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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한서신

[설교문] 요한일서 5장 1-12절(요일 5:1-12, 요일 5:1~12)

by 카리안zz 20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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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5 1-12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절: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절: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절: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현대의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많습니다. 서구의 정치체제이지만 동서양 가리지 않고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자유를 참 좋아합니다. 한 때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에서도 자유를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교회로부터 자유를 원했습니다. 국가교회의 신학이 올바르지 않기에 그것을 따르지 않을 자유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따로 떨어져 나오게 되었고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의 이름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로 했습니다. 학교 이름에서 자유가 들어갈 만큼 자유가 중요했나 봅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많은 피흘림이 있기도 했습니다. 독재의 저항을 했고 많은 피를 흘려 결국 우리나라도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이제는 예전같은 구속은 없습니다. 저도 그런 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국가통금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드라마에서나 보긴 했는데 예전에는 12시 이후로 밖을 못 돌아다니던 시대가 있던 걸 봤습니다. ,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많이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똑같이 투표를 할 때는 한표를 행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의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자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본적인 자유는 누리고 있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를 완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만약에 남들이 다하고 있는 걸 나만 못하고 있다면 나는 마냥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욱이나 내 일이 아니라 내 가족의 일이며 내 자식의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남들 전부 다 학원을 보내는데 내 아이만 안 보낸다고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타인의 욕망이 내 욕망이 되고 내 욕망은 또 다른 누군가의 욕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욕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교육과 부동산은 그 욕망의 소용돌이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분은 지금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보면 귀신 들린거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런가 싶었는데 더더욱 그런 걸 느낍니다. 나중에 학부모가 되어 귀신과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욕망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욕망을 일으킬 때 거짓을 속삭임입니다. 그것만 가지면 다 될 것이야. 그것만 얻으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때로는 이렇게 속삭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시에 성공을 한다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될 거야 라고 말입니다. 아니면 돈 10억 이상 가지고 있으면 세상을 이긴 자가 될 거야 라고도 말할 것 같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조급하게 말하는데 오늘 성경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 4-6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4-6절입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성경은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물과 피로 임하신 것을 말합니다. 물과 피로 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2034절입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34절입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신들은 누군가를 죽임으로서 이긴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시면서 이기신다고 합니다(톰 라이트,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서신)(IVP), 229). 이것은 너무나 큰 역설입니다. 그러나 이 역설을 증언한 대표적인 이름들은 오늘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제 이름도 그 대표적인 이름들 중에 하나입니다. 피터, 제임스, 매튜, 마크 등 사실 역사의 영웅들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던 사람들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전혀 아닙니다. 그냥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증언하는 그 이름들이 역설적이게도 지금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더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11-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1-12절 말씀입니다.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믿는 자는 압니다.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무엇이 나를 얽매는지 믿는 자는 압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며 매달 한 번씩 떡과 포도주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 역사 동안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도 예배를 막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증언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했고 죽음을 이겼다는 것을 계속 외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배운 사랑을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고 교회는 끝까지 외칠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외칠 동안 세상도 계속 외칠 것입니다. 성경이 적힐 당시에는 그리스도가 진짜로 죽지 않았다고 거짓을 말했습니다. , 로마가 세상을 정복하고 이겼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로마는 멸망했지만 그 거짓은 여전히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이겼고, 좋은 학교 나온 사람이 이겼고,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세상을 이긴다고 여전히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짓은 너무나 우아합니다. 우리가 증언하는 진리는 물과 피인데 거짓은 은과 금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성령님의 증언과 성경의 증언, 그리고 2000년 역사 동안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도 그 증언의 삶을 보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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