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책보다 영화로 먼저 봤다. 보고 많이 울었다. 특히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만날 때. 그래, 그 장면. 본 사람은 알 거다. 영화는 배경이 너무너무 예뻤다. 특히 벚꽃. 그리고 여주가 참 예쁘더라ㅋㅋ 그래서 몰입해서 봤다. 이 영화는 일본 영화의 뻔한 플롯을 따라가는데 왜 나는 영화도 보고 책도 보게 되었을까. 이야기 자체에 매력이 있더라. 뻔한 장치들이 있지만 어떤 작품은 계속 보게 된다. 이 책이 그렇다. 이 영화에 대한 팟캐스트를 보니 작가가 스토리텔링에 힘을 썼단다. 확실히 그렇다. 왜 이 책의 제목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일까. 괴랄할 제목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것이다.
이 영화를 내 친구에게 강력하게 추천했더니 내 친구는 아주 혹평을 했다. 이런 사랑이 진짜라고 속인다나 뭐시기나. 역시나 근본주의 성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이 영화를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로 보지 않았다. 한 인물의 성장기로 봤다. 10대 시절 소년이 타인을 만나 성장하는 이야기 말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10대 시절, 막 깨어나기 시작할 때. 소년도 청년도 아닌 어중간한 그 사이의 시절. 청소년. 10대의 나이를 한참 넘었지만 이 시절을 지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자기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더 넓은 세계를 맛보는 그러한 사람들이 모두 이같으리라.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부분에 더욱 눈이 갔고 밑줄도 치게 되었다.
물론, 내 질문의 목적은 그녀의 훈훈한 추억 얘기를 듣자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녀라는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또한 영향을 받기도 하는, 그야말로 나와는 정반대의 그녀가 만들어진 과정을 나는 알고 싶었다. (리디북스 아이패드 기준, 145)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그녀에게서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의 생명이 일 년이 아니라 좀 더 길게 남았다면 나는 내가 여태까지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녀에게서 배울 수 있을까. 아니, 아무리 긴 시간이 남아 있더라도 분명 부족했을 것이다. (208)
진짜로 잊어버렸는지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웃어버렸다. 나는 제삼자의 눈으로 타인을 향해 순순히 웃어주는 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이런 인간이 되었나 하고 의아했고, 한편으로 감탄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틀림없이 눈앞의 그녀였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꽤 많이 변해버렸다. (221)
"정말로 너는 나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236)
줄곧 주위의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다. 관심을 갖지 말고 살자고 결심했었다. 그랬던 내가······.
저절로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내가 이렇게 변해버렸다. 재미있어서 혼자 웃음이 터졌다.
오늘 만날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를 바꿔놓았다. 틀림없이 그녀가.
그녀를 만난 그날, 내 인간성도 일상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259)
모두 다 솔직히 털어놓자. 뭔가를 배울 때마다 나는 그녀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겁쟁이여서 지금껏 나 자신 속에 틀어박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하지 못 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또한 해내는 사람. (263)
손을 맞대고 눈을 감았다.
마음을 나만의 것에서 너에게 건네는 것으로 바꿨다.
용서해줬으면 해, 여기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
기도하는 것.
원래 태생이 고약한 성격이라서 우선 불평부터 좀 해야겠어.
그리 간단하진 않았어. 네가 말했던 만큼은, 네가 느꼈던 만큼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야.
어려웠어, 정말.
그래서 일 년씩이나 걸렸어. 이건 내 책임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드디어 내 선택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건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일 년 전에, 분명하게 선택했어. 너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타인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성공했는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선택을 했어. (330-331)
옮긴이 역시도 이렇게 말을 썼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주위와의 진정한 관계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우리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옮긴이의 말, 341)
이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장면에서는 영화보다 소설책이 훨씬 더 와닿았다. 이 책은 그 장면이 가장 하이라이트라는 것에 책을 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 있지 싶다. 내 10-20대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최근에 한 연애까지도. 세상을 알아가고 너를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는 것. 안다고 하는 순간 모르게 되는 신비한 삶에서 모른다면 더 잘 알게 되는 신기한 삶이기도 하다. 하도 많이 틀려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염두에 두기까지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상처투성이에서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많은 시간 자랐고 앞으로도 더 자라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사랑이야기만이 아니다. 나와 너와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와 너와 세상을 한 번 돌아보길 바란다. 꼰대가 되어도 좋은 꼰대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메모
"고마워,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진짜 잘 가르친다. 앞으로 교사를 해보는 건 어때?" (213)
- 이래서 영화에선 교사로 나왔구나!(영화와 소설이 다른 건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다. 영화의 표현도 참 좋았다!)
서점대상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 문학상과는 달리, 평론가나 선배 작가가 심사위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간을 취급하는 서점의 점원들이 직접 투표하여 10권의 후보작 및 수상작을 결정한다. 2004년에 설립하여 첫 수상작을 발표했으니까 벌써 열세 번째다. 문단의 권력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실제 현장에서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점원들이 주체가 된다는 진정성 덕분에 이제는 문학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옮긴이의 말, 337)
- 서점대상에 대해(이 책은 2016년 서점대상 2위를 했다. 내가 리뷰한 온타 리쿠의 <꿀벌과 천둥>은 2017년 1위 작품이다. 또,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는 2012년 2위 작품이다. 2008년의 <골든 슬럼버>가 1위작인데 한국판 영화는 더럽게 재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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