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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공부흔적

[강의]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마이클 고힌(성경은 드라마다, p. 277-끝)

by 카리안zz 2020.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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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초대교회 이야기

사도행전의 끝은 실로 담대하게 거침없이 예수님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 전파를 계속하는 것이 메시아 백성의 지속되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도 교회 이야기의 일부가 되도록, 예수님을 따르도록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나라의 사명을 계속해서 담당하도록 초정받고, 권고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조심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신학 체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모아 놓은 증거본문집 정도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깐 예를 들어 칼빈신학의 예정론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해 성경 본문을 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비아냥대는 말 중에 하나로 예수님도 칼빈주의자(개혁주의자)였냐? 비아냥대기도 합니다. 단순히 도덕적 교훈만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으면 안 됩니다. 물론 신앙적인 교훈과 인생의 교훈을 성경을 읽으며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울서신 역시도 그러한 교훈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윤리적인 책이나 보편적인 교훈만을 가르치는 책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여느 다른 도덕책들과 성경은 차이가 없어지게 됩니다. 일상의 위로만 주는 글귀를 찾으려 성경을 읽으면 안 됩니다. 때론, 성경을 읽으며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로를 얻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다면 문제가 됩니다. 어디까지나 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열심’, ‘행동’,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읽어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8주간의 교사교육이 이러한 오류를 방지했으며 나아가 통일성 있게 성경을 읽으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성경의 이야기를 알았기에 이제 이야기를 살아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지금은 어느 때인가?

그렇다면 지금이 어느 시기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하여 세계를 보는 눈()이 등장한 것이지요. 줄여서 세계관입니다. 물론 이것은 눈만으로 보는 세계를 말하는 것 같아서 조금 오해될 여지가 있어서 비판을 받는 부분입니다. 근대적 색깔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걸 염두해 두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각 세계관들을 파악하려면 여러 질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의 대답에 따라 각 세계관이 파악되는 것이지요. 왈시와 미들턴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치료책은 무엇인가? 여기에 톰 라이트는 지금은 어느 때인가?를 추가 했습니다.[우리는 누구인가?’ - 기독교 유신론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인격, 자기 초월성, 지성, 도덕성, 사회성 창조성 등을 지닌 존재로 본다. 이신론에서는 인간은 비록 인격체이지만 우주라는 기계의 한 부품으로 본다. 자연주의에서 인간은 복잡한 기계이다. 인격이란 우리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그저 화학적, 물리적 성질의 상호 관계다. 허무주의(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인간을 자신의 본성과 운명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본다. / 물론 이것은 브라이언 왈시의 세계관 접근법보다 제임스 사이어의 접근의 대답이다. 이점을 유의하라.]

여기에는 톰 라이트는 비유가 유용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원고가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그 희곡은 원래 6막으로 되어 있었지만(톰 라이트는 5막 비유, 저자들이 6막비유로 고쳤음) 다섯 개 막 조금 넘는 정도만 발견되었습니다. 처음부터 4막까지, 5막의 첫 장면 그리고 연극의 마지막 막뿐인 것입니다. 나머지는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이 희곡을 상연되었고 우리는 이제 5막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잃어버린 부분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요? 이게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지점입니다. 가장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은 1-4막과 마지막 부분의 흐름에 맞게 5막을 연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1-4막을 상세히 읽어야 할 의무가 생깁니다.

성경의 구속 드라마가 바로 우리가 연기해야할 대본입니다. 창조 죄로의 타락 이스라엘의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교회의 이야기이며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6막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이라는 배경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국가가 신성시 되었고 로마의 황제가 복음으로 불리며 신적권위를 지닌 세상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순교의 역사는 누구를 주님으로 부를 것인가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주님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인가? 물론, 로마 제국 속에서 박해가 늘 심했던 것은 아니지만 1-3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와 신앙 사이에서 그러니깐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겹쳐진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배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가요? 물론, 천민자본주의의 세계로 볼 수도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로 볼 수 있고 여러 분석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큰 틀보다는 오늘은 각자 삶의 터전에서, 삶에서 보이는 세상을 한 번 말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토의)

 

마무리

구원은 창조 세계 전체와 인간 삶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구원은 그것만도 아닙니다. 구원은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인간 삶 전체가 회복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인간 외의 창조 세계 역시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구원의 범위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증인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선교를 이어가야 하는 우리 소명의 범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그 나라가 왔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소외된 이들을 환영하셨고,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만드셨으며, 그 공동체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교훈과 모범으로 가르치셨고, 당대의 우상숭배적인 문화에 도전하시며 그것을 위해 고난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며 예수님이 보이신 사랑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오시는 날에는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3-4) 우리는 이 나라의 모습을 꿈꾸고 살아갑시다.

9주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 교사교욱에 대한 피드백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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