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교사 교육을 매년한다. 이번에는 이 책을 가지고 하려고 했다. 나는 이 책의 첫장을 요약으로 진행했다. 그걸 중심으로 내가 요약한 걸 옮겨 놓겠다. 이동영 교수의 책 역시 몇 부분 참고했다.
1장 요약
1강 삼위일체 찾기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혹자는 삼위일체를 낡은 신앙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삼위일체 교리는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고까지 했습니다. 이는 토마스 제퍼슨만이 아니라 당시 팽배했던 분위기이기도 했습니다. 신학자로는 슐라이어마허가 그랬고 철학자로는 칸트가 삼위일체를 무의미한 사변으로 여겼습니다. 사실 18-19세기인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철학적인 용어들을 없애고 예수님의 단순한 지식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단순한 지식들로 가자는 것은 맞지만 예수님의 단순한 지식으로 간다면 삼위일체로 결국 다다른다는 점에서 그들은 틀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가 철학적인 지식 이전에 과연 무엇을 먼저 하고 있을까요?
삼위일체 교리가 등장한 것은 철학적인 사유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초대교회를 통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7절에 그 반응이 나오는데 제자들은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마 28:17)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제자들이 보인 반응은 경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세례를 베풀라”(마 28:19)고 말입니다. 개역개정에는 없지만 ‘the’ 그러니까 ‘그’ 이름은 삼중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이제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니신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의 ‘단순한 가르침’에는 삼위일체를 말하는 바가 많습니다. 이는 책 14-15페이지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말할 때는 성령님을 늘 언급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성령님 삼위 하나님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이해되지 않는 삼위일체 교리는 신학자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사역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물론 교부들이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삼위일체를 설명한 이유도 있긴 합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유포한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2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 이단들을 대항하기 위해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고 정립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런 삼위일체 발전과정 속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시작이 잊혀진 경향은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면서 자연스럽게 성립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삼위일체는 여전히 의심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할까요? 먼저 신비한 사례를 말해보겠습니다. 시리아에 살았던 성 에프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삼위일체 교리를 말한 교부들과 전혀 접점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였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직접 쓰이진 않았지만 그 실체는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신구약 성경 안에 그 실체가 있기에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동일한 말을 한 것입니다. 이제 성경 속에서 등장하는 삼위일체를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구약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가장 어색한 이유는 하나이면서 어떻게 셋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는 숫자 하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라는 단어를 웬만하면 숫자로 쓰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 6:4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되어있는데 여기 ‘유일한’이 숫자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신 말씀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으로 자신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편 24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라는 하는데 이는 ‘여호와는 만군이시다’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즉 이로 봤을 때 하나님 안에 내재적인 다양성, 즉 ‘공동체’가 있다는 걸 암시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 했을 때 그건 단일한 숫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성이 나타나는 합일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이신 하나님은 어떤 면에서 공동체이며 친교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이 공동체이자 친교의 관계가 자세히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3:16-17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이 삼중성의 흔적을 봅니다. 이때 첫째, 성령이 내려오고, 둘째,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고(아버지), 셋째, 하나님께 사랑받는 아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잉태되신 때에 선포된 내용에도 이 친교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첫째, 지극히 높으신 이, 둘째, 성령, 셋째 하나님의 아들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책 26-30페이지에 나오는 많은 신약의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교리는 철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계시로 알려주셔서 그리스도인들이 체험으로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신앙 생활 속에서 경배와 찬양을 통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삼위일체가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그 실체는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인 동시에 셋인 그 실체는 숫자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단 번에’, ‘유일한’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에는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를 신약성경에서는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장 질문
1)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가?(철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방식이 있는가?) p.17, 31
2)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p. 20)
3)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 ‘하나’라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구약(창 1:1, 시 24:9-10 등)과 신약에 나타난 의미를 찾아봅시다 (p. 21-30)
'책리뷰 >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리뷰] 앤터니 티슬턴 - 조직신학(박규태 옮김, Ivp)[진리 성경 역사 해석] (0) | 2021.03.19 |
---|---|
[책리뷰] 다니엘 L. 밀리오리 -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신옥수·백충현 옮김, 새물결플러스)[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종교다원주의 유형 정리] (0) | 2021.01.15 |
[책리뷰] 이동영 - 송영의 삼위일체론[경배와 찬미의 신학](새물결플러스) 삼위일체란? 삼위일체에 대해 (0) | 2021.01.10 |
[책리뷰] 배요한 - 신학자가 풀어 쓴 유교 이야기(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유교의 모든 것, IVP) (0) | 2021.01.04 |
[책리뷰] 후카이 토모아키 - 신학을 다시 묻다(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 (0) | 2020.03.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