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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이것(기적)을 매우 분명하게 이해했다. 그는 그의 복음서를 선택된 “신호”(보라, 요 20:30-31) 대략 6 또는 7로 구성했고, 그는 예수님이 그의 설교와 가르침에서 했던 거대한 “나는 –이다” 선언과 그것(신호)들을 연상시시켰다. 첫 번째 신호는 갈릴리의 가나의 결혼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 사건 자체로는 실제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신호는 표층 아래에 누워있다. 요한은 우리에게 그 돌 물병이 “정결의식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순전히 부수적인 언급으로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찾았던 증거가 되어 나타난다. 그 물은 오래된 종교를 상징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종교를 상징한다. 그(예수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의 복음은 율법을 대체할 것이다. 그 신호는 예수님이 이 새로운 명령을 도입하실 단 한 분이라는 그 주장을 지지했다. 그는 메시아다. 그가 곧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다.”
유사하게, 그가 5천 명을 먹이신 것은 인간 마음의 가난한 자를 만족시키는 그의 주장을 분명히 보여준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고 그는 말했다. 얼마 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예상보다 일찍 선언하며, 그는 앞 못보게 태어난 남자의 눈을 뜨게 했다. 그가 앞 못보는 자의 시야를 고쳐줄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사람들의 눈을 열 수 있다. 마침내, 그는 나사로라고 불리는 4일 전에 죽었었던 남자의 생명을 회복시켰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죽은 남자를 소생시켰다. 다시, 이것은 신호였다. 그 몸의 생명은 영혼의 생명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죽음 전에 앞서 믿는 자의 생명이 될 수 있고 그리스도는 죽음 이후 믿는 자의 부활이 될 것이다. 모든 이 기적들은 인간 존재로서, 우리가 영적으로 배고프고, 앞 못보고, 죽은 자라는 것과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굶주림에서 만족시킬 수 있고, 우리의 시야를 고칠 수 있고, 우리가 새로운 생명으로 일어나는 진리를 설명하는 비유들이다.
결론
나사렛 목수의 가르침으로부터 이 주장들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들(주장들)이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것도 심지어 그것들(주장들)은 무의식적으로 과장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들(주장들)은 다른 복음서들 안에서 광범위하고 고르게(widely and evenly) 나눠져 있고, 복음서들의 원천들, 그리고 초상화는 너무나 한결같고, 너무나 균형 잡혔고, 작가들에 의해 생각해낸 것이었다.(The portrait is too consistent and too balanced to have been dreamed up by the writers, [파파고번역 - 그 초상화는 너무 일관되고 균형잡혀 작가들이 꿈꾸지 못했다], 아마도 앞에 ‘too’가 있어서 너무 ~해서 ~하지 못했다라는 걸로 봐야할 것 같다. 해석할 때 문맥상 어색했지만 일단은 막 번역을 하는 취지에 기록해 본다).
그 주장들은 거기에 있다. 물론 그들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증거로 여겨진 것이 아니라는 건 진실이다. 결국, 주장들은 실재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그것(주장)들의 몇몇 설명은 반드시 발견될 것이다. 만약 그 스스로 가르침의 핵심 주제 중 하나에서 그가 완전히 틀렸다면 간단하게 우리는 훌륭한 선생님으로서 예수님을 논의할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이 깨달았듯이, 예수에 대한 “과대망상증”이라는 명백한 방해가 있다(There is certain disturbing "megalomania" about Jesus, [파파고 번역 - 예수님에 대한 불안정한 "망상증"이 분명히 있다], ‘disturbing’이 과대망상증을 수식하는 건데 엉뚱하게 번역을 했다. 그러니 파파고 번역대로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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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남자 속에 이 주장들은 심지어 제국적 과대망상증으로 이끌 자기중심적일 것이다.(These claims in a mere man would be egoism carried even to imperial megalomania, [파파고 번역 - 이런 주장들은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이기주의가 제국주의적 과대망상증까지 몰고 갈 것이다] [구글번역 - 단순한 사람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제국의 거대증 환자에게도 이기적 일 것입니다]).
/ 그리고 그것은 그가 정말 하나님이 아닌 한 신학적인 가르침 뒤에 반드시 숨어 있어야 한다. 깊이와 분별 사이의 차이, 그리고 (더해서) 빈틈없음, 그의 도덕적 가르침과 걷잡을 수 없는 과대망상증은 결코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는다.(The discrepancy between the depth and sacity, and (let me add) shrewdness, of his moral teaching and the rampant megalomania which must lie behind his theological teaching unless he is indeed God, has never been satisfactotily got over, [파파고번역 - 그는 깊이와 진실성 사이의 불일치, 그리고 그의 도덕적인 가르침과 그가 진정한 신이 아닌 한 그의 신학적인 가르침 뒤에 놓여져야 하는 만연한 과대망상증은 결코 만족스럽게 극복된 적이 없다]).
그럼 그는 고의적인 사기꾼인가? 그가 소유하지 않았던 신적 권위를 추정하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의 관점들을 접근하도록 설득을 시도했는가? 이건 굉장히 믿기 어렵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서 전체적으로 솔직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위선을 싫어했고 그 스스로 솔직하게 진실되었다.
그럼 그는 진정으로 실패했는가? 그는 그 자신에 대해 망상에 사로잡혔는가? 이 가능성은 그것의 지지자들을 가진다, 그러나 그들의 망상은 그의 것보다 더 크다는 것같다는 한 가지 느낌을 남긴다. 예수님은 속았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걸로 예상되는 일종의 기형의 인상을 주지 않는다 (Jesus does not give the impression of the sort of abnormality that one expects to find in those who are deluded, [파파고번역 - 예수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기를 기대하는 종류의 이상에 대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의 주장들은 그의 성격에 의해 지지되도록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다음 장에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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