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요한서신

[설교문] 요한이서 1장 12-13절(요이 1:12-13, 요이 1:12~13)

by 카리안zz 2021. 2. 4.
반응형

요한이서 112-13

 

오늘 본문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대면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유는 아시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대면, 비대면 예배라는 용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배조차도 사상초유로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런 사태를 두고 새로운 종교개혁이라고까지 표현한 분도 계십니다. 이분은 은퇴하신 분이신데 자신이 지금 목회를 한다면 비대면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엄청난 개혁을 할 수 있을 때라고 강조하신 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작년 한 해 비대면에 대한 강조를 많이 했습니다. 당연히 방역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방역을 넘어서 비대면을 강조하는 말들이 많이 들렸습니다. 교회의 비대면이 이제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던 기억이 남는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분들은 지금 목회를 어떻게 하고 계시지?’, ‘비대면으로 인해 목회에 심각한 어려움들이 있을 텐데 그러한 고민점들은 전혀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무슨 새로움이라니 개혁이라니 좋은 말들만 나열해서 쏟아내고 현장에서 치열한 어려움이 없는 모습에 의문을 생겼습니다.

신학적인 담론이 없기에 기술의 미래에 관한 책과 디지털 예배에 관한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중 예일대 예배학 교수인 테레사 베르거의 책에서 생각해볼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생각이 바뀌었던 점은 성찬에 관한 점이었습니다. 개신교야 신부님처럼 직접 떡과 포도주를 전달해주지 않아도 되기에 성찬도 비대면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의되지 않은 지점들은 영상예배 역시도 신체를 동원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디지털 세계라고 몸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했지만 그 논증에 동의되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예배에 대해서 대면과 비대면을 많이 말하지만 교회를 놓고 대면과 비대면을 말하는 사람들은 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비대면으로 가능할까? 예배야 어떻게 해서든 가능하지만 교회를 이루는 성도의 교제가 비대면으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날로그적인 인간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1년간 비대면으로 하다보니 어렵다는 생각이 지금까지의 결론입니다. 아무리 영상으로보고 음성으로 들어도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고 눈과 눈이 맞으며 한 공간에 있다는 그 자체를 비대면으로는 어렵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정말 나중에 VR이라는 기술이 정말 발달해서 그걸 가능하게 된다면 모를까 지금은 무리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 12절의 장로 요한의 말씀이 참 와닿습니다. 다같이 12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입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왜 장로 요한께서 종이와 먹으로만 다하지 않고 직접 얼굴을 마주하려 했을까요? 사도 바울도 왜 편지만 쓴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을 누볐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사귀셨는데 그 사귐의 공동체를 강조한 장로 요한이 종이와 먹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이 더 이상할 것입니다. 장로 요한이 왜 직접 얼굴을 마주하려 했는지 그 이유는 안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장로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한 자들을 부인하기 위해서 대면을 말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코로나 시대 그 전처럼 대면으로 모든 것을 하자는 말은 결단코 아닙니다. 집단 면역이 될 때까지 우리는 여전히 비대면과 대면을 오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쉽게 대면을 포기하는 것도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비대면이 성행하는 현실에는 공동체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들리지 않는 아우성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우리는 비대면의 현실이 끝나 빨리 대면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참혹한 이 현실이 얼른 끝나 오늘 말씀처럼 얼굴과 얼굴이 서로 마주하여 기쁨이 넘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소망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은 문안으로 끝이 납니다. 마지막 구절은 코로나 시대 교인에게 문안하는 것 같아 마음이 저려 옵니다. 우리도 대면하여 기쁨을 나눌 날을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을 읽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3: 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기도 드리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