데 그러한 이미지들을 합치면 임박한 멸망을 알리는 표시로 독수리가 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심판은 여호와의 집에 들이닥친다고 했습니다. 보통 여호와의 집이라고 하면 성전을 떠올리지만 본문이 북이스라엘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성전으로 대표되는 북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의 집으로 본다는 구약의 표현들도(12:7; 9:8) 많이 있기에 여호와의 집은 북이스라엘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왜 심판의 장소를 여호와의 집이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다른 장소들이 다 심판을 당해 없어져도 여호와의 집만은 심판을 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호세아는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쓴 것 같습니다. 가장 소중한 침범할 수 없는 장소라 할 수 있는 여호와의 집도 임박한 재앙의 날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호세아는 강조한 것이죠.

8장 후반부에서도 의미없는 제사에 대해서 계속 비판을 하는데 성전과 제사는 하나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동들이 오히려 독수리처럼 임하는 재앙의 원인이고 시체 위를 날아다니는 독수리인데 독수리가 여호와의 집 위에 날고 있다? 그건 여호와의 집이 시체와도 같다라는 강력한 말입니다.

2절에서도 고발은 계속됩니다. 2절에 장차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 때문에 2절은 미래를 말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원문에는 없는 표현인데 대부분의 영어성경들은 원문처럼 현제형으로 번역을 합니다. ‘장차라는 단어를 빼고 읽으시는 게 문맥에도 훨씬 맞습니다. 그럼 이 말은 미래에 할 표현이 아니라 지금 이스라엘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을 표현한 것이죠. 이 표현은 61-3절의 거짓 회개와 닿는 점이 있습니다. 제가 6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유명한 구절이죠. 제가 한 1년 전인거 같은데 이 구절을 표현하면서 거짓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 나오는 4절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아침 구름이나 아침 이슬 같은 것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침 구름과 아침 이슬은 금방 사라지는 것이죠. 그러니 위의 고백도 쉽게 사라지는 고백. 말뿐인 고백이라는 겁니다.

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그렇게 입으로 말하면서 하는 행동은 종교적인 형식이나 제사 제도만 엄청 열심히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형식이라는 것도 이방 종교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심판을 하시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행동은 정반대로 하는 것이죠.

북이스라엘은 이제 선을 버렸습니다. 3절에 호세아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하는 행동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현실에서는 을 버린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일들을 하지 않는 걸보니 그 고백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세속적인 것의 기준일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교회 열심히 다니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는 것이나 교회에서 하는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인애를 보여야 한다는 게 호세아의 지적입니다.

얼마 전 중고등부 모임 시간에 학생들이랑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였습니다. 한 친구는 내가 행복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근데 자꾸 학원, 공부 이런 걸로 힘들어서 행복하지 않은데 왜 이걸 해야 하는 건지. 나중에 행복을 위해서 지금 행복을 버리는게 아닌 것 같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님 입장에서 잘 말해기도 했는데 자기의 행복이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행복으로 머무를 수 있기에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나만 아니면 돼로 갈 여지가 상당히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 대부분 아이들이 돈이라고 했습니다. 돈 많이 버는 걸 원한다. 안전적인 직업을 원한다.
그래서 제가 힘들고 가난하지만 올바른 일을 하는 독립운동가를 할래, 돈 많이 벌고 후대도 부자가 되는 친일파가 될래? 라고 물으니깐 대부분 친일파를 한다고 하죠. 부유한 것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라도 일본에 절을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분위기가 조금 가벼웠기에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행동으로 사는 것과 부자가 되고 부유하게 사는 것이 충돌할 때 고민이 되는 것이죠. 중고등부 시절부터 안정적이고, 돈을 원하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그건 우리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가르쳤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아주 잘 배운 것이죠.

호세아는 계속해서 현실을 고발합니다. 4-7절은 국내 정치와 종교 실상에 대한 고발입니다. 4절을 본다면 지금 북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가 나옵니다. ‘자기를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왕과 지도자를 세웠지만 하나님은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기들 멋대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내 욕심을 채워줄 왕과 귀족을 세운 것이 은, 금으로 우상을 만든 것과 동일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줄 사람을 뽑은 것이죠.

5절에서 송아지가 나오면서 4절의 자기를 위하여 만든 은, 금 우상이 아론의 금송아지와 연결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백성을 막고 나라를 지킨답시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지만, 자기를 위하여 만든 우상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부터 금송아지를 자기를 위하여 만들더니 북왕국에서도 여전히 송아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4-5절을 본다면 정치인을 뽑는 것이 어쩌면 내 신앙의 기준을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이익을 극대화시켜 줄 사람을 뽑는 것을 하나님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저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저희 집을 당시 팔아야 할 거 같아 부동산에 문의를 좀 해봤습니다. 지금 이 지역이 개발이 막되고 있어서 아직 호가를 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대구가 부동산 투기 과열지구로 대출이 50%가 막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법이 엄격해져서 전세를 놓을 때도 내가 받은 대출을 다 갚고 전세를 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부동산에서 하는 말이 지금 그래서 큰 손들이 못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큰 손들이 있으면 이제 이쪽이 개발되고 있으니깐 은행 대출로 사서 전세로 넣고, 시세가 오르면 차익으로 돈을 벌게 되는 거니 엄청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죠. 이런 뭐 갭투자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갭투자가 당시 절실할 때였습니다. 희년 운동이니, 땅 투기하면 안 된다는 걸 그리 강하게 이야기한 저였는데. 웬걸요. 왜 지금 제한을 해 가지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싶은 생각뿐이더라구요. 평소 올바르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내 현실에서 나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오니깐 한순간이긴 하지만 생각이 흔들거리더라구요.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면서 선하지 않은 행동과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이 예언서를 가르침들을 잘 전달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일전에 TV에 예능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모 연예인의 일상을 이제 담는 것이었는데 거기에서 성경통독방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연예인들끼리 90일동안 성경을 1독하는 그런 방이었습니다. 저희가 성경녹음하듯이 말입니다. 11명 멤버가 있는데 아 저사람도 기독교인이었구나 싶었습니다. , 연예인들이 성경통독도 하고 대단하다고 느끼기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날 어느 기사가 났습니다. 모 연예인이 부동산 수익으로 수백억 차익 남겼다는 기사였습니다. 근데 그 연예인이 성경통독하고 있다던 연예인 중 한명이었습니다. PD수첩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기까지 했죠. 자기 자본금 8억으로 20억의 차익을 냈더라구요. 이런 게 불법적인 일은 아니지만 투기한다는 게 올바른 일은 아니죠. PD수첩에 나오는 연예인들보니 기독교인들이 많더라구요. 교회를 다니고, 성당을 다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건물 안에서만 머무는게 아니라는 걸 호세아는 계속 지적하고 있습니다.

6-7절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거라는 내용입니다. 자기를 위해 송아지를 만들지만 아무 소용이 없고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풍요를 그토록 추구하고 원해서 우상도 많이 만들고 제사도 극진하게 드렸고 이런저런 왕들도 세웠지만 그들에게 남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8-10절은 열방을 향해 구애하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고발입니다. 이제 국내의 상황이 아니라 국외의 상황까지 호세아는 넘어갑니다. 7절에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라고 되었고 8절에는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이라고 이어서 말하며 국외로 확장을 시킵니다. 8절의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이 나오는데 이는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 그릇, ‘쓸모없는 그릇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나라의 차이가 이제 없어진 것이죠.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구애를 하며 이 위기를 넘어가려고 합니다. 9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는 건 돈으로 사랑을 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연인이신데 그들은 앗수르에 막대한 조공을 바치고 자신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돈으로 사랑을 산 것이죠. 북이스라엘의 이 선택은 10절의 표현대로 점점 쇠하여지기 시작할 겁니다. 이스라엘은 돈으로 안전을 사려 했지만, 실제로는 점점 작아지고 초라해져 노예 상태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안정을 취하려고 하지만 끊임없이 그것에 종속되고 작아지며 초라해집니다. 마침내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게 북이스라엘이 실제 겪은 일이었습니다.

11-14절은 제사와 제단은 많지만 율법을 버린 북이스라엘을 고발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제단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니 제사도 많이 드렸겠죠. 그런데 도리어 이 제단과 제사가 그들의 죄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제단으로 그들은 더욱더 죄를 많이 짓게 되었습니다. 2절에 우리 주를 안다고말했지만 수많은 제단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얼마나 모르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정의와 공의, 인애와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인애, 진리, 정의가 요구된다는 것에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세워진 왕과 지도자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다고 하며 되려 우상숭배와 동일하다고 말하는 호세아의 선언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 외교 가운데서 열방과의 우호와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한 노력을 음란이라고 규정하는 하나님의 선포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드러난 북이스라엘의 현실이 어떤지 이제 대략 윤곽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자기들 안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 종교체제 안에서 열심을 내었고 그것이 하나님이며 그것이 올바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상이었으며 그 우상은 정체는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이 호세아가 지적하는 현실은 오늘 우리에게 선포되어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교회당 안에서만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이 적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는 영역은 한 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왜 총체적 선교에 관심을 가져야하는지 이제 자명해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는 총체적 선교가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 좋으니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건 세상 정부가 훨씬 잘하고 시민단체가 또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총체적으로 선교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정의와 공의, 인애와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레위기 1913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신명기 2414-15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노동자, 나그네, 난민, 가난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에 예산의 최소 10분의 1 이상을 총체적 선교에 쓰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16%를 지출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예산이면 사역자 사례비를 더 높이던가, 사역자 한 명을 더 뽑아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예산이기도 합니다. 담임목사님과 공동의회 회원분들이 왜 그렇게 안 하시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 말입니다. 교회가 시장이 아니라는 선언이며, 교회는 기업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긴장을 놓으면 안 됩니다. 교회당 건물을 벗어나 우리의 일터 돌아갈 때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역시 공의와 정의, 인애와 진리를 원하십니다.

13, 14절은 그것이 사라졌을 때 북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출애굽이야말로 이스라엘의 근원이자 근본인데 그 근본을 하나님께서는 허물어 버리십니다. 여호와를 잊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불을 보내 그들이 자랑하고 의지하는 단단한 백성들을 모두 삼켜 보리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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