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 점
무라카미 하루키! 아마 일본인 작가 중에 가장 유명한 작가가 아닐까. 미우라 아야코 이후 가장 대중적인 작가가 되었다고 김응교 선생님의 책에서 읽은 것 같다. 우리나라만 하루키 열풍인 줄 알았는데 세계가 하루키 열풍이다. 뒤에 해외 반향 부록을 따로 읽어보지 않아도 맨 뒤에 3판 111쇄라는 기록이 하루키가 얼마나 팔리는 작가인지 실감나게 한다. 2014년 10월 23일 기준이다. 횟수로는 7년이 지난 지금 과연 몇 쇄를 기록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루키는 왜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가? 뒤의 설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키의 독자들은 주로 이, 삼십대의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특히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혼란과 좌절을 경험한 세대가 맞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실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한 시기에 한국에 상륙한 하루키의 탈감상주의적인 소설이, 일종의 열풍처럼 젊은이들의 가슴속을 휩쓸고 지나갔을 것이다. 마치 그것이 1970년 대 초, 학생운동이 좌절된 뒤에 공허감과 상실감을 안고서 1980년대를 맞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것처럼. (450-451)
공허함. 얼마 전 친구가 내려와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외로움과 허무함을 느낀다고. 올해 결혼을 했지만 텅 빈 것 같다고 말을 하더라. 그래서 그 빈 것을 채우기 위해 자극을 주는 것을 찾는다고 했다. 예전 그 친구가 영화 <버닝>을 보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주인공의 절규가 이해가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영화 <버닝> 자체도 그런 텅 비어 있는 허무한 세계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니 그 허무함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영화 <버닝>도 사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려내는 세계는 허무하고 무언가 사람이 텅 빈 시대를 그려 낸다. 그런데 그 허무한 세계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한다. 노벨상 후보로까지 종종 거론되며 전 세계에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이 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가 그려낸 허무하고 텅비어 있는 세계에 공감하는 거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적실하게 보이는 것 같다.
원래 이 책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이 <상실의 시대>로 바꿔 났다. 아마 이 부분에 비판이 있는 줄로 안다. 하지만 나는 <상실의 시대>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본다.
허무하고 텅 비어 있는 세계
주인공 와타나베를 보고 있노라면 딱 그렇게 느껴 진다. 주인공은 무언가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어떤 열의도 보이질 않는다. 나가사와 선배는 전형적인 능력있는(?) 난봉꾼인데 그가 룸 메이트이기에 여자랑 자주 일들을 치룬다. 나가사와도 역시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여자와 하루를 보내는 것일까. 여튼 주인공 와타나베는 주변에 일어났던 일때문일까? 그의 세계에서 키즈키, 나오코는 분명 그의 텅빈 세계를 만드는데 원인이다.
나는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함께할 때보다 미도리와 함께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가 더 좋았다. 정신적인 문제로 요양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마음을 다하는데 나오코는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가 아닌 것같다가 한다. 그래서 읽는 내가 지쳐버렸던 걸까. 주인공이 미도리와 함께 어울리는게 더 신나고 읽을 때도 좋았다. 소설의 이 세계 속에서 그 둘의 대화는 너무나 위트있었다.
"그래. 난 상대방 남자가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어.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네가 곧 딸기 쇼트케이크가 먹고 싶지 않게 되리라는 것쯤은 짐작했어야 했는데. 내가 당나귀 똥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무신경했어. 사과할 겸 다시 한 번 뭔가 다른 걸 사다 줄게. 뭐가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 그렇게 받은 것만큼 분명하게 상대방을 사랑할 거야."
"지극히 불합리한 이야기 같은데."
"하지만 난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하고 미도리는 내 어깨 위에서 조그맣게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건 아주 사소한, 혹은 시시한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거기부터가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 거지." (120-121)
이 책에서 가장 허무하고 텅 비어 있는 세계를 느낀 건 하쓰마 때문이다. 그렇게 중심 인물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녀의 사건이 가장 충격이었다. 나오코야 앞에 언질이 있었지만... 그냥 그게 무심한 듯했지만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또 다른 원인이 있었을까.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왜 갑자기. 하쓰마와 그녀의 연인인 나가사와의 대화가 다시금 새롭게 보인다. 끊없는 갈증이 있는 나가사와. 나가사와의 말 속에서 이 세계가 또 보인다.
"나는 상처 받았어." 하고 하쓰미 씨가 말했다. "어째서 나만으로 부족한 거지?"
나가사와 선배는 한동안 말없이 위스키 잔을 흔들고 있었다.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야. 내 머몸속엔 뭔가 그런 걸 원하는 갈증 같은 게 있지. 그것이 네게 상처를 주었다면 미안해. 결코 너 하나만으로 부족하다든가 그런 건 아니야. 그러나 나는 그런 갈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남자고, 그게 바로 나야. 어쩔 수 없잖아." (299)
이런 세계를 레이코의 일화의 서술을 통해서도 잠깐 등장된다.
"그러는 사이에 그 애가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거야.
'아니, 왜 그러니?' 하고 나는 말했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긴. 자, 솔직히 말해보렴.'
'가끔씩 이래요. 저 자신도 어쩔 수가 없어요. 외롭고, 슬프고,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제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어요. 그게 괴로워서 이렇게 돼버리고 마는 거예요. 밤에도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식욕도 거의 없어요. 그저 선생님한테 오는 것만이 즐거움이에요, 전.'
'저기 어째서 그런지 말해보렴. 들어줄 테니까.'
가정이 편치 않아요, 하고 그 애가 말하더군. 부모를 사랑할 수 없고, 부모 쪽에서도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거야. ..." (225-226)
미도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하니 와타나베는 '처량한 느낌'이 들었단다. 아마 이는 허무함이겠다. 그 허무함을 지우기 위해 그는 거리고 나간다. 사람들이 많이 북적이는 신주쿠로.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거리가 자신을 안심시켜주었단다(287). 아마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 느낄 것이다. 당장에 나에게도 비가 오는 거리에 사람들이 오다니는 거리가 떠오른다. 그 거리를 걷노라면 무언가 마음이 차올랐다. 아마 와타나베도 그걸 느낀 것이겠지? 또,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내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 말을 한 이도 와타나베와 같은 심정이겠지. 하루키 열풍. 괜히 부는게 아니다. 이게 바로 세계사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동시대적 감각'이라는 것일까?
사랑
이 허무한 세계의 끝은 무엇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스포가 되기에 쓰진 않겠지만 뒤에 해설을 읽고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었다.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허무한 세계에서 끝을 내지 않고 사랑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강조하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그걸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되는 진리>를 쓴 오지훈 작가는 하루키가 사랑을 주제로 계속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 대목이 이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잠실동 사람들>도 읽었고, <상실의 시대>도 읽었다. 과연 여기에서 기독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잠실동 사람들도 상실의 시대 사람들도 구원이 필요하다. 그것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구원하려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악을 폭로하며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채워준다고 선포한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던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그게 들어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채워진 열등감. 그리고 그 사마리아 사람들 중의 사마리아인인 사라미라 여인. 이혼을 당한 여인. 남자에게 계속해서 버림 받은 여인.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남자와 함께하려는 여인.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그자가 당신의 갈증을 채워주는 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채워지는 그 우물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 우상을 파괴하고 진정한 사랑을 말하는 것.
한국 교회는 코로나 이후 가파르게 내려 앉을 것이다. 지금 그 도산이 급속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메세지는 이 시대에 더욱 빛날 것이다. 허무한 세계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기에. 어떤 인문학자는 자살이 해방의 창구라고 말하지만 아니야. 20대의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것과 특히 20대 여성들의 자살률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지금. 복음을 말해야 한다.
나가면서
시종일관 어둡기만 한 책은 아니다. 하루키의 글빨이라고 해야 할까. 중간중간 위트있는 대사와 장면들을 넣는다. 특히 와타나베와 미도리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며 이거 따로 대사를 외워야 하는 것 아닌 것 하는 장면들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미도리가 운동권에 갔다가 <자본론>도 못 읽었냐고 무시당하고 그런데 그 무시한 놈은 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미도리가 사실은 서민이었다. 그런 운동권 사람들의 허레의식을 폭로하는게 왜이리 재미있게 서술되었던지. 궁금하면 <상실의 시대> 258-260쪽을 보라. 급한 분들은 밑에 책 맛보기를 봐도 된다. 또 위트 있는 대사(가령, '봄날의 아기 곰만큼 네가 좋아')라던가. 지루하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다. 사실, 지루했다면 하루키의 책 열풍은 불지 않았을 것이다. 재미있으니깐!
허무한 세계 속에서 허무해 하며 텅 비었기에 죽음과 가까워 진다. 이 시대. 목회자인 나에게 묻게 된다. 너는 이 상실과 죽음의 시대에 무얼 선포할 거니? 이 물음 때문이라도 하루키를 계속 읽어나가야 겠다.
메모
그날 아침 여섯 시 반에 미도리가 전화로 알려왔다. 전화가 왔다고 알리는 버저가 울려서, 나는 파자마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로비로 내려가 전화를 받았다. 차가운 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어, 하고 미도리가 작고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내가 도울 게 있을까, 하고 물어보았다. (283)
- 상실
그렇게 미도리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차츰 처량한 느낌이 들어, 나는 서둘러 옥상의 빨래를 거둬들이고, 신주쿠로 나가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혼잡한 일요일의 거리는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287)
- 죽음을 잊으려는
책 맛보기
"으음, 우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야긴데 말이야." 하고 미도리는 내 쪽을 향하며 말했다.
"응."
"나, 하나도 슬프지 않았어."
"응."
"그리고 아버지가 없어졌을 때도 전혀 슬프지 않았어."
"그래?"
"그럼 그런데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렇지, 뭐, 여러 가지로 말이야." 하고 미도리는 말했다. "나름대로 복잡했어, 우리 집. ... 어릴 적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땐 밤새도록 울었는데도."
...
"하지만 그건 내 탓만은 아냐. 물론 내가 정이 없는 편이긴 해. 그건 인정해. 하지만 말이야, 가령 그분들이 - 아버지와 어머니가 - 나를 좀 더 사랑해주었다면, 나도 다른 느낌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더 깊은 슬픔에 빠진다든지 하는."
"별로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해?"
그녀는 고개를 기울여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충분하지 않다'와 '아주 부족하다'의 중간 정도. 늘 굶주려 있었어, 나는.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사랑을 듬뿍 받아보고 싶었어. 이젠 됐어요, 배가 터질 것 같아요, 잘 먹었습니다, 라고 할 정도로. 한 번이면 되는 거였어, 딱 한 번 이면. 하짐나 그들은 한 번도 내게 그런 걸 줘본 적이 없었어. 어리광을 부리면 밀쳐내고, 돈이 든다고 꾸중만 하고, 줄곧 그래왔단 말이야.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했어. 일 년 내내 100퍼센트 내 생각만 하고 사랑해줄 사람을 내 힘으로 찾아내서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초등학교 5학년 때든가 6학년 때 그렇게 결심했어." (118-120)
"그런데 왜 자긴 그런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야?"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우린 모두 어딘가 뒤틀리거, 비뚤어지고, 헤엄도 제대로 못 쳐서 점점 물속에 가라앉는 인간들이야. 나도, 기즈키도, 레이코 언니도, 모두 그래. 어째서 좀 더 정상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그건, 내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야."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그렇게 대답했다. "... 내가 생각하는 어딘가 비뚤어진 사람들은 다들 멀쩡하게 바깥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어."
"하지만 우린 비뚤어져 있어. 난 알고 있어."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208)
"우리가 정상이라는 점은," 하고 레이코 씨가 말했다.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지." (218)
"어느 날 우린 모두 야간 정치 집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여학생들에게 밤참용 주먹밥을 각자 스무 개씩 만들어오라는 지시가 내려졌어. 웃겨, 정말. 이건 완전히 성 차별이었어. 하지만 항상 소란만 피울 수도 없어서 나는 잠자코 주먹밥 수무 개를 만들어 갔거든. 우메보시(매실을 소금에 넣고 절인 일본전통음식- 옮긴이)를 넣고 김으로 말아서. 그랬더니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알아? 미도리의 주먹밥은 속에 우메보시밖에 들어 있지 않고 반찬도 안 챙겨왔다는 거야. 다른 여학생의 주먹밥 속에는 연어나 명란젓이 들어 있고 계란말이 같은 것도 싸왔다면서.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더라고. 혁명 운운하며 떠들어대는 자들이 왜 겨우 밤참용 주먹밥 따위를 가지고 소란을 피우는 거냔 말이야. 속에다 일일이 우메보시를 넣고 김으로 말았으면 충분하잖아. 굶주리는 인도의 어린애들을 생각해봐."
나는 웃었다. "그래, 그 동아리는 어떻게 됐어?"
"유월에 그만뒀어. 너무 화가 치밀어서. 아무튼 이 대학에 다니는 것들은 거의 모두가 사기꾼들이야. 모두들 자신이 뭘 모른다는 걸 남들이 알아챌까봐 잔뜩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며 지냐고 있다고. 그래서 모두들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말을 지껄이며, 존 콜트레인을 듣거나 파졸리니의 영화를 보면서 감동한 척하는 거지. 그런 게 혁명이야?" (260)
나는 그가 아삭아삭 오이를 씹던 소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의 죽음이란 건 작고 기묘한 추억들을 남기고 가는 모양이다, 하고. (284-285)
나는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며, 그리고 어떤 상처를 입게 될까 하는 건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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